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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5.02.06 웃어야지 - 쿵푸허슬 by 망명객
  3. 2005.02.06 쓸데없는 분노 by 망명객
  4. 2005.02.01 유랑단... by 망명객
  5. 2005.01.22 스완다이브와 명랑운동회 by 망명객
  6. 2005.01.21 그림자... by 망명객
  7. 2005.01.17 봄날 그리고 섬 by 망명객
  8. 2005.01.16 선입관, 상처... by 망명객
  9. 2005.01.13 여행의 끝에서 다시 시작하려는 친구에게... by 망명객
  10. 2005.01.10 요즘 증상... by 망명객
월드컵 국가대표팀 최종평가전인 이집트와의 경기를 김모 선배의 초대권으로 함께 가다.

스포츠 관전을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애써 챙겨주는 김 선배의 호의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사실 난 축구경기나 야구경기 등 각종 스포츠 이벤트는 집에서 텔레비전을 통해 관전하는 데 익숙하다. 경기 룰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해설자의 설명과 필요한 부분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리플레이와 클로즈업 그리고 다양한 각도의 화면에 익숙해지다 보니 경기장에서의 직접 관전은 내게는 조금 낯 선 일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연고지 팀 하나 없는 시골에서 자란 탓에 경기장에서의 관전 경험이 그리 많지 않은 탓도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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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점에 가까운 추위 속에 찾아간 상암 운동장의 야경은 글레디에이터의 콜롯세움을 연상케 한다. 광적이라 표현할 수 있던 2002년 월드컵의 열기를 직접 경험하기 보다 관전자로 바라봤던 내게 그것은 서글픈 현실이었다. 올림픽과 같은 국가의 대사를 치르는 데 있어 우리 국민들만큼 헌신적이었던 국민이 또 있을까?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 빨간색 티셔츠를 입고 '대한민국'을 외쳤다. 어떤 이는 감동이었다고 표현하지만 내게 그것은 서글픔 그 자체였다. 물론 과거의 억압적 국민동원에서 자발적 동원으로 바뀌었다는 긍정성을 염두에 두고서라도 그간의 신나는 일이 없던 일반인들에게 그것은 하나의 짜릿한 쾌감이었을 뿐이다. 두고두고 평생을 간직하며 살아갈 그런 쾌감 말이다. 전쟁에서 돌아온 군인들과 일반 서민들을 위해 열렸다던 고대 로마의 검투 시합과 현대 국가대항 축구시합 사이에서 차이점보다 유사성을 느끼는 건 혼자만의 생각일까. 그래도 현실이 고달픈 이들에게 웃을 수 있는 여유를 준다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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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결과는 1:0으로 우리나라가 패했다. 축구의 광팬인 김 선배의 직접 해설과 붉은악마의 응원, 그 사이에서 해설과 응원 그 어느 것에도 열중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김남일에 열광하는 서 선배를 떠올렸다(이후 확인해보니 역시 서 선배도 내가 앉은 스탠드 맞은편에 있었단다).
날씨가 추웠고 또한 이기지 못하고 진 경기였지만 그래도 당분간 2006년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큰 기다림이었을 것이고 기대를 걸 수 있는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저 앞으로 국민들이 웃을 수 있도록 국가대표팀이 힘내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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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겨울 거리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질적인 사투리와 상실된 방향감각, 익숙하지 않은 유랑 일정이 육체적 피곤함을 불러일으키는데,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비는 보도블럭 사이사이로 우울의 싹을 키우고 있었다. 이럴 땐 아무 생각 없이 웃어야한다며 일행과 함께 부산 서면의 롯데백화점 내 극장을 찾았다.

주성치의 '쿵푸허슬'.

결론은 대 만족.

정말 오랜만에 보는 홍콩영화다. '소림축구'도 케이블 채널을 통해 봤으니 극장에서 보는 홍콩영화는 천삼백이십칠년만인 듯하다. 오우삼, 주윤발, 성룡, 이연걸 등 어린시절 우리를 환호하게 만든 이들은 어느새 헐리우드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젠 주성치만 남은 것. 물론 '쿵푸허슬' 조차 헐리우드 자본이 만들어낸 작품이긴 하지만 서구인 한 명 나오지 않는 홍콩영화 그 자체로 인정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이젠 황량한 벌판만 남은 곳에 독야청청 남아 있는 초인이 있어 아직도 우린 홍콩영화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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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분노

똥침 : 2005. 2. 6. 16:21
조갑제, '100일 굶었다니, 굶는 거 봤나?' 망언

동방의 등불 대한민국의 앞날에는 오로지 창대한 역사만이 존재할 뿐이니, 이는 이 땅의 탁월한 右國志士로서 두 눈 부릅뜨고 펜대를 굴리시는 갑제 형님이 계시기 때문이도다. 형님의 '단식100일? 기자들은 다 죽었다!'는 글은 이 땅 작금의 언론현상에 대한 통탄이며 일선 후배 기자들에 대한 따끔한 일침이리라.

"기자들은 이 여승이 과연 100일간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가를 알아보았어야 했다. 의사들에게도 이것이 과연 가능한지 물어 보았어야 했다. 기자들이 CCTV로 이 여승의 단식을 확인한 것도 아닌데 무슨 근거로 100일 단식이라고 확정보도했는가."

아, 이 얼마나 탁월한 지적인가. 하루살이 인생이라 표현되는 일간지 기자들이 지율스님의 단식을 CCTV를 통해서라도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는 갑제 형님의 저 탁월한 기자의식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요사이 젊은 기자들은 권위주의 정부 시절의 기사를 다시 읽어보고 선배들의 기자정신과 반골의식, 그리고 사실에 대한 집착을 배워야 할 것이다. 2005년 2월3일은 한국 언론 치욕의 날로 기억될 것이다. 백주의 암흑, 즉 정보화 시대의 기자실종 사태인 것이다. 어제 한국의 기자들은 죽었다!"

이제 갑제 형님은 후배 기자들에게 직업의식을 강조하신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 언론사 탄압으로 수많은 기자들이 일선에서 쫓겨날 때 적당한 타협과 눈치로 밥그릇을 지키는 보신정신과 과거는 잊어주세요 식으로 논조를 바꾸는 반골의식 그리고 CCTV를 통해서라도 단식을 확인했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집착. 현직 기자들과 기자를 꿈꾸는 이들 모두가 밑줄 쫙~ 긋고 따라야 할 절대 직업의식 명제를 오늘 갑제 형님의 글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니 모두들 잊지 말고 꼭 기억해둘지어다.

"하나 덧붙인다면 언론이 여승을 '스님'이라 표기하는 것도 기자들의 정도가 아니다. 그렇다면 교사는 선생님, 목사도 목사님이라 불러주어야 하고 대통령도 '대통령님'으로 해야 한다. '스님이 구속되었다'는 기사도 나오는데 이상하지 않는가. 승려나 비구니라고 부르는 것이 좋겠다."

우리의 갑제 형님은 글의 말미에서 올바른 기사작성을 위한 기술적 충고도 잊지 않으셨다. 역시 대기자님은 여타 기자들과 다르시다.

그렇다면 이건 정말 최악의 시나리오인데 지율 스님이 계속된 단식으로 열반하셨을 경우 우리의 갑제형은 어떤 반응을 보이셨을까? - 너무 잔인한 가정이다. 그래도 가정은 가정으로만~ -

'전투적 환경운동 결국 스님을 죽음으로 몰아'

대강 이런 식의 헤드라인이 나오지 않을까. 아니 조금 돌려 생각해보면 이만큼 현 정권을 공격하기에 좋은 건더기가 또 있으랴.

'참여정부 결국 지율스님을 죽여~'

지율스님의 단식 그 100일이란 엄청난 시간 동안 겪었을 스님의 고통에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한다. 어찌 단순히 단식 100일 뿐이랴. 지금까지 몇 년 동안 몇 차례에 걸친 단식과 농성 그 모든 노력들이 그저 아름다운 결실을 맺길 바랄 뿐이다.

각 개인들이 역사를 만드는 주체이지만 오늘 괜히 무임승차의 기분을 느끼는 건 왜일까? 그래서 쓸데없는 분노를 느끼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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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단...

길위에서 : 2005. 2. 1. 16:06
서울, 대구, 부산, 광주, 대전 그리고 다시 서울. 역마살이 살짝 도지려 할 때는 살짝 떠나는 법.



3년 만에 찾은 대구, 금강 휴게소의 얼어붙은 강가에 눌러앉은 어둠의 운치보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이란 달갑지 않은 이름을 맞닥뜨리게 된다. IMF 때보다 더욱 어렵다는 작금의 경제현실을 고려할 때 '국채보상운동'이란 이름에 대한 나의 싸늘한 태도는 너무나 당연하다. 양극화가 더욱 극심해지고 있단 뉴스 보도를 접할 때마다, 결국 고통분담이란 힘 없는 자의 몫이고 보이지 않는 착취의 이데올로기일 뿐임을 되새기게 된다. TK로 상징되는 한국 보수의 원조 고향이란 간판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대구의 모습이겠지만 일제시대의 비밀결사운동과 해방 직후의 10월 봉기 그리고 1960년 2.28 학생의거를 기억하는 이는 얼마나 있을까? 전라도에 대한 이미지가 동학농민운동과 1980년의 광주 그리고 김대중으로 굳어진 것과 마찬가지로 대구의 이미지도 조작이고 날조이겠지.

부산으로 내려가던 고속도로 위에선 2km 정도의 간격으로 세워진 과속 감시 카메라가 인상적이었다. 대구에서 본 지방뉴스에서는 대다수의 카메라가 빈 카메라라고 하던데, 아무튼 조심하고 볼 일 아니던가. 역시 3년 만에 찾은 부산, 아직도 부산 발 제주 행 카페리는 저녁 7시에 부산항을 떠날 것이다. 3년 전 초여름, 그렇게 제대군인의 신분으로 카페리 위에서 바라본 부산은 검은 산들의 그림자 경사를 따라 다닥다닥 건물들이 들어선 피곤함의 도시였다. 물론 3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부산의 거리에선 이질적인 사투리가 들려오고 방향감각을 상실한 난 단순 방문객일 뿐이었다. 물론 큰 기대도 없었지만 항구도시를 방문하고 바다 한 점 바라보지 못했다는 건 아쉬움이다. 

부산의 다음 기착지는 광주. 한 선배의 고향으로, 선배 부모님의 부음을 듣고 달려갔던 곳이다. 그리고 입대 직전 머리를 짧게 자르던 곳. 그렇게 우울한 기억이 많이 묻어난 도시에 도착했으나 아직 진행중인 대한민국 도시화에 따라 광주시청으로 기억하던 옛 도시가 아닌, 넓은 도로와 아파트 단지들이 곳곳이 들어선 신도시에서 부산과는 또다른 이질적 사투리를 접하게 된다. 우울한 기억에는 자연스레 술이 따르는 법. 광주 시내와의 거리를 물어보니 술집 종업원은 원래 서울 목동 사람이라 자신은 광주 지리를 잘 모른다고 답했다. 그래 어차피 당신이나 나나 이 곳은 낯선 도시일 뿐이다. 그저 필요에 의해 찾을 뿐인 곳. 그저 우린 자연스레 흘러갈 뿐이다. 필요에 의해 찾은 곳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쓸데없는 일이라며 혼자 도리질을 쳐본다.

호남고속도로를 달려 대전을 향한다. 대구와 부산, 광주를 거치며 유랑의 생활이 몸에 익었는지 일행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마친 후에는 개인 시간을 가져본다. 대구에는 초등학교 동창과 대학 선배가, 부산에는 군대 후임병과 대학 선배와 동창, 광주에는 역시 군대 후임병이 살고 있었지만 그저 일 보러 내려와서 내 심심함을 달래달라고 그들을 불러내는 것이 미안했다. 물론 보고싶기 때문에, 생각이 나기 때문에 그들에게 연락을 취할 순 있다. 하지만 내 이기심인지 아니면 진정한 그리움인지 구분할 수 없는 감정 상태로 그들에게 연락할 순 없었다. 사람이 심심풀이 땅콩이 아니듯 그들의 존재 자체는 자신의 생활권 내에서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녀석은... 하는 마음에 전화를 건 상대가 고향 친구녀석이다. 어느 연구소의 연구원이 되어버린 녀석은 그래도 대전에 들렀는데 연락 한번 하지 않은 걸 알면 누구보다 서운해할 게 뻔하기에 연락을 취했다. 옛 친구와의 만남은 조금 소모적일 수도 있다. 함께 공유하는 과거의 기억이 술안주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녀석과의 만남은 늘 현재 진형형의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이제 곧 결혼을 앞 둔 녀석은 술자리 위로 아직 내게는 먼 고민들과 생각들을 풀어낸다. 그리고 난 내 이야기를 꺼내고... 공통점은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 조금 더 안정된 삶을 위해 이젠 결혼을 해야겠다는 녀석은 결혼식 사회를 내게 부탁했다. 난 그저 빙긋 웃으며 그 때 생각해보자는 이야기만 늘어놓을 뿐이었다. 결국 올 것이 오는 것인가... 심란하군... ㅋㅋ

전국을 한 바퀴 빙 돌았다. 말 그대로 유랑단 생활. 진짜 유랑단은 돌아갈 곳이 길밖에 없지만 우리에게는 돌아갈 집이 있다는 사실이 귀 시린 겨울 저녁 서녘에 걸린 노을 빛처럼 따뜻하다. 밀린 빨래거리만 가득한 가방과 피곤한 육신 그리고 약간의 감상을 갖고 돌아왔다. 서울... 이제 조금은 익숙하면서도 지독히 이질적이며 영원히 익명으로 남을 공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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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21
홍대롤링홀

1월 초부터 보고 싶었던 라이브 공연. 도대체 몇 년만에 홍대 근처를 배회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감회가 새로울 뿐.

오프닝밴드로 클래지콰이가 나온다고 들었으나 늦게 입장한 관계로 먼저 끝났는지 아니면 나오지 않았는지 실제로는 일본애들인 Swinging Popsicle과 Mondialito만 기억에 남는다.
특히 Mondialito의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인 친구 넘 잘 생긴듯... 79년 12월 생... ㅋㅋ 뒷조사까지 끝냈다.

아무튼 테네시주 네쉬빌에서 날아왔다고 자신들을 소개한 스완 다이브의 공연은 가볍고 즐겁게 진행되었다. 막간이 좀 길었을 뿐. 간만에 만만한 가격으로 괜찮은 라이브 공연을 본 듯해 기분마저 흐뭇하다. 다만 스탠딩 콘서트를 즐기기에는 슬슬 육체적 한계가... ㅠ.ㅠ

저작권법 때문에 배경음악 사용하지 않은 점 이해하시라.

뭐... 구해서 들어보세요... 짜증날 때, 우울할 때...
세상 밝게 살아야죠~

유후~
슬슬 미쳐가나보다.



노라 존스 공연 보고프다~ 근데 가장 싼 티켓이 5만원이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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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보고읽고느끼고 : 2005. 1. 21. 13:24
『약속 없는 세대』, 윤후명, 세계사, 1990

주민등록증이 없는 사내가 있다. 사내가 늘 찾는 건 눈 앞 가득한 푸르름. 신분이 불확실한 사내에게 시인이란 직함이 잘 어울리는 건 푸르름의 꿈을 찾아 도망자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 대에 30대의 삶에 대해 구체적인 모습을 떠올릴 수 있는 이가 있을까? 어느 우익단체의 가두집회 현장 근처에서 말 걸어오던 한 할아버지의 이야기처럼 난 지금 나이의 권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처음 20대가 되었을 땐 30대의 나 자신을 떠올릴 수 없었고 당장 내일의 내 모습조차 알 수 없었다. 하루하루의 불확실성을 즐기며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런 불확실성을 즐길 수 있었던 건 지키고 싶은 무언가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겠지.

푸르름을 찾아 나선 시인은 결국 푸르름의 그림자만을 밟을 뿐이었다. 기사도 이상 수립을 위한 돈키호테의 모험이 한낱 그림자 밟기에 지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유신이 어땠고 10.26 사태가 어쨌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역사적 기억들이 각 개인의 존재와 강하게 중첩되어 있는 국민이 또 있을까.

폭압적 사회에서 낭만주의적 인물은 말라죽을 수밖에 없다. 종국에는 푸르름을 간직한 아내도 그의 곁을 떠나버리는 약속 없는 세대, 그래 당장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그에게 가족 또한 미래를 함께 담보할 수 없는 집단일지도 모른다. 그의 이야기처럼 외로움이란 병원체에는 항체가 없어서 면역이 되지 않기 때문이겠지. 우리는 그 외로움이 두려워서 지킬 수 없는 약속을 중얼거리고 있는 것이리라. 시인이 밟았던 푸르름의 그림자. 그래 그 그림자는 이제 죽었다. 타살인지 자실인지 알 순 없지만 어느 겨울 어느 산천에서 약속을 잃어버린 채 동사해 죽었단다. 슬픔? 모든 사물은 그림자를 갖고 살아간다. 그림자가 없는 사물은 유령일 뿐. 술픔을 느끼기 전에 공포를 느낀다.



책 표지 다음 장에는 이 책 첫 주인의 메모가 남겨져 있다.

만날수있었던인연이니까
헤어질수도있다는거지.
가끔씩이라도떠오를수있다는얼굴이니까
아주지우려구한다는거지.
가을에는그냥코스코스가피고진다는걸루만족하고싶다는거지
90.10.29

1990 년 어느 가을날 이 메모를 남긴 이는 오늘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그의 희망처럼 아주 지우려던 얼굴을 잊고 잘 살고 있을까? 아니면 해마다 피어나는 코스모스를 보며 불쑥 지우려던 얼굴을 떠올리고 있을까? 현재의 그에게 그림자가 남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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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비양도>



1.
추운 날씨와 새해 맞이 긴장감이 겹쳤는지 약간의 감기기운과 함께 이불 속 안락함의 여유를 져버리기 아쉬워 늘어진 아침잠을 즐겼어. 점심인지 아침인지 구분할 수 없는 식사 후 톡 쏘면서도 달콤한 유자차 한 잔과 함께 텔레비전 화면 위 고현정의 얼굴에 주목하면서 말야. SBS 특별드라마 '봄날'의 재방송, 이번 주말 내내 관심을 갖고 본 드라마...

2.
그래, 그곳은 섬이었어. 정겨운 돌담길, 익숙한 바다와 하늘 그리고 억새. 화산의 뜨거움은 그렇게 삶이 되어 어느새 천년 세월을 지켜왔으니 그곳이 바로 비양도야. 사람들은 '섬'이란 단어에서 쉽게 여름을 떠올리지. 한여름의 더위를 피하기 위한 휴식처, 도시의 일상과는 다른 삶이 존재하리라는 꿈 말이야. 그런데 그거 아니? 당신이 꿈꾸던, 그렇게 가고 싶어하는 그 섬에서도 일상의 삶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당신이 상상하는 것 이상 힘들고 고된 일상이 존재하는 곳이 섬이야.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섬. 내게 바다는 익숙한 친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낯선 죽음과도 같은 이름이었어. 우리 동네 구석진 곳 몇 백년 동안 바다를 마주보던 큰 나무 밑에는 돌담으로 둘러쌓인 기도처가 있지. 바다에서 삶을 영위할 사람들의 안녕과 불의로 바다에서 맞이한 죽음을 달래기 위한 공간. 그 공간은 돌담 위 눌러 붙은 촛농과 빛 바랜 오색의 천 조각들 사이에서 간절한 희망과 비통의 눈물을 품고 있어.
여름날 집 앞 좁은 도로 위에서는 기름때 절은 민소매 셔츠를 걸친 채 어부 아저씨가 종종 줄담배를 피워대며 그물을 손질하곤 했지. 아저씨의 몸에서는 푸른 바다 냄새보다 가난의 소금 냄새가 피어났어. 물론 틀니를 보이며 주름 속에서 피어나던 아저씨의 웃음에 나 또한 웃어보이곤 했지만 그 가난의 소금 냄새가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어.

3.
아직은 추운 겨울이야. 봄날이 과연 봄날까지 계속 방송할지 잘 모르겠어. 추운 겨울날 '봄날'이란 타이틀을 건 드라마라니... 글쎄, 떠들썩했던 '고현정'의 컴백 작품치고는 좀 뻔한 스토리가 아닐까도 싶지만, 극이 '섬'이라는 익숙한 공간에서 시작하니 내 관심이 높아진 건 사실이야. 지진희의 연기가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더라도 어느덧 좋은 연기자가 된 조인성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더라구. 당분간은 주말에 몰입할 무언가가 생겼다는 게 기뻐.

4.
Damien Rice
서핑 중 발견한 좋은 노래. '쌀'아저씨로 부르기로 결정한 이 아저씨의 팬 페이지에는 대표곡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곡들을 mp3로 다운받을 수 있더라구. 영국 아저씨들이 참 음울한 노래를 잘 만드는 듯해. 방방 뛰는 노래들의 대다수도 그 모티브는 음울함이니 섬나라라 그런가?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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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없는 영혼』, 공지영, 푸른숲, 1996.

공지영은 내게 '고등어'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 내가 고등학생 때 처음 집어든 '고등어'는 의문부호만 가득 품게된 책이었고 대학 입학 후, 그 책을 후일담 소설로 분류할 수 있다는 걸 주워 듣고는 그간 품었던 의문부호들은 하나 둘 느낌표와 말줄임표로 바꿔 달게 되었다. 그리고 죽도록 후일담 류의 글을 싫어했다. 아마 한 시대를 살아간 한 세대의 삶을 베스트셀러란 도매가로 처리한 상술이란 선입관이 크게 작용했으리라.

어쨌든, 이 책은 중앙도서관 서가를 떠돌다 우연히 집게되었다. 요즘들어 우연히 눈에 띄는 책들은 모두 제목에 끌려 집게되는 경향이 짙은데, 그간 공지영에 대해 갖고 있던 선입관을 교정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할까.

사 실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일자 무식하다고 할 정도로 아는 것도 없고 그녀의 책 또한 『고등어』, 『수도원 기행』,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정도 읽었을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갖고 있는 적대감에 가까운 그녀에 대한 내 선입관은 스스로 만들어낸 주관이기보다 주변인들로부터 기인한 내용일 것이다.

그래, 이 책은 그녀의 작품과 그 작품들이 빚어낸 공지영이란 작가의 아우라에 대한 변명이며, '왜 글을 쓰는가?'에 대한 자기 고백과 작가로서 생활인으로서 사람들과 빚어낸 갈등에 대한 성찰과 극복과정에 대한 솔직한 일기이다.

그녀에 대해 그간 갖고 있던 내 선입관이 너무나 폭력적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겠다. 사람 또는 사물에 대한 순간적 느낌이 빚어낸 선입관은 얼마나 폭력적이던가. 그 때문에 우리는 상처 입고 상처 내며 살아가는 것. 상처없는 영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예민한 감수성으로 무장된 작가('여류'라는 수식어는 빼기로 하자)의 경우는 더더욱 쉽게 상처 입을 수 있는 것. 상처는 치유 가능하다. 작가가 마지막에 던진 치유 방법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 특별히 공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너무나 소극적이지 않은가?' 라며 반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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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
여행의 끝에서 다시 시작하기


이제 긴 여행을 마감하고 돌아온 건가?
그래, 네가 직장이랑 그 모든 걸 뒤로하고 떠났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땐, 참 너 답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혼자 보내는 시간을 배우기 위해 떠났다는 네 이야기가 못내 서운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떠나기 전보다 훨씬 풍성해진 네 모습 앞에서는 서운함보다 반가움이 앞설거야.

궁극적으로 삶은 고득하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되는 걸까? 누구나 유목의 삶을 꿈꾸지만 한반도의 좁은 땅덩이에 익숙해진 우리들의 마음 한 구석에는 귀속의 욕망이 꿈틀대고 있잖아. 이런 모순과 자기 아집을 태연히 맞이하기까지가 얼마나 힘든 여정이던가.

여행의 뒤안길에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는 네게 자신에게 충실한 시간이 놓이길 빌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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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

요즘 증상...

길위에서 : 2005. 1. 10. 00:53
1.
늘 뭔가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림.
책이든 신문이든, 무언가 읽다가 종착역을 지나치는 경우가 다반사임.

2.
열심히 읽으려 노력함에도 난독 증세를 보임.
심각함.

3.
읽든 보든 듣든, 뭔가 끼적여야 한다는 강박증 드러남.
어휘의 선택과 문장 구성에 심히 어려움을 느끼고 있음.

4.
난독증과 글쓰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작년 연말에 구입한 수제 노트에 일기를 끼적이기 시작함.
과거처럼 긴 일지를 쓰진 못하지만, 그래도 이 빌어먹을 조급증 치료에 도움이 될 듯함.
꾸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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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