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007

길위에서 : 2005. 1. 8. 10:21
무척 추웠다. 가뜩이나 웅크린 어깨가 옹송거릴 정도로 겨울바람은 차가웠다. 그렇게 찬 바람이 불던 오후, 양복쟁이들의 거리, 가끔은 투쟁의 거리가 되기도 하는 여의도 한복판에 내가 있었다. 넓고 깨끗한 인도와 높게 올라선 빌딩들은 거북한 이질감으로 내게 다가왔다. 결코 섞일 수 없을 듯한,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와도 같은 반듯함과 깔끔함에 담배꽁초 흠집을 내고 싶다 느낀 건 내가 삐딱하기 때문이겠지.

날씨가 춥지 않았으면 그냥 길거리에 있었을 것을. 이질감으로 점철된 거리의 어느 커피숍에서 코코아 한 잔과 비스킷 한 조각, 그리고 윤후명의 소설책으로 시간을 달랬다.

창 밖으로 보이는 국회의사당 앞 전투경찰들을 배경으로 익숙한 얼굴이 다가온다. 아버지.

코가 얼고 귀가 떨어질 듯 추운 날 이질감과 괴리감이 만연한 공간에서 익숙한 얼굴을 대하던 순간, 내 맘 깊이 알 수 없는 울컥거림이 몸을 휘감는다. 왜 그랬을까? 1년 만에 긴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조차 덤덤했건만 스물일곱이 되어 겨우 분기만에 만난 아버지 앞에서 느끼던 이 낯선 감정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 사이 더욱 말라 버렸네."

부자 사이의 대화는 단문 형태로 오고간다. 만남의 시간조차 길지 않았다.

"밥은 꼭 챙겨먹어라.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

부모님의 잔소리로 치부해버려도 좋을 이야기. 그 이야기에 자칫 눈물을 쏟을 뻔 했다. 이질감과 거북함의 거리에서 그냥 펑펑 울어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짧은 시간을 보내고 아버지와 나는 수많은 익명의 인간들이 급히 오고가는 서울의 거리에서 헤어졌다. 아버지와 헤어져 학원으로 향하는 길, 내 손에는 저녁밥은 꼭 챙겨 먹으라는 아버지의 염려 대신 돈 5만원이 쥐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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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