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 책 두 권을 읽다. 강준만 교수의 '전화의 역사'와 수디르 벤카테시 교수의 '괴짜 사회학'. 학자들이 쓴 책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나 문헌연구와 민속지학이라는 접근법의 차이점을 갖고 있는 두 책은 내게 공부의 의미를 되묻는다.
대중문화연구자로 자신을 규정하는, 강준만 교수의 '전화의 역사'는 일반 대중서를 넘어 국내 언론史에 관한 입문서로도 충분히 활용가능한 책이다. 개화기 이후부터의 언론사라 하면 흔히들 '한성순보'나 '독립신문'으로 시작해 신문의 역사를 충실히 다루는 편이다. 기술의 역사가 일천한 면도 있겠지만, 신문을 제외한 매체들이 언론사에 등장하는 건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 때뿐이다. 그나마 전화나 전신의 역사는 근대신문의 등장 이후에는 언론사의 변경이나 그 너머에 위치한 문제였다. 근대 이전의 언론사에선 '저보'나 '보부상'에 의한 커뮤니케이션 형태가 언급되지만, 근대 이후의 언론사에선 신문 형태와 내용의 변화사가 학계의 주류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전화의 역사'는 근대 한국언론사의 변경에 위치했던 '전화'란 통신 수단을 매체사나 언론사의 위치에 복권시킨 저작이라 할 수 있다.
강준만 교수의 철저한 문헌작업에 다시 한 번 혀를 내두르게 된다. 물론 그의 저작 대부분이 철저한 문헌작업에서 비롯된 산물들이다. 책 뒤편에 실린 방대한 참고문헌은 늘 나를 주눅들게 만든다. 역시 게으름은 인류 최대의 적이다.
컬럼비아 대학교의 사회학 교수인 수디르 벤카테시 교수의 '괴짜 사회학'(원제 : Gang Leader for a Day)은 내 기준으로 분류하자면 대중서의 형식을 취한 민속지학 매뉴얼이다. 빈민연구에 대해 관심을 갖은, 시카고대학의 사회학 박사과정생이던 그가 시카고 최대 빈민지역인 로버트 테일러 홈스에서 10여 년 간 참여관찰한 내용이 이 책을 채우고 있다. 전형적인 중산층 출신인 벤카테시가 악명 높은 흑인 빈민지역의 인물들을 관찰한 내용은 그 자체가 하나의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다.
이 책에서 벤카테시는 자신의 연구 대상자들과의 관계에 대해 고민했고 그들의 입을 통해 얻어야할 자료에 대해 조사심쳤으며 연구자와 참여자의 사이에서 방황하고 고뇌한다. 10년이라는 짧지 않은 참여관찰은 그가 갱단의 지하경제에 관한 연구로 신진 사회학자로서 얻게 된 명성을 뒷받침하게 됐지만, 결국 그는 자신이 빈민공동체의 부정수익자들 중 한 사람이었다고 자백한다.
민속지학에서 이야기하듯 이 책은 현장기록에 충실한 '두껍게 쓰기'의 실현이다. 비록 학술적 글쓰기와는 다른 대중서의 형식을 갖고 있지만, 내용 자체는 그 여느 학술보고서보다 더욱 충실히 미국 흑인 빈민가의 삶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고 난 믿는다. 번역본으로 접했지만, 책 내용은 원문을 살펴보고 싶다는 의욕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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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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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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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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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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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디르 벤카테시 (김영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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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가 써야 할 논문에 대한 압박감이 다가온다. 강준만 교수처럼 철저한 문헌연구를 한 것도 아니고 벤카테시처럼 끈질긴 현장연구를 진행한 것도 아니기에, 난 내가 써야 하는 논문의 정체를 알 수 없다. 물론 이미 준비해둔 연구계획서에 살을 보태긴 하겠지만, 다시 한 번 연구계획의 토대를 재점검해야 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간 소원하게 지낸 지도교수들에게 조만간 전화 한 통 넣어야겠다. 물론 욕 먹을 각오는 미리 해두고...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