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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29 <8> 전자 정의 (Electronic Frontier Justice) by 망명객
  2. 2009.06.29 <7> 박애 자본주의 by 망명객
  3. 2009.04.14 <6> 사인화한 권력(김훈) by 망명객
  4. 2009.01.05 <5> 한국어 (고종석) by 망명객
  5. 2009.01.03 <4> 유행 (앨런 테인 더닝) by 망명객
  6. 2008.12.29 <3> 저널리스트 (루돌프 아우크슈타인) by 망명객
  7. 2008.12.28 <2> 사진의 힘 (테사 모리스-스즈키) by 망명객
  8. 2008.12.28 <1> 교과서 전쟁 (테사 모리스-스즈키) by 망명객
  9. 2007.06.10 착한 벗, 착한 동지 by 망명객
  10. 2004.12.07 시사와 역사 by 망명객
하버드 대학 대학생의 데뷔작 소설이 블로고스피어 내에서 표절로 밝혀진 사건을 두고 뉴욕타임스가 '변경의 정의 Frontier Justice'가 실현된 사례라고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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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상의 엄청난 자원이 도용의 욕구를 강화하기는 하지만 동시에 그 자원들 덕분에 표절을 감지해 내는 일도 훨씬 더 쉬워졌다. 이제 교사들은 과제물의 전거나 출전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구글 검색을 활용한다. 학생들이 낸 작문이 기대 이상이어서 의심스럽다는 생각이 들면 임의로 구절을 골라 웹상에서 검색하는 것이다. 또한 정교한 소프트웨어 패키지와 검색 데이터베이스가 문학의 무단 도용 행위를 적발해 내는 작업을 지원하고 있다. --------- (중략)--------- 그러나 최고의 탐지 시스템은 웹 이용자들의 경고다, 웹은 실체가 없는 소문과 적의가 난무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표절자와 도용인의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훌륭한 무대이기도 하다. --------- (중략)--------- 웹의 협력 윤리는 일종의 도둑질을 바탕으로 구축되어 있다. 따라서 불법의 수혜자들은 자신을 보안관으로 내세우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 볼 일이다. - 미래 시민 개념 사전, 9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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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1.

축제 연구자인 모 박사는 모 매체에 기고했던 자신의 글이 버젓이 레포트 거래 사이트에서 상품으로 올라가 있단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저장 매체 환경 변화에 따라 미처 보관하지 못하던 글이라 반가운 마음에 해당 업체에 전화를 건 모 박사. 업체 측에선 아무리 저자 본인이더라도 해당 아티클을 공짜로 제공할 수 없으며, 아울러 업체 측에 그 글을 넘긴 사람도 밝힐 수 없다고 응답했단다. 결국 자신의 아티클을 웹 상에서 결제한 뒤에야 받아볼 수 있었다는 모 박사의 탄식은 누구의 책임으로 돌려야 하는 문제인가?

상황2.

특정 키워드로 검색을 돌릴 경우 가장 많이 잡히는 정보들은 레포트 거래 사이트들이다. 손쉽게 보고서를 제출할 수 있다는 유혹에 빠진 대학생들과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정보제공자들이 협잡한 이들 사이트들에 대해선 그닥 크게 이슈화된 적이 없다. 하나의 사업 형태로서 그들의 수익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초기 DB 구축 단계에서 벌크형 정보사냥꾼들이 영리를 위한 노력을 들였음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초기에는 영리한 사업이었겠지만, 인터넷 유저의 한 사람으로서 검색 페이지를 어지럽히는 이들 레포트 거래 사이트 행위는 말 그대로 정보화 사회의 반달리즘이라 할 수 있겠지.

상황3.

수십에서 수백 명에 이르는 학생들의 보고서는 그렇다 치더라도, 웹 상 도둑질로 기사를 생산하는 기자들은 또 뭐냐~?(관련글) 이미 블로고스피어 내에서 보고된 사례만 보더라도 언론사 자체가 저작권 강화를 내세우는 논리에 역행하는 거잖아. 문제는 윤리라는 고색창연한 헛소리를 내뱉고 싶다.

상황4.

쓴 소리 내뱉고 난 후,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반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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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유행 (앨런 테인 더닝)  (0) 2009.01.03
<3> 저널리스트 (루돌프 아우크슈타인)  (0) 2008.12.29
Posted by 망명객
"우리는 스스로 속이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자선과 박애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멍청한 믿음이다."
새로운 박애주의자들은 뭔가 차이를 드러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더 큰 그림을 보지 못하는 이들의 노력과 활동은 대부분 변덕스럽고 자의적일 뿐이다. 이들의 괴상야릇한 정치적·종교적 신념이 탑재되어 있는 경우도 잦다. 이들은 자신이 상공업계나 정부와 더불어 큰 호수의 송사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부유한 개인에서 정당에 이르는 각종 행위 주체들의 자선과 기부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는 이 시대에 엄청난 부자들이 뒷구멍으로 정치와 우리 문화에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자유 재량권을 부여받는다면 이는 얄궂은 일이다.
- 제임스 하킨, 미래 시민 개념 사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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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과잉이 조직을 지배할 때, 자율성이란 정파적 관점에선 도구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문제는 도구를 바라보는 조직의 얼굴이 인간의 얼굴을 지을 때다. 그을 건 긋고, 맺을 건 맺어라. 상식 선에서 생각하라. 끝까지 믿을 건 스스로의 판단일 뿐. 정치 과잉의 인간들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날려주자. 넌 너고, 난 나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인간의 얼굴로 현혹하지 말라. 내가 바라는 건 그것 뿐이다. 부디 양아치처럼 굴지 말라. 이미 우린 시민사회든 운동권이든 정치 과잉의 양아치들을 너무나 많이 겪지 않았던가. 즐~
Posted by 망명객
사인화(私人化)한 권력은 조직의 기능과 역할에 따라서 권위를 분배하지 않는다. 권위는 최고 권력자에 대한 근접도에 따라서 분배된다. 이 사인화한 권력이 '헛것'의 지배를 가능케 한다. 사무라이들의 전쟁이 강렬한 장식과 상징물로 패션화하는 배경도 권력의 사인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전쟁은 이민족과 싸우는 조국 수호 전쟁이 아니라 언제나 무가 가문들 사이의 패권 다툼이었다.

 - 자전거 여행, 218쪽


Posted by 망명객
한국어를 '국어'라 부르는 관행에 일본어를 '고쿠고'라 부르는 관행만큼 국가주의 충동이 웅크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국어/한국어'의 쓰임새와 '고쿠고/일본어'의 쓰임새에선 나란한 편향이 읽힌다. 다시 말해 '국어'는 '한국 국민이 배우고 사용하는 한국어'인데 비해, '한국어'는 '외국인이 배우고 사용하는 한국어'라는 뉘앙스가 있다. 그런데 이 둘을 꼭 갈라놓아야 할까? 한국인이 쓰는 한국어를 지금처럼 꼭 '국어'라 불러야 할까? 이 책의 부제에서도 드러냈듯, 나는 '국어'보다는 '한국어'라는 말을 선호한다. 딱히 국가주의가 아니라 할지라도, '국어'라는 말이 드러내는 자기중심주의나 주관주의는 정신적 미숙의 표지다. '국문학'이나 '국사'라는 말도 다르지 않다. 외국인 한국어학자, 외국인 한국문학자, 외국인 한국사학자만이 아니라 한국인 한국어학자, 한국인 한국문학자, 한국인 한국사학자도 보고 싶다. 물론 여기서 '한국'은 딱히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의 약칭이라기보다 한반도라는 공간 또는 한반도 남반부라는 공간을 무심히, 다시 말해 별다른 정서적 이입 없이 가리키는 말이어야 할 테다.

- 말들의 풍경, 179쪽
Posted by 망명객
애당초 일회적이고 폐기하도록 이끄는 제조전략이 상품구입 후 쓰레기로 버리는 기간을 단축시키지 못하는 경우에도 유행은 때로 성공을 거둔다. 언젠가 오스카 와일드는 "유행이란 무엇인가? ...... 그것은 매우 조급하기 이를 데 없어, 우리가 6개월마다 한번씩 바꾸지 않으면 안되는 추악한 형식일 따름이다"고 말했지만, 유행은 그의 시대 이래 오로지 가속되어오기만 했다. 미국 기술평가국에 의하면 최신 유행은 80년대 후반에는 2개월 반만에 변했으며, 최신 유행의 옷이건 그렇지 않건간에 대부분의 옷은 닳아 헤지기 전에 유행에 뒤처져 못입게 된다. 한 마케팅 분석가는 25년 전에 "모든 산업은 여성패션 산업을 모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것이 현대 마케팅의 비결이다"고 말한 바 있다.
- 소비사회의 극복, 100-101쪽
Posted by 망명객
저널리스트는 선거에 이기고 정당을 후원하라고 위임장을 받은게 아니다. 기자가 정치를 하려고 하면 스스로 패자가 된다. 저널리스트 최악의 적은 정치인과 호형호제하며 허물없이 지내는 것이다. 많은 정치인과 개인적으로 가깝게 지냈지만 저널리스트로서 그러지는 않았다. 저널리스트는 영원한 우정을 나눌 수 없다.

- 권력과 언론, 19쪽
Posted by 망명객
개인의 감정을 전달하는 사진의 힘은 사진기를 만드는 기술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사진의 힘은 촬영기법과 사회적 기억의 상호작용에 의해 형성되며, 사람들이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이해하는가에 영향을 미친다. 거꾸로 우리가 사진을 어떻게 찍고 들여다보고 반응하는가를 결정하는 방식은 사회적인 힘에 좌우된다. 카메라가 세계적으로 보급됨에 따라 사진을 사회적으로 이용하는 데 대한 세계적인 통념이 생겨났다. 이러한 공통의 통념이 있기때문에 사진을 보는 이는 자기와 멀리 떨어진 시대나 장소에서 촬영한 영상에 손쉽게 공감할 수 있다.

- 우리 안의 과거, 117-118쪽

사진 앨범을 중심으로 기억을 재구성하는 동안,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기억의 특질을 변화시킨다. 사건은 이제 더 이상 내면적 경험에서만 기억되지 않고 객체화된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외부에서 바라보면서 개관화되고 고정된 자신의 사진 안이미지를, 인생의 특별한 순간을 채우고 있는 기쁨이나 고통, 혼란 같은 내면의 기억과 포개놓는다. 이 과정에서 자기 자신이나 가족을 끊임없이 변화의 일부로 주시하게 된다. 색이 바래는 사진 속에서 자기 얼굴을 볼 때만 비로소 세월의 경과와 함께 자기 자신 및 자기가 사는 세계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앨범은 기억을 역사화한다.

- 우리 안의 과거, 125-126쪽

역사에 대한 진지함을 추구하고자 한다면 사진을 볼 때 그 영상이 떠올리게 하는 감정에 대해 신중히 고려하는 일이 중요하다. 나아가 그러한 영상이 지닌 역사적 의미에 대해 사진가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될 수 있는 한 그 속에 담겨 있는 암묵적인 해석을 비판적으로 점검하고, 다른 해석의 틀을 적용하면 어떤 해석이 나올 수 있는지를 비교해서 검토하는 일도 요긴하다.
 
- 우리 안의 과거, 138쪽

사진으로 엮어내는 역사가 본령을 발휘하는 것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바로 직후의 몇 년 동안이었다. 이제는 수많은 심누사와 잡지사가 반세기도 훨씬 지나 고전이 되어버린 사진을 꽤 많이 축적한 상태다. 전쟁 자체의 엄청남. 전후 재건을 향한 고투를 겪으면서 고통스러웠지만 살아남았다는 공통의 경험을 시각적으로 회상하려는 갈망이 발생했다. 또한 대량소비와 매스미디어의 발달이 전체전의 체험과 어우러져 공통의 기억을 산출했고, 그것이 연대기 식으로 편집된 국민의 '집단 가족 앨범'을 출간하는 기반이 되었다.

- 우리 안의 과거, 143쪽

정지된 사진 영상은 사람의 기억에 강하게 눌어붙어 가장 선명하게 떠오르는 경우가 많은 반면, 동영상은 인간의 감정이나 표정의 움직임을 소리와 결합함으로써 눈물이 흐르는 감동을 자아내기 쉽다. 이렇게 충만된 감정은 다른 사람들과 공유될 때가 많다. 책이나 잡지에 인쇄된 사진을 뒤져보는 독자는 대체로 한 명이지만, 영화나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영상은 몇 사람이 함께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탄이나 웃음처럼 기묘하게 친밀한 순간을 얼굴도 모르는 타임과 공유하는 때도 있는 것이다.

- 우리 안의 과거, 173쪽
Posted by 망명객
동아시아에서 일어난 '교과서 전쟁'은 기억의 공유화나 역사적 책임, 역사 교육과 같은 문제가 국가적·국제적인 논쟁의 대상의 되어 역사의 망령이 사회생활에 유례없는 규모로 얼굴을 들이민 한 가지 예에 불과하다. 역사가 헨리 레이놀즈(Henry Reynolds)는 "역사가 지금처럼 정치적 논의의 중심이 되고, 클리오(그리스 신화에서 역사를 관장하는 신)를 지금처럼 선뜻 불러들인 적이 과거에 언제 있었던가?"하고 수사적인 질문을 던진 바 있다.(Reynolds 2000. 3) 이 말은 국가적 아이덴티티를 둘러싼 의견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정치지도자가 점점 더 빈번하게 역사를 동원하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사정을 두고 한 말이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원주민(Aborigine)에 대한 부당한 처사에 관한 책임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채, 미묘한 정치현안이 되고 있다.
기억의 공유화나 사죄, 역사적 책임이 정치적으로 돌출한 나라는 비단 오스트레일리아뿐만 아니다. 최근 체크와 독일의 정부는 제2차 세계 대전 때 저지른 잘못을 서로 사죄했으며, 노르웨이에서는 국왕이 국내의 소수민족(Saami)에 대한 처우를 사과했고, 뉴질랜드에서는 토지를 강탈당한 마오리(Maoris)에 대한 사죄문에 영국의 여왕이 서명을 했다. 또한 미국의 콜린 파웰(Colin Powell) 국무장관은 예전에 진두를 지휘했던 베트남을 다시 방문하여 밀라이(My Lai) 학살 같은 사건에 대한 미국의 책임성 논란에 불을 붙였고, 몇몇 미국의 정치가와 운동가들은 노예매매의 피해자 자손에게 보상하라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문제는 단지 과거의 잘못에 대한 '국가의 죄'를 재단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Barkan 2000 참조) 과거는 다른 형태로도 정치적 쟁점이 되고 있다. 이제 막 21세기를 맞이한 동남아시아에서는 자국의 역사를 굽이굽이 그려낸 영화가 붐을 이루고 있는데, 특히 이웃나라와의 분쟁을 다룬 것이 인기를 모은다. 타이의 역사학자인 찬윗 카셋시리(Charnwit Kasetsiri)에 따르면 공식적인 학교교육에서는 역사에 대한 관심이 희박한 반면, 역사의식의 통속적 표현에 대해서는 국민적인 열광이 대단하다는 점은 기묘한 이분법이다. 제레미 바르메(Geremie Barme)도 1990년대 중국에서 "일반대중의 역사인식이 변화하는 데 명확한 영향을 준 것은" 역사 전문가인 학자가 아니라 "신문, 잡지, 텔레비전, 상업출판을 활동의 장으로 삼는 소설가, 저널리스트, 일부 학자"임을 지적했다.(Barme 1993, 265)
그렇다면 역사의 위기는 단지 건망증의 문제가 아니라 심오한 딜레마를 반영한다. 세계적인 규모의 이동과 함께 급속하게 변화하는 다양한 미디어 시대에 과거에 대한 지식을 세대에 걸쳐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현재의 삶을 과거의 사건과 어떻게 결부시킬 것인가? 과거의 어떤 부분을 자신의 과거라고 할 것이며, 어떤 의미에서 자신의 과거로 받아들일 것인가?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동아시아의 논쟁에서 자극을 받은 나는 위와 같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일본의 교과서 논쟁은 사죄와 역사수정주의를 둘러싼 세계 각지의 분쟁과 마찬가지로, 세대를 걸친 역사 지식의 전달 문제 및 그것과 밀접하게 관련된 역사적 책임의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전반적인 역사의 위기와 세계의 역사가들이 오늘날 당면한 도전에 대한 서술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일본의 교과서 논쟁에 대해 가볍게 논평하는 것으로 시작하고자 한다.

- 우리 안의 과거, 19-21쪽
Posted by 망명객

"대덕이시여, 곰곰이 헤아려 보매, 착한 벗이 있고 착한 동지가 함께 있다는 것은 이 성스러운 길의 절반에 해당한다 생각됩니다. 이런 소견은 어떻겠습니까?"

 

"아난다여, 그것은 잘못이다 아난다여, 그렇게 말해서는 안된다. 아난다여, 착한 벗이 있고 착한 동지가 함께 있다는 것은 이 성스러운 길의 전부이니라."

 

- 아함경, 마스타니 후미오 저, 이원섭 역


Posted by 망명객
역사에 밝고 시사에 어두운 사람은 허화하다.
시사에 밝고 역사에 어두운 사람은 경박하다.

결국 날카로움과 함께 무거움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우리에게 인문사회과학이 필요한 것은 바로 날카로움과 함께 무거움을 바탕으로 한 사고의 넓이와 깊이의 확장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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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님의 블로그를 들렀다가 잠시...
Posted by 망명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