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침'에 해당되는 글 66건

  1. 2009.01.20 용산 철거민 사망 소식에 대한 단상 6 by 망명객
  2. 2008.12.29 역대 정권이 빠진 실패의 함정, 독선! by 망명객
  3. 2008.12.16 재벌을 재벌이라 부르지 못하고 공영방송을 공영방송이라 부르지 못하는 by 망명객
  4. 2008.12.14 다문화사회, 아직은 먼 이야기 by 망명객
  5. 2008.12.11 돈 없으면 취업도 힘들다 1 by 망명객
  6. 2008.09.23 유모차 부대의 슬픔 2 by 망명객
  7. 2008.08.01 생각을 규제하는 사회 4 by 망명객
  8. 2008.06.30 개소리 by 망명객
  9. 2008.05.28 촛불을 들고... by 망명객
  10. 2008.05.28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허하라 by 망명객

지난 97년, 대학 신입생이던 나를 하숙방에서 깨운 건 근처 지역 철거대책위원회에서 울리던 민중가요였다. 아침 7시마다 울리던 그 노랫소리를 기상곡 삼아 하루를 열곤 했다. 그 해, 행당동에선 용역과 철거민의 거친 싸움이 있었다. 용역에 의한 성폭행 사실이 공공연한 사실로 거리의 유인물을 채우고 있었다. 전농동에선 철거민과 용역과의 싸움에서 한 사람이 죽어야만 했다.


철거촌이 행당동과 전농동에만 있었던 건 아니다. 지금은 대단위 아파트 건물이 웅장하게 들어선 금호동 일대가 모두 철거촌이었다. 종암동과 봉천동, 북가좌동뿐만 아니라 수원 권선지구란 지명도 기억의 끝에서 그 존재를 드러낸다. 대학생 농활이 농민학생연대활동에서 농촌봉사활동으로 읽혀가던 무렵, 빈민학생연대활동의 준말인 빈활은 늘 긴장감과 폭력의 그늘 아래 있던 활동이었다. 한 겨울의 추위 속에 순번을 정해 밤새 규찰을 돌고, 지역 관공서 앞 아스팔트 위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언제인진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동절기 강제철거를 금한다는 행정 명령이 있었던 것도 같다.

지난 세기말의 이야기를 꺼냈다. “옛 생각 나지 않냐?” 용산 철거민 5명의 사망 소식을 인터넷으로 확인할 즈음 옛 선배가 보낸 문자 한 줄은 추억으로 곱씹기엔 너무나 아픈 기억을 환기시킨다. 세기말에도 소수였지만 여전히 소수의 대학생들이 빈활을 수행하고 있다. 그리고 동절기에도 강제철거가 자행된다. ‘뉴타운’이란 이름은 철거투쟁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는 사실. 폭력의 세기는 책 속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거리 위에서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철거민 5분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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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범도 하기 전에 재계와 빚을 마찰을 걱정했는지 노 당선자는 재벌 개혁의 점진적·자율적·장기적 추진을 약속했다. 노무현 정권의 개혁 행로가 쇳소리와 칼바람을 부를지 점진과 자율로 기울지, 그것은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다만 "지금은 반대하고 있으나 뒷날 잘했다는 것을 알게 될 테니 참고 따르라"는 식의 개혁 밀어붙이기만은 꼭 피하기 바란다. 역대 정권이 빠진 개혁 실패의 함정이 바로 이 독선이었다. 새 정권에 새로 전하거니와 개혁은 쿠데타가 아니라 일상의 생존 방식(modus viviendi)이 돼야 한다.

 - 정운영, 정운영의 마지막 칼럼집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 중


고 정운영 선생이 5년 전에 쓴 글을 다시 읽고 있다. 현상을 넘어 본질을 꿰뚫는 선생의 혜안이 부럽다. 민주주의의 상식적 조건이지만 이를 지키지 못했기에 지난 정부는 정권을 넘겼고, 현 정권은 수많은 이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그 어느 해보다 소통을 외친 한 해였다. 촛불도 청와대도 소통을 외쳤다. 촛불은 거리로 나섰고 청와대는 괴담 운운하며 라디오방송을 택했다. 거리와 라디오방송의 간극은 화성과 금성의 남과 여처럼 멀기만 하다. 쌀쌀한 거리에는 생존의 악다구니가 가득하다. 누군가는 분노했고 누군가는 냉소할 뿐.

2008년이 이렇게 저문다.
Posted by 망명객
홍길동은 아버지 홍판서 앞에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울부짖었다. 이는 조선시대의 적서 차별제가 신파의 한 장면으로 각색된 대목이다. 조선시대의 적서 차별제와 반상 계급제가 철폐되었다는 현대에도 엄연히 계급은 존재한다. 계급이란 말이 레디컬하다면 조금 순화해서 계층이라 부르도록 하자. 

계급과 마찬가지로 계층도 위계질서에 따라 갖추게 되는 문화자본이 다르다. 조선시대의 홍길동이 호부호형을 못한 것처럼, 계층에 따라서 호명되는 내용이 달리 나타나곤 한다. 호칭과 관련해서 가장 무난한 호칭은 누가 뭐래도 '선생님' 아니겠는가.

한창 벌어지고 있는 역사 교과서 논란에 전경련이 양 팔 걷고 나섰다. 대기업 집단의 부정적 측면을 부각하는 '재벌'이나 '문어발'이라는 용어가 교과서 서술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관련기사). 한 술 더 떠, 아예 학교장과 방송작가들에게 경제교육까지 시키겠다고 나섰다. 현재 군 장성과 일선 교사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시장경제 교육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관련기사).

고등학교에서 배운 경제 상식으로는 경제의 3주체는 국가와 기업 그리고 가계다. 전경련은 3주체 중 기업을 대표하는 이익단체. 이익단체인 만큼 자신들의 입장을 주장할 수는 있지만, 현 상황이 너무 일방적으로 기업주체가 독주하고 있는 형국이라 걱정스러울 뿐이다. 기업의 독주는 국가가 견제해야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국가가 기업의 독주를 독려하고 있는 판이 아닌가.

'재벌'은 엄연히 두산백과사전에 등재된 경제용어다(두산도 재벌로 분류된다). 사전에는 일종의 콘체른으로 '거대 자본을 가진 동족으로 이루어진 혈연체 기업체군'을 재벌이라 부른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는 위키피디아에도 'jaebeol'이란 단어로 등재돼 있다. 하물며 jaebeol이란 단어가 언급된 학술자료도 넘쳐난다. 영자신문들은 말 할 것도 없다. 세계에 널리 통용되고 있는 몇 안 되는 국산 전문용어 중 하나가 바로 재벌이다. 한국경제의 특성을 설명할 때 뺄 수 없는 핵심적인 단어가 되어버린 것이다.

글로벌화가 달리 글로벌이겠는가. 우리 것이 소중한 것이다. 세계적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는 자랑스런 우리의 용어를 전국민이 애용하는 걸 장려하는 것도 모자라 교과서에서 빼달라는 게 전경련의 주장인 것이다. 그건 그만큼 재벌이란 호칭이 캥긴다는 뜻일 게다.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다면 호칭을 부정할 게 아니라 스스로 캥기는 부분을 드러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비록 용어의 형성사는 부정적이었지만 진정으로 떳떳한 용어가 될 수 있도록 호명 당한 이의 노력하는 자세. 그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자신들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씯고자 한다면, 진정으로 사회에서 인정받을 일을 해야 한다. 탑다운 방식의 교육 확대안을 내놓는 걸 보면 아직도 재벌의 버릇을 못 버린 것이다. 더욱이 이번 교육 확대안에선 학교와 방송국과 같은 이데올로기적 기구들을 겨냥했다는 점이 심각하다. 낙하산 인사를 통한 하드웨어 교체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소프트웨어까지 제공하겠다고 취지다. 교과서 논쟁과 같은 치열한 상징자본의 싸움과 그 측면에서 벌어지는 전경련의 교육 사업. 교육계와 방송계에 대한 자본의 편승전략은 치밀하게 진행되고 있다. 결국 공영방송을 공영방송이라 못 부를 때가 되면 재벌을 진정 재벌이라 부르지 못하는 시대가 될지도 모르겠다. 

불행한 사실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홍길동은 호부호형을 허하지 않는 이땅을 떠났지만, 내겐 그렇게 옮겨갈 율도국조차 없단 사실이 암울할 뿐이다.
Posted by 망명객


인도네시아에서 온 22살의 외국인근로자 S는 12월 7일 성동구청에서 열린 외국인근로자 송년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전날 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해야 했다. 그는 단순히 놀기 위해 송년잔치에 참석한 게 아니었다. 조국의 전통의상을 선보이기 위해, 자신의 문화적 뿌리를 타인들과 나누기 위해 야근을 무릎쓰면서 그는 송년잔치에 참석했다. 수줍은 듯 자신의 의상을 소개하는 그의 목소리는 밝았다. 타인과의 교류, 타문화권과의 교류에서 자신을 밝힐 수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던 모양이다. 

여러 언론사들이 성동구의 후원으로 열린 외국인근로자 송년잔치를 취재했다. 여러 나라의 다양한 전통의상, 신나는 행사 장면 등, 기사감으로는 충분한 아이템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웃고 떠드는 외국인근로자들의 모습, 그것 뿐이었다. 우리 사회가 진정한 다문화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의제설정은 취재를 나온 언론사들의 관심 밖이었다.

지난 10월, 현재 23만 명으로 추정되는 불법체류자를 연말까지 20만으로 줄이겠다는 정부 정책이 발표됐다. 3만 명을 줄이겠다는 건 단속을 의미한다. 이미 마석가구단지에선 대규모 단속이 진행됐다.(관련기사) 단속 과정에서 인권은 처참히 묵살되곤 한다. 법에 명시된 적법한 절차 정도는 더욱 가볍다. 

가벼운 법적 절차 앞에서, 그래도 인권은 무거워야 한다.
Posted by 망명객
토익 시험을 처음 치른 건 대학 3학년이 끝나갈 시점이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후배 따라 강남의 어느 거리에서 토익 응시원서를 작성했던 게 지난 세기 말. 토익이란 게 뭔지 경험삼아 쳐 봤다지만, 사전지식이 전무했던 관계로 수험표와 함께 컴퓨터용 사인펜 두 자루만 달랑 들고 고사장에 들어섰다.

감독관 왈, "본 시험 답안 표기는 연필이나 샤프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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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용 사인펜이 아니라 연필이나 샤프를 이용하라니 낭패였다. 다행히 앞자리에 앉은 분께 연필 한 자루를 얻어 무사히 시험을 치를 수 있었다. 성적? 난 지난 세기에 치른 첫 토익 성적을 잊지 않을 만큼 기억력이 좋은 편은 아니다. 다만 토익성적 800점 대 이상이면 무난히 취업을 할 수 있었고, 900점 대는 신의 경지였다는 정도는 기억한다.

21세기가 됐다. 토익만으로는 모자란지 각종 자격 시험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한국어능력시험, 한자능력시험, 텝스, 한국사시험, MOS 등등... 각종 자격시험 대비 강좌 안내 포스터가 대자보를 대신해 캠퍼스를 뒤덮었다.

오늘, OPIc(오픽)이란 영어시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복학생 후배에게 물어보니, 영어구술시험 비슷한 건데, 삼성 입사시험에 반영된다고 요즘 많이들 보고 있는 시험이란다. 응시료가 7만원이 넘는 시험이다.

토익 900 중반 이상, MOS 취득, 한자자격시험 2급 등 후배들의 현란한 스팩을 듣고 있자니 머리가 아득해진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투자한 것일까. 4년치 대학 등록금에 각종 자격 취득비용까지, 대학생이 봉인 세상이 된 건 아닐까.

이런 세상에 독서 자격증이 생긴다 해도 하나도 이상할 게 없을 듯 하다. 독서 유무와는 상관없이 책 한 권 구입시, 책 한 권 대출할 때마다 개인별로 포인트를 적립해 독서 자격증을 주는 것이다. 그러면 책이 좀 팔리는 세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책 읽는 사회가 아니라 책이 팔리는 사회 말이다. (장르별 안배까지 고려한다면 머리가 복잡해지니 일단 여기서 접자) 어차피 토익 900 이상의 영어 벙어리들이 양산되고, PPT 하나 제대로 만들 줄 모르는 MOS 자격증 소지자들이 늘어나는 판국에 독서자격증 같은 얼치기 자격증 하나 생긴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으리라.

공교육 강화를 아무리 외친들, 각종 자격 시험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사회 시스템 속에선 관련 사교육 시장이 커질 수밖에 없다. 좋은 일자리는 줄어들고 대학 졸업을 앞둔 산업예비군들은 초조하다. 단기속성 특강이 버젓이 횡횡하는 캠퍼스, 실용은 곧 돈이다. 등록금으로는 전공 수업을 듣고, 각종 자격시험은 개인 주머니에서 알아서 해결하라는... 그래서 취업은 돈이다.



Posted by 망명객

유모차 부대의 슬픔

똥침 : 2008. 9. 23. 19:53

어청수 "유모차 부대에 아동 학대 혐의 적용 검토"

 

나는 여성주의나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무식으로 일관하는 편이다. 남자로 태어났다는 태생적 한계를 핑계로 내세우긴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구차한 변명일 뿐이겠지. 그래도 몇 자 끄적이는 이유는 상식을 넘어선 발언들이 난무하는 현실을 개탄하기 위해서다.

 

어청수 경찰청장이 "어린아이를 이용해서 위험한 시위현장에 데리고 나온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촛불집회에 참석한 '유모차 부대'에 대한 수사를 중단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기사에서 언급된 인용이 정확한지의 여부는 논외로 치고, 이 문장을 자세히 살펴보자. 손보자면 "어린아이를 위험한 시위현장에 데리고 나온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도로 고칠 수 있일 것이다. 여기서 굳이 말꼬투리를 잡는 이유는 어린아이를 이용했다고 밝힌 점이다. 어느 엄마가 자신의 아이를 이용할까?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어 청장의 언술에 잠깐 놀라는 표정 한번 지어주자.

 

그리고 위 기사에서는 어청수 청장을 띄워주려는 조연배우가 등장한다. "아동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시위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데 대해 아동 학대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한나라당 이범래 의원이 바로 그다. 법학을 전공하고 이명박후보캠프 법률지원본부장을 거친 분 답게 그의 뛰어난 법리 적용 능력은 대한민국 아동의 인권 보호에 까지 닿아있다.

 

그러나 잠깐 돌려서 생각해보자. 법리라는 것도 결국은 현실을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좀 더 짱구를 굴려볼 필요가 있다. 왜 유모차 부대가 생겨났는지에 대한 근본적 원인을 되물어 봐야 하는 것이다. 왜 일부 여성들이 유모차를 끌고 위험하다는 시위현장에 나오게 된 것일까. 유모차 끄는 게 재미있어서? 만일의 사태에 아이를 핑계로 잡혀가지 않기 위해서? 시사인 표지에 실렸던 '바보야, 문제는 민주주의야!'란 문장을 돌려서 말하자면 '바보야, 문제는 육아야!' 정도가 될 것이다.

 

출산율 저하의 시대, 우리 엄마들의 한숨의 골은 더욱 깊어만 간다. 축복 속에 태어난 생명을 돌보는 일에도 세상은 끊임없이 돈을 요구한다. 맞벌이 가정이 늘어난 만큼 믿을 수 있는 탁아시설이나 육아시설이 늘었을까? 여기에 여성 비정규직 문제까지 끌어들인다면 우리 엄마들의 한숨으로 이 땅이 정말 꺼질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 어청수 경찰청장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위험한 시위현장이란다. 위험한 시위현장을 조장하고 방조한 경찰청장이라니. 어서 옷 벗고 물러나시기 바란다. 위험의 발화점은 시각 차가 있으므로 그냥 넘어가겠다. 대한민국 엄마들이 육아와 사회참여란 두 마리 토끼를 쫓다 만난 게 '유모차 부대'다. 그렇게 유모차 부대가 못마땅 했으면, 일선 경찰서나 파출소에서 시위에 참가한 엄마들을 위해 임시 탁아소라도 운영했어야 하는 게 논리적 수순이 아닐까. 결국 아동 인권도 국가기구인 경찰이 책임을 졌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건 아동 인권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여성 인권의 문제이기도 하다.

 

육아의 굴레에서 집회·시위 참여의 자유도 누리지 못하는 대한민국 엄마들은 그래서 슬프다.

 

 

 

 

- 참고로 이범래 의원 홈페이지는 트래픽 초과로 접속이 원할치 않다. 오히려 이범래 의원이 바라는 것이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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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
과거를 돌이키건대, 교과서를 제외한 일반 서적을 가장 많이 읽었던 시절은 군인이던 시절이였더랬다. 공부 못하는 친구의 책가방이 가장 무겁고 세상의 청개구리들이 늘 그러듯, 책 읽으라 하던 시절에는 술을 가까이 했고 총 들라 했을 땐 책을 가까이 하던 게 나였다.

혹자는 당나라 부대 출신이라 책을 많이 봤노라고 음해성 멘트를 날릴 수도 있겠지만 군대에선, 특히 훈련소 시절에는 내무반에 비치된 '좋은 생각'이나 '샘터' 류의 도덕 잡지에 찍혀 있는 활자들도 섹시해보이기 마련이다. 물론 군입대 전이야 그런 잡지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더랬다.

짠밥 안 되는 이등병 시절, 누구나 해봤을 화장실 초코파이 시식의 추억과 함께 건빵주머니에 몰래 숨겨 항문에 힘줄 때마다 읽던 도덕 잡지 글귀들에 대한 추억도 함께 했더랬다. 그 신성한 이등병의 독서 시간에도 막사 화장실 천장의 습기는 늘 경계해야 할 주적이었다. 아롱아롱 방울진 습기들이 신성한 이등병의 책 위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 년에 몇 권은 국방부 마크가 선명히 찍혀 '병영도서'란 이름으로 보급이 되었더랬다. 예비군을 접고 민방위로 진출을 꿈꾸는 지금도 기억 속에 새록새록 떠오른 건, 공포의 외인구단의 작가 이현세가 그린 '까치병장' 시리즈였더랬다. 초딩시절 학교를 통해 보급되던 호국보훈 만화 시리즈의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역작이었다. 화장실에 숨어 책을 읽던 이등병이 어느새 병장이 되어 개폼 똥폼 잡고 댕길 때 쯤에는 '부자 아빠' 시리즈가 국방부 마크를 달고 보급이 되었더랬다. 연대 경리계원을 보던 회계학과 출신의 후임병 녀석이 제일 좋아했었다.

군대라고 해서 국방부 마크 찍힌 책들만 읽어야 하는 건 아니었다. 휴가나 외출 복귀 시, 부대 내로 책을 반입할 수 있었다. 물론 집에서 부대로 소포로 책을 붙일 수도 있었다. 어떤 변태 고참은 늘 '페이퍼'를 끼고 살았으며, 연대 경리계원이던 후임병 녀석은 재테크 관련 서적만 죽어라 붙들고 있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건빵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책갈피 문고본 시리즈가 훌륭했다.
중대 서고에는 장정일의 '햄버거를 위한 명상'이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장정일이 시인이었단 사실을 알았더랬다. 그리고 가끔은 '가시고기' 류의 소설도 읽었더랬다. 그런 류의 책들이 서고에 많았기 때문이었다. 대충 중대 서고를 다 훑었을 무렵부터 부모님께 보내는 편지에 책 목록이 쓰여지기 시작했다. 물론 계급장은 짝대기 세 개 이상이 되었으며 대충 내무실에서도 책을 읽을 짠밥이 되었던 시기였다.

군대 간 아들 책 좀 읽겠다는데, 가격은 묻지 않고 책 목록만 죽어라 적어댔다. 덕분에 지금도 내 책장에는 새책이나 다름 없는 '천개의 고원'이 꽂혀 있다. 아버지께 죄송할 따름이다. 불효자는 군대 가서도 불효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그 녀석이 책 한권을 추천했더랬다. 그리고 아버지께 책 주문을 했더랬다. 손석춘이 쓴 '아름다운 집'이었다. 역시 몇 주일이 지나지 않아 소포 수취하러 중대 행정반에 들르라는 고지를 받게 되었다. 그날 따라 중대장은 내가 받은 소포에 관심을 갖고는 '또 책이냐? 혼자만 읽지 말고 중대원들과 돌려 읽어라' 라며 훈수까지 두신다. 그러다 무슨 책이 왔냐며 한번 뜯어보라고 한다. 뭐 별 거 있겠냐며 중대장 앞에서 소포를 뜯다가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뜯은 소포 포장 사이로 '아름다운 집'의 책 뒷면에 쓰인 글귀가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니겠는가. 자세한 내용은 책을 찾아보기 바란다. 다만 책 뒷면에 쓰인 글귀들이 군대에서 읽기에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글귀들이라는 것만 밝힌다. 그래도 살아보겠노라고 소포 포장을 다 뜯어 중대장에게는 표지만 보여주었다.

결국 그 책은 탐독할 엄두가 나지 않아 곧바로 영내 구석 구덩이 속에 은폐엄폐를 시켜두었더랬다. 곧장 소각장으로 들고가지 않았던 건 책값이 아까웠기 때문이었다. 결국 말년휴가 때 그 책을 조심히 모시고 나와 집에다 꽂아두었다. 그 책을 추천했던 친구 녀석은 제대 후에도 술자리에서 죽도록 내 욕설을 들어야 했다.

군대는 그런 곳이였다. 입대 전 내게 권총을 날려주신 교수님의 책도 단지 제목에 '이념'이란 단어 때문에 의심을 받는 곳이 군대였다.

군인이었을 땐 군복만 벗으면 정말 열심히 책을 읽을 것 같더니, 막상 군복을 벗자 인터넷 세상에서 오락을 벗삼느라 책을 멀리하게 되었다. 물론 지금은 책보다는 논문 쪼가리 읽어 나가기도 벅찬 시기를 보내고 있다. 지난 시절은 늘 아름다움으로만 채워진다더니, 막상 군대에서 읽던 책 냄새가 그리워지기도 하는 시절을 맞이했다. 그러나 다시 군대로 돌아가라면 정중히 사양하겠다.

국방부의 불온서적 논란에 대해 해당 출판사들이 정식으로 문제 제기를 하겠다고 한다. 국방부 마크가 선명히 찍혀 보급되는 책들에 대해서도 함께 문제 제기를 좀 해줬으면 한다. 어떤 과정을 거쳐 책들이 선정되는 건지. 이것도 군납이기에 그 과정은 투명해야 한다.

이왕이면 세계 제일의 고등 군대를 자랑하는 대한민국 군대인 만큼 국방부 선정 도서가 출판계와 지식계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는 권위있는 목록을 제시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아름다울 것이다. 불온서적 목록을 작성하는 네거티브 전술이 아니라 포지티브한 방향으로의 선회. 21세기 대한민국 국방부에 바라는 소박한 소망이다. 아, 그럼 까치병장과 같은 명작 만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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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니 님의 '불온 서적과 불심 검문의 추억'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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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

개소리

똥침 : 2008. 6. 30. 19:56

이문열 "공영방송 인사에 지분 행사 당연" (연합뉴스, 20080630)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조리 없고 당치 않은 말을 비속하게 이르는 말을 '개소리'라고 한다. 개 짖는 소리를 빗대어 쓰는 표현이 개소리일텐데, 이문열씨가 자신의 이야기를 개소리에 비유했다.

이씨는 논란의 중심이 되는 것을 즐기는 게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고의적으로 사회적 파장 던지고 싶었으면 좀더 세련된 방법으로 준비를 해서 했을 것"이라며 "동네 길갓집 강아지가 많이 짖고 영악스러운 이유는 지나가는 사람이 자꾸 툭툭 건드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기사 내용 인용)

이문열씨가 자신을 동네 길갓집 강아지에 빗대어 표현했기에 촛불집회를 비하하고 공영방송의 공영을 국영으로 오해하고 있는 듯한 이문열씨의 발언 내용은 개소리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내용은 자신의 이야기가 개소리이니 그냥 무시해도 좋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기사가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이문열 자신의 고도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인지 기사문만으로는 당체 알 수가 없다.

개들이 짖는 건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중 대표적으로 침입자로부터 주인의 재산을 지킬 때와 배고플 때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문열은 무슨 연유로 개소리를 꺼내는 것일까?

끊임없는 의문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
인간들의 이야기가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 동네 강아지라 자칭하는 이한테 지면과 전파를 할애하는 건 공적 낭비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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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

촛불을 들고...

똥침 : 2008. 5. 28. 12:30

블로그 촛불 달기 사이트

본 블로그 주인장 사진에 담긴 왕따 인형에게 촛불을 쥐어주고 싶었다.

꼴같지 않은 인간이 선배랍시고 내 영혼을 운운한다. 울컥하는 마음에 책을 덮고 광화문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오랜만에 거리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러나 블로그에 작은 촛불 하나 밝힐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촛불배너를 달고 보니 왕따 인형의 엉덩이가 꽤나 뜨거워질 것 같다. 당분간은 그 뜨거움이 지속될텐데. 저 녀석 가출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광화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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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당국 "'촛불거리시위' 배후세력 끝까지 추적" (연합뉴스, 20080527)

촛불시위와 관련해 '공안'이란 단어가 언론을 통해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뜸한 단어였다고 기억한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공안'이란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뜻한단다. 검색 화면 한 켠에 '공안검사'란 단어가 보이길래 클릭해보았다.

공안이란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뜻하는 말로, 공안검사는 원래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할 목적으로 탄생하였다. 그러나 1948년 8월 검찰청법 제정에 따라 검찰청 안에 공안검사가 생긴 이래, 공안검사는 국가의 안위나 공공의 안녕보다는 정권 수호의 앞잡이 역할을 해 왔다는 비판을 끊임없이 받아 왔다.

1963년까지 공안 업무는 대검찰청 중앙수사국에서 담당하였다. 그러나 이후 대검찰청에 공안부가 생긴 뒤, 제5공화국 때인 1986년에는 대검찰청에 4개의 공안과가 생기고, 서울지방검찰청 공안부도 1·2부로 확대 개편되는 한편, 전국 검찰청에도 잇따라 공안부가 설치되는 등 많을 때는 전국 검사의 10% 이상을 공안검사가 차지한 경우도 있었다.

이들의 주요 업무는 정치·학원·노동·재야·선거·대공·외사 사건 등이며, 대검찰청 공안부가 지휘·총괄한다. 이에 따라 대검찰청 공안부는 전국 상황을 수시로 보고받고, 중요 사안인 경우에는 처리방침도 지시하는데, 각 과에서는 사안에 따라 업무를 분담해 처리한다. 그러나 이른바 공안검사는 1972년 제4공화국(유신체제) 이후 줄곧 학원·노동사건이 많은 지역에서 공안 경력을 쌓은 검사들이 주로 임명됨으로써 검찰에서 가장 각광받는 최고의 엘리트 보직으로 평가받았다.

대표적인 공안 조작사건으로는 1967년 7월 200여 명을 무더기로 검거해 6명에게 사형, 4명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가 모두 석방된 동베를린공작단사건, 1971년의 재일동포 모국 유학생 간첩단 사건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1993년 출범한 김영삼정부와 1998년 출범한 김대중정부 때는 인권을 중시하는 공안정책을 펴는 등 공안 기능을 축소하였으나, 실효는 거두지 못하였다. 따라서 2003년 2월 출범한 노무현정부에서는 1980년대 운동권 학생들 사이에서 공안검사로 이름을 떨치던 검사들을 보직 해임 또는 보직 변경하는 한편, 공안부의 기능을 축소하는 등 여러 개혁 정책을 펴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공안부 폐지론까지도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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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두산백과사전의 본 내용 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첨가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2008년 2월 출범한 이명박정부에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의 배후세력을 밝혀내기 위해 공안부를 적극 활용하여 공안부 폐지론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그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진정한 공공의 안녕과 질서가 누구로부터 나오겠는가. 그것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다. 촛불을 들고 거리에 서있는 사람들도 국민이요 정치적 구호를 선창한 사람도 국민이다. 그러한 국민의 밥상이 위험 앞에 놓여있는 상황에서 진정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위협하는 게 누구인지 공안대책협의회의 조속한 수사와 핵심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바이다. 부디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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