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철거민 사망 소식에 대한 단상
지난 97년, 대학 신입생이던 나를 하숙방에서 깨운 건 근처 지역 철거대책위원회에서 울리던 민중가요였다. 아침 7시마다 울리던 그 노랫소리를 기상곡 삼아 하루를 열곤 했다. 그 해, 행당동에선 용역과 철거민의 거친 싸움이 있었다. 용역에 의한 성폭행 사실이 공공연한 사실로 거리의 유인물을 채우고 있었다. 전농동에선 철거민과 용역과의 싸움에서 한 사람이 죽어야만 했다.
철거촌이 행당동과 전농동에만 있었던 건 아니다. 지금은 대단위 아파트 건물이 웅장하게 들어선 금호동 일대가 모두 철거촌이었다. 종암동과 봉천동, 북가좌동뿐만 아니라 수원 권선지구란 지명도 기억의 끝에서 그 존재를 드러낸다. 대학생 농활이 농민학생연대활동에서 농촌봉사활동으로 읽혀가던 무렵, 빈민학생연대활동의 준말인 빈활은 늘 긴장감과 폭력의 그늘 아래 있던 활동이었다. 한 겨울의 추위 속에 순번을 정해 밤새 규찰을 돌고, 지역 관공서 앞 아스팔트 위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언제인진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동절기 강제철거를 금한다는 행정 명령이 있었던 것도 같다.
지난 세기말의 이야기를 꺼냈다. “옛 생각 나지 않냐?” 용산 철거민 5명의 사망 소식을 인터넷으로 확인할 즈음 옛 선배가 보낸 문자 한 줄은 추억으로 곱씹기엔 너무나 아픈 기억을 환기시킨다. 세기말에도 소수였지만 여전히 소수의 대학생들이 빈활을 수행하고 있다. 그리고 동절기에도 강제철거가 자행된다. ‘뉴타운’이란 이름은 철거투쟁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는 사실. 폭력의 세기는 책 속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거리 위에서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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