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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비양도>



1.
추운 날씨와 새해 맞이 긴장감이 겹쳤는지 약간의 감기기운과 함께 이불 속 안락함의 여유를 져버리기 아쉬워 늘어진 아침잠을 즐겼어. 점심인지 아침인지 구분할 수 없는 식사 후 톡 쏘면서도 달콤한 유자차 한 잔과 함께 텔레비전 화면 위 고현정의 얼굴에 주목하면서 말야. SBS 특별드라마 '봄날'의 재방송, 이번 주말 내내 관심을 갖고 본 드라마...

2.
그래, 그곳은 섬이었어. 정겨운 돌담길, 익숙한 바다와 하늘 그리고 억새. 화산의 뜨거움은 그렇게 삶이 되어 어느새 천년 세월을 지켜왔으니 그곳이 바로 비양도야. 사람들은 '섬'이란 단어에서 쉽게 여름을 떠올리지. 한여름의 더위를 피하기 위한 휴식처, 도시의 일상과는 다른 삶이 존재하리라는 꿈 말이야. 그런데 그거 아니? 당신이 꿈꾸던, 그렇게 가고 싶어하는 그 섬에서도 일상의 삶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당신이 상상하는 것 이상 힘들고 고된 일상이 존재하는 곳이 섬이야.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섬. 내게 바다는 익숙한 친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낯선 죽음과도 같은 이름이었어. 우리 동네 구석진 곳 몇 백년 동안 바다를 마주보던 큰 나무 밑에는 돌담으로 둘러쌓인 기도처가 있지. 바다에서 삶을 영위할 사람들의 안녕과 불의로 바다에서 맞이한 죽음을 달래기 위한 공간. 그 공간은 돌담 위 눌러 붙은 촛농과 빛 바랜 오색의 천 조각들 사이에서 간절한 희망과 비통의 눈물을 품고 있어.
여름날 집 앞 좁은 도로 위에서는 기름때 절은 민소매 셔츠를 걸친 채 어부 아저씨가 종종 줄담배를 피워대며 그물을 손질하곤 했지. 아저씨의 몸에서는 푸른 바다 냄새보다 가난의 소금 냄새가 피어났어. 물론 틀니를 보이며 주름 속에서 피어나던 아저씨의 웃음에 나 또한 웃어보이곤 했지만 그 가난의 소금 냄새가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어.

3.
아직은 추운 겨울이야. 봄날이 과연 봄날까지 계속 방송할지 잘 모르겠어. 추운 겨울날 '봄날'이란 타이틀을 건 드라마라니... 글쎄, 떠들썩했던 '고현정'의 컴백 작품치고는 좀 뻔한 스토리가 아닐까도 싶지만, 극이 '섬'이라는 익숙한 공간에서 시작하니 내 관심이 높아진 건 사실이야. 지진희의 연기가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더라도 어느덧 좋은 연기자가 된 조인성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더라구. 당분간은 주말에 몰입할 무언가가 생겼다는 게 기뻐.

4.
Damien Rice
서핑 중 발견한 좋은 노래. '쌀'아저씨로 부르기로 결정한 이 아저씨의 팬 페이지에는 대표곡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곡들을 mp3로 다운받을 수 있더라구. 영국 아저씨들이 참 음울한 노래를 잘 만드는 듯해. 방방 뛰는 노래들의 대다수도 그 모티브는 음울함이니 섬나라라 그런가?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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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