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국가대표팀 최종평가전인 이집트와의 경기를 김모 선배의 초대권으로 함께 가다.

스포츠 관전을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애써 챙겨주는 김 선배의 호의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사실 난 축구경기나 야구경기 등 각종 스포츠 이벤트는 집에서 텔레비전을 통해 관전하는 데 익숙하다. 경기 룰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해설자의 설명과 필요한 부분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리플레이와 클로즈업 그리고 다양한 각도의 화면에 익숙해지다 보니 경기장에서의 직접 관전은 내게는 조금 낯 선 일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연고지 팀 하나 없는 시골에서 자란 탓에 경기장에서의 관전 경험이 그리 많지 않은 탓도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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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점에 가까운 추위 속에 찾아간 상암 운동장의 야경은 글레디에이터의 콜롯세움을 연상케 한다. 광적이라 표현할 수 있던 2002년 월드컵의 열기를 직접 경험하기 보다 관전자로 바라봤던 내게 그것은 서글픈 현실이었다. 올림픽과 같은 국가의 대사를 치르는 데 있어 우리 국민들만큼 헌신적이었던 국민이 또 있을까?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 빨간색 티셔츠를 입고 '대한민국'을 외쳤다. 어떤 이는 감동이었다고 표현하지만 내게 그것은 서글픔 그 자체였다. 물론 과거의 억압적 국민동원에서 자발적 동원으로 바뀌었다는 긍정성을 염두에 두고서라도 그간의 신나는 일이 없던 일반인들에게 그것은 하나의 짜릿한 쾌감이었을 뿐이다. 두고두고 평생을 간직하며 살아갈 그런 쾌감 말이다. 전쟁에서 돌아온 군인들과 일반 서민들을 위해 열렸다던 고대 로마의 검투 시합과 현대 국가대항 축구시합 사이에서 차이점보다 유사성을 느끼는 건 혼자만의 생각일까. 그래도 현실이 고달픈 이들에게 웃을 수 있는 여유를 준다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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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결과는 1:0으로 우리나라가 패했다. 축구의 광팬인 김 선배의 직접 해설과 붉은악마의 응원, 그 사이에서 해설과 응원 그 어느 것에도 열중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김남일에 열광하는 서 선배를 떠올렸다(이후 확인해보니 역시 서 선배도 내가 앉은 스탠드 맞은편에 있었단다).
날씨가 추웠고 또한 이기지 못하고 진 경기였지만 그래도 당분간 2006년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큰 기다림이었을 것이고 기대를 걸 수 있는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저 앞으로 국민들이 웃을 수 있도록 국가대표팀이 힘내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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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