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침'에 해당되는 글 66건

  1. 2009.08.19 어른 없는 세상 by 망명객
  2. 2009.07.08 국립이란 이름 아래 지역성 버린 부산대 by 망명객
  3. 2009.06.19 1997-2009년을 관통하는 기억 : '盧 전 대통령 추모 콘서트' 장소 불허 통보에 대한 단상 6 by 망명객
  4. 2009.06.10 망명객의 시국선언 by 망명객
  5. 2009.04.17 당신은 얼마짜리 대학생입니까? 2 by 망명객
  6. 2009.04.08 문화부 조직 개편 기사에서 쏟아지는 생각... by 망명객
  7. 2009.03.26 감옥과 글 by 망명객
  8. 2009.03.25 신문과 사보 by 망명객
  9. 2009.02.09 CCTV에 맡겨진 치안 공권력 by 망명객
  10. 2009.02.06 대학 졸업 = 백수 취임(?) 1 by 망명객

어른 없는 세상

똥침 : 2009. 8. 19. 12:50
조갑제, 홈피에 故김대중 전대통령 비난 글 올려 (경향닷컴, 20090818)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많은 이들이 애도를 표하는 가운데 조갑제 선생께선 고인을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 역시 대기자는 다르다. 팩트에 대한 그의 열정도 이해하고 그의 반골에 가까운 비판의식도 높이 사지만, 결국 인간으로서 한 인간의 죽음 앞에서까지 냉정한 그의 글은 그리 옳지 못하다. 모두가 "예"를 외칠 때 홀로 "아니오"라 소리치는 건 젊음의 패기라고 할 수 도 있다. 하지만 대기자 출신의 어르신께서 그리 외치기엔 너무 옹졸해 보일 뿐이다. 본인께선 그게 저널리즘이요 기자정신이라 할 수도 있다.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삶을 살아온 전직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 예의. 그게 노기자가 기자이기 이전에 갖춰야 할 인간으로서의 덕목이다.

존경할 만한 어른의 부재. 그게 오늘날 대한민국의 슬픔이다.


뱀발.
글을 쓰고 보니 혹이 조 선생께서 허본좌를 의식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ㅋ
어른이 없다는 건, 무너진 부성에 대한 희구가 아니라 무너진 부성이 희화화 되는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갑갑증에 꺼내보는 소리다.

Posted by 망명객

<속보> 부산대, 정문에 차벽 쌓고 노무현 추모콘서트 막아 

<속보 2신> 부산대 앞 상황을 보여주는 현장사진입니다



부산대 앞 현장 사진 (출처: 독설닷컴)



지역 국립대의 존재 기반은 지역성이다.
교육부의 선별적 정책 사업 앞에서 지역 국립대는 지역성을 무기로 내세운다.

청소년 노무현을 길러내고 변호사 노무현이 사무실을 열었던 곳이 부산이다.
인간 노무현은 봉하마을에서 태어났지만 정치인 노무현은 부산에서 태어났다.




노무현 추모콘서트를 막는 건 부산 대표 정치인을 인정하지 않는 행위다.
지역성을 무기로 삼는 명문 국립대로서 부산대의 결정은 결코 지역성에 도움이 안 된다.
이는 국립이란 명분 아래 지역민을 무시하는 처사다.

아울러 이는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불허 사유>

-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계절학기 수업에 방해가 되는 등 교육환경 훼손
: 밤에 진행하는 행사 아닌가? 부산대는 계절학기를 밤 중에 진행하나? 아울러 이 부분은 충분히 대화로서 서로 양애를 구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대학이 지상 최고의 교육기관이라면, 더욱이 명문 부산대라면 그래야 한다.

- 많은 외부인 출입으로 행사 이후 청소인력 및 비용부담의 과다
: 그 외부인이란 게 부산 지역민이 대다수일 게다. 부산대는 부산에 위치한다. 부산시민이 외부인인가? 지역 형평성을 주장하는 건 부산시민을 볼모로 부산대에 유리한 부분만 취하려는 건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

- 정치적으로 민감한 행사이므로 국립대학으로서의 중립을 지켜야 할 의무
: 추모콘서트에 정치적 색안경을 끼고 쳐다보는 건 아닌가? 죽은 사람을 추모하겠다는 거다. 과거 학생운동처럼 모여서 데모하자는 행사가 아니란 말이다.


진정 지역에 봉사하는 대학인지, 아니면 지역을 볼모로 이득만 취하려 하는 대학인지 똑똑히 지켜볼 일이다.





Posted by 망명객

연세대, '盧 전 대통령 추모 콘서트' 장소 불허 통보 (프레시안, 20090619)



1997년.

한보청문회 증인 김현철 (출처 : 한겨레21)

참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90년대의 시작을 알렸던 문민정부가 저물어 가던 해. 연초에 터진 한보 사태는 문민정부의 무능함과 도덕적 불감증을 낯낯이 까발리는 계기였다. 민주주의와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이 공사로 끊긴 당산철교처럼 정권으로부터 급격히 이반하던 해였다. 급기야 연말엔 국가부도 사태가 터진다.

북한 주체사상의 대부라는 황장엽 씨가 남으로 넘어왔다. 중국에선 등소평이 운명을 달리했으며, 한총련 한양대 사태는 학생운동이 재기불능의 나락으로 추락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다. 그 와중에 문민정부의 출범과 함께 은퇴를 선언했던, 누군가에겐 선생님이었던 그 분이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강준만 교수가 '인물과 사상'을 펴냈고, 출판가에선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이 승승장구했다. 영국에선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가 수상 자리에 오른다. 영국이 중국에게 홍콩을 반환하던 해였다. 어린이들은 '포켓몬스터'에 열광했다. 부천판타스틱 영화제가 시작됐고, 스타크래프트가 출시되면서 대학가엔 하나둘 피시방이란 게 생겨났다.

대학생들에겐 씨네21이 인기 있는 잡지였으며, 왕가위의 '해피투게더'는 상영불가 판정에도 불구하고 대학가 영화동아리들의 상영회 단골 메뉴로 자리 잡는다. 울산시가 울산광역시로 승격했고, 아... X-JAPAN이 해체를 선언했다. 영화 '접속'이 인기를 얻으며 전도연이란 배우가 급부상했다. 이창동이 '초록물고기'로 데뷔한 해이며, 일본에선 '에반게리온' 극장판과 '원령공주'가 극장에 걸렸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그 해 11월 21일, 한양대 노천극장에선 '박노해 문화제'가 열렸다. 며칠 전 한양대병원노조의 농성장에 경찰이 난입했던 터

노동자 시인 박노해 (출처 : 한겨레21)

라 학교는 온통 집회판이었다. 올림픽체육관에서 열기로 했던 문화제는 학교 측의 장소 불허로 노천극장으로 옮겨 진행했다. 물론 학교측이 노천극장 사용을 허용한 건 아니었다. 겨울로 다가서던 11월의 노천극장. 그 스산한 계절에 하늘에선 비까지 뿌려주고 있었다. 당연히 경찰은 원천봉쇄로 응수했다. 그래도 개구멍은 있는 법.

안치환과 윤도현의 공연이 끝난 무대 위에 가수 리아가 올랐다. 비 내리는 노천극장에 관중들이 함성이 메아리쳤다. 밴드를 학교 밖에 두고 홀로 담을 넘어 들어왔다는 그녀. 그녀는 '유토피아'를 불렀고 '고정관념'으로 노천극장에 모인 인파들을 달뜨게 만들었다.

더이상 꿈을 가질 수 없는 틀에서 이제 나는 벗어나려 해
굳어진 당신들의 생각이 더는 나를 길들이게 할 순 없기에
늘 하던 대로만 하루를 보내고 예~ 다리를 뻗고 안심을 하지
갇혀진 새장에 너무나 길들여져 무더진줄 모르고 또 따라가겠지                                       (리아 2집 중 '고정관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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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스타워즈Ⅴ

참, 2009년은 딱 '제국의 역습'이란 제목의 영화를 떠올리게 만드는 해다. 촛불이 거리를 뒤덮던 2008년의 '새로운 희망'을 뒤로 하고, 국민들은 전직 대통령을 잃었다. 소녀시대가 내 마음을 설레게 하고 내 귀엔 타바코쥬스의 노래가 늘 걸려있지만,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2009년을 떠올릴 최우선의 기억으로 자리할 것이다.

연세대가 노 전 대통령 추모 콘서트 장소 불허 방침을 내렸단다. 12년 전 한양대는 어느 노동자 시인의 석방을 위한 문화제 장소를 불허했지만, 2009년의 연세대는 전직 대통령 추모 문화제를 불허한다. 1997년과 2009년의 기억 사이에는 김영삼과 이명박 만큼의 거리가 있다. 재밌는 건 97년의 한승수는 부총리였지만 2009년의 그는 총리라는 사실이다. 현재 살아있는 노동자 시인과 망자가 된 전직 대통령의 무게감 비교는 감히 내가 넘볼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다.

연세대 본부 측과 총학 간 공방에서 난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다만 2차 사법시험 때문에 학내 행사를 불허한다는 대학본부 측 답변은 조금 옹색해보인다. 행사 불허와 추진 사이에 적절한 타협점을 찾기란 어려울 듯하다.

최악의 상황엔, 12년 전의 한양대처럼 전투경찰들이 연세대를 봉쇄할지도 모른다. 학교의 '시설물 보호' 요청이란 간단한 명목이면 경찰들은 시청광장을 막듯 연대를 막을 것이다. 전직 대통령이었던, 2009년의 아이콘이 돼버린 망자를 기리는 문화제에서 제국 병사들과 같은 전경들의 출현은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다.

문민정부와 이명박정부의 거리, 그 사이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한 마디 건낼 듯하다.

"I'm your father"

너무나 슬픈 건 이명박 대통령은 제다이가 아니란 사실. 스타워즈 시리즈의 예언처럼 다음 차례는 '제다이의 귀환'이다. 짧게는 내년 선거, 길게는 차차기 대선 정도에는 제다이의 귀환이 이뤄지지 않을까. 이 시대의 요다 선생은 지금쯤 세상을 구할 제다이를 훈련시키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자. '미륵불'의 환생을 믿기엔 우리 삶이 너무 짧기에...




Posted by 망명객

망명객의 시국선언

똥침 : 2009. 6. 10. 19:32
남녘 끝 제주대 교수도 "더 이상은 안된다" 시국선언 동참 (제주의소리, 20090609)


서울대부터 제주대까지 전국 대학가에서 시국선언이 쏟아져 나왔다. 서울대 총장은  동료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전체 서울대의 뜻이 아니라고 밝혔으며, 모 인사(아~ 이분의 이름을 잊어버렸기에 그냥 모 인사로 표한다)께선 선언문 내용이 특정 이념에 경도됐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가하기도 했다. 그분들은 국민들이 오해할 여지가 있다며 서설을 늘어놓았다.

오해? 매체 주체에 따라선 소수의 뜻이 다수의 의견처럼 포장될 수도 있다. 그 반대로 다수의 의견이 묵살될 수도 있다. 정보화 시대, 국민들이 거대 매체에 의존하던 시대가 끝나간다. 각 대학 교수들이 발표한 시국선언문 전문이 인터넷을 타고 전국으로 퍼진다. 몇 명의 교수가 시국선언에 동참했는지, 또 누가 선언문에 이름을 남겼는지, 우리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 몇 번 두드리는 것으로 그 모든 걸 알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제주대에선 87년 6월 항쟁 이후 처음으로 발표된 시국선언문이란다. 87년 이후 대학가에서 몇 건의 시국선언문이 발표됐는지 난 잘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 연이어진 대학가의 시국선언문 발표 뒤, 뿔난 국민들이 있다는 걸 난 잘 알고 있다. 망자의 넋을 추모하는 자리도 불허하고, 집회결사의 자유도 보장하지 않는 정부. 항의의 말문을 닫아놓으려는 정부. 통합은 커녕 민주주의의 기본도 모르는 정부. 난 이런 정부를 우리나라의 정부라고 인정할 수 없다.

"더 이상은 안된다"

참말이다. 째째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도 다양한 의견들을 조율하기 힘든 판국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 자체를 막아놓다니... 그게 우리나라의 정부다. 그게 이 나라의 대통령이다. 어짜피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니 두고보자는 말은 말자.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은 행사하기 편한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 국민의 권력이다.

자유는 권력에 대한 제한이다. 난 그렇게 알고 있다. 현 정부는 개인의 정치적 자유와 사상적 자유란 불가침 영역을 침범하려 한다. 이런 상황에선 피지배자의 저항이나 반란은 정당하다.

날 반란자로 몰지 말라!


2009년 6월 10일
시청광장으로 향하며
망명객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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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어둡나?
우짰든, 시청에서 봅시다.





Posted by 망명객
90년대 후반에 읽은, '싯가 1억원짜리 법대생의 하루'란 글이 불현듯 떠오르더군요.
인터넷 시대, 검색을 통해 이 글을 다시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싯가 1억원짜리 법대생의 하루

                                                         - 고대문학회의 글.

 


학벌 K대 법대  키 180Cm 상속가능재산 2억원으로서

국가 공인 감정사 마담뚜로부터 싯가 1억원짜리 인물로 인정받고 있는 그가

오늘 아침에도 400원짜리 지하철과

430원짜리 버스를 타고 도서관 칸막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서둘렀다.



5000원짜리 교양강좌와 10000원짜리 전공강좌를 들은 그는

3000원짜리 점심을 먹고

500원정도의 가치가 있는 오후 1시간을

싯가 9500만원의 윤모군과

150원 정도의 가치가 있는 잡담을 나누었다



스스로 상품의 가치가 약 2만원정도 올라간 것을 느꼈다.

한껏 고무된 얼굴로 그는 며칠전부터 기다려온 소개팅을 위해

대학로 근방 레스토랑에 갔다



그녀의 학벌은 모여대 전산학과 얼굴은 영화배우 심모양 정도 키 160Cm

그는 그녀의 싯가를 1억원쯤이라고 추정했다

아버지의 직업을 묻는 그의 말에

그녀는 변호사라고 짤막히 대답했다

순간 그녀의 가치는 2억원으로 뛰어 올랐다

얘기를 들어보니 국제화 시대에 걸맞게 영어도 아주 잘한다고 했다

이럴수가! 그는 그녀의 가치가 싯가 2억5천만원임을 깨달았다.



싯가 1억원짜리인 그의 에프터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는 식사값과 커피값으로 2만 5천원을 소비했다

허지만 그는 2만 5천원어치의 경험을 쌓았으므로 별반 큰 손해는

보지 않았다고 자위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축축한 도시의 400원짜리 지하철 전등에선

연거푸 물방울이 떨어졌고

싯가 1억원짜리 그의 옆에 앉은 싯가 천만원 혹은 백만원짜리 인간들은

스포츠신문을 보며 키들대고 있었다

그의 눈엔 그들이 매우 유치하고 한심해 보였다

그들을 보며 그는 빨리 사법고시에 합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들이 비오는 날 바지를 적시는 물방울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그 물방울들이 모이면 얼마나 큰힘이 되는지를

미처 깨닫지 못했다.


400원짜리 지하철, 430원짜리 버스, 5000원짜리 교양강좌, 10000원짜리 전공강좌.
행간에 밝혀둔 물가를 통해 이 글이 쓰여진 시대를 엿볼 수 있습니다.
80년대 말, 90년대 초쯤 될까요?

400원짜리 지하철이 900원짜리가 됐습니다. 환승 시스템도 도입됐고요.
글쎄요, 3000원짜리 점심식사는 대충 현 시점과도 비슷해 보입니다.
그럼 교양강좌와 전공강좌의 가격은?
법대생의 하루가 현대 버전으론 법학전문대학원생의 하루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싯가 10억원짤 법학전문대학원생의 하루'는 어떨까요?

치솟는 등록금에 대해 한 친구가 따끔히 평하더군요.
"등록금이 오르면서 학교에는 대리석만 늘어났다."




Posted by 망명객

문화부, 10개 과·팀 축소 조직개편 (전자신문)

문화부가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국정홍보처 업무와 정보통신부의 일부 업무를 흡수한 거대 부처 문화부. 업무의 효율을 위해서라도 조직 개편은 불가피했을 것이다.


문화부 조직 개편을 알리는 기사의 행간 속에는 정치적 냄새가 짙게 배어 있다. 1차관에서 2차관 소속으로 옮겨진 미디어 정책 업무. 앞으로 신재민 차관의 입에서 어떤 이야기가 쏟아질지 궁금해진다. 녹색관광과 신설 소식에선 4대강 개발 사업을 녹색으로 덧칠하고 성장 논리로 밀어붙이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전 정권의 잔재인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은 축소되고 '국립대한민국관' 건립추진단이 새로 신설된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시점이라 그런지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 축소 소식에서도 음모의 냄새가 짙다. 어쨌든 아시아문화중심도시는 난항을 겪게 됐고, 국립대한민국관이 들어선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를 바라보는 지역 시선은 엇갈리고 있으나, 국립대한민국관 건립이야 건설과 토목의 일인자를 대통령으로 모신 정권이니 3년만에 뚝딱 짓고도 남을 것이다. 아시아를 표방하지도 않았고 도시를 짓는 것도 아니다. 단지 건물 하나 뚝딱 지으면 그만이지 않겠는가. 건물 하나 짓는데 추진단씩이나 필요한 일일까.

일개 단신 기사의 행간에서 출발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의문에 의문이 더해지고, 궁금증이 꽃망울처럼 만개한다. 끝내 생활이란 바람에 흔적없이 사그라질 그런 꽃망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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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

감옥과 글

똥침 : 2009. 3. 26. 20:58
흔히들 펜이 칼보다 강하다고 이야기한다. 시간은 흘러 '칼'의 자리를 '돈'이, '강하다'란 서술어는 '무기력하다'가 대체한 듯하다. 신체자유란 기본권을 빼앗긴 상태에서 온전히 자기 의지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은 정신세계뿐이다. 개화기 매일신문의 주필 이승만이 그랬고 이탈리아 공산당의 거두 그람시가 그랬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스테디셀러의 반열에 올랐고, 사회주의권 몰락을 감옥에서 목격한 이진경은 근대의 경계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모두 열거하진 않았지만, 감옥은 수많은 문인과 사상가를 길러낸 장소다. 강제된 격리 상황이 정신적 작업을 더욱 정교히 가다듬게 되는 계기였으리라. 감옥이란 공간적 아우라가 덧칠된 글은 그만큼 치열한 전투성을 품고 있다.  글의 형식이 개인적 성찰의 형태를 띄더라도, 그 내용은 불순함은 불온함을, 점진적 개혁은 급진적 혁명으로 치닫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금서'의 딱지가 8,90년대 사회과학 츌판물의 활황과 변혁운동의 정점을 이끌어냈듯, 억압은 또다른 저항을 불러일으킨다. 인신에 대한 구속은 정신적 저항으로 폭발한다.

현 정권이 과거 권위주의 정권과 다른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저항의 댓가가 감옥밖에 없다면 현 정권은 과거의 권위주의 정부와 다를 바 없다.

저항에 대한 최고의 대응은 무대응이다. 위협에 소구하는 대응은 한계가 명확하다. 진정 이 정부는 혁명을 원하는 것인가?


- YTN 노종면 노조위원장 구속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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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

신문과 사보

똥침 : 2009. 3. 25. 04:12
월요일 아침, 이른 시간에 출근했다. 아침이 여유로우면 하루가 여유롭다. 조간신문 1면은 태평양 너머 미국에 가 있었다. WBC. 그 구석에서 작은 단신기사가 YTN노조원 구속 소식을 전했다.

간만의 이른 출근을 자랑하러 들른 교내 연구소. 빈 책상 위엔 주인 찾는 우편물만 가득하다. 대부분이 주인 잃은 정기간행물들이다. 그 사이에서 내 이름 앞으로 온, 보험회사 직인이 뚜렷한 봉투 하나를 발견했다.

주인 잃은 정기간행물들 중 YTN사보(링크)에 눈길이 꽂힌다. 며칠 전 발행된 사보다. 우편포장지를 뜯다가 종이봉투에 중지를 베였다. 사보 1면은 "YTN 재승인, 우리 모두의 승리!"란 헤드라인을 걸치고 있었다. 2월에  결정된, 방통위의 YTN 재승인 관련 소식이었다.

조간신문에서 읽은 구속 노조원들의 소식은 사보 그 어느 면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노조원 구속일로부터 사보 발행일까지는 며칠이란 시간이 거꾸로 존재한다. 구속 사유와 관련된 그 어떤 편린조차 사보에선 찾을 수 없었다. 발행인이 사장이고 홍보팀이 편집을 하는 사보이니 너무 당연한 결과일 터.

YTN사보가 '우리 모두의 승리'라 밝힌 대목은 YTN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동감하는 내용일 것이다. 노사 양측 입장이 엇갈릴 순 있지만, 자신의 회사가 계속 유지된다는 사실은 기쁜 일이다. 구속 노조원들도 기쁨의 대열에선 예외가 아니리라.


Posted by 망명객
한겨레21 박용현 편집장은 '두 가지 죽음'이란 칼럼에서 용산참사와 강호순 사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는 무고한 죽음이란 결과를 이 두 사건의 공통점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권력의 사각지대에서 벌어진 죽음과 그 치안 공권력의 능동적 작전과정 중 발생한 죽음이란 점을 차이점으로 꼽고 있죠.

이 두 가지 죽음을 다루는 언론의 시선도 크게 다르더군요. 아무래도 강호순 사건에 비해 용산참사가 가해 책임을 두고 더욱 복잡한 양상을 보이는 게 당연하겠죠. 아울러 공권력에 대한 보도 태도도 극명히 대비됩니다. 용산참사가 김석기 경찰창장 내정자의 책임 소재 문제에 집중된 반면 강호순 사건과 관련해선 담당 관할서 형사들의 끈질긴 추적과 프로파일러에 관한 내용이 집중 부각되고 있습니다.

아울러 우린 이 두 죽음에서 뉴스 보도가 갖고 있는 한계점들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우선 MBC PD수첩을 통해서야 비로소 부각된 용역직원의 작전 투입 논란이 그렇습니다(관련 포스팅). 모든 방송국이 용산사태 관련 동영상을 갖고 있었지만, 그 안에서 용역직원들이 직접적으로 작전에 투입된 사실을 꼬집은 건 PD저널리즘이었습니다.

  Warning Over UKs Use Of Surveillance Technology

다른 하나는 CCTV를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강호순을 붙잡을 수 있었던 건 CCTV의 도움이었습니다. 이미 몇 차례에 걸쳐 살인사건이 벌어졌지만 치안 공권력의 사각은 그만큼 넓었습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CCTV 및 보안 관련 종목을 주목하라는 증권가의 이야기가 보도되고 있습니다. 치안 공권력의 사각 지대가 사기업의 성장을 돕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더군요. 아울러 CCTV 수를 늘리겠다는 경찰청의 발표도 이어집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문제 제기성 보도는 눈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더군요.

이미 CCTV 설치를 두고 행정편의와 주민감시란 논란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끔찍한 사건 앞에선 감히 CCTV 설치 확대안에 대해 반대 의견을 펼칠 용기가 나지 않더군요. 저널리즘 학자들이 이야기한 '침묵의 나선' 이론은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 겁니다.

글쎄요, CCTV가 용산의 망루 안에도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이 또한 용산참사의 결정적 단서가 됐을 겁니다.  이제 치안 공권력이 우리 모두를 지켜줄 수 없다는 건 확실합니다. 더 많은 희생자가 나기 전에 강호순을 붙잡을 수 있었던 건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이 무고히 죽기 전에 그를 붙잡지 못한 건 단순히 그가 지능적인 사이코패스였기 때문일까요.

이제 우리는 범죄의 유령에 맞서 CCTV를 설치하고 호신용 무기를 소지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부담해야 합니다. 국가의 무능은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죠. 호신용 무기요? 어쩌면 호신용 무기로 화염병을 파는 국가가 될지도 모르겠군요. 아울러 사설 방범업체와 함께 용역직원이 늘어나는 것도 일자리 창출이라 우기는 국가가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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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
아직도 대학가에 있다 보니, 대학 4학년 학생들의 한숨소리를  쉬이 듣곤 합니다. 지난 연말, 마지막 기말고사 시험을 치르던 제 후배가 답안지를 제출하며 "이제 대한민국 청년실업자에 제 머릿수를 더하세요"라고 말하더군요. 썩쏘를 날리며 시험장을 나서던 후배의 축 처진 뒷모습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오늘 후배들 동아리방에 들렀더니 졸업식과 함께 백수 취임식이 열린다는 공지가 화이트보드에 적혀 있더군요.


이제 곧 졸업식 시즌입니다. 올해에도 학교 정문에선 꽃다발 판매상들이 진을 치고 있겠죠. 아울러 축하의 자리에 함께할 가족들의 행렬도 여전할 겁니다. 그러나 정작 졸업식의 주인공이어야 할 졸업생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특히 올해에는 같은 졸업생이더라도 취업에 성공한 자와 그러지 못한 자 사이에 극명한 흑백 대비가 예상됩니다. 물론 이를 바라보는 가족들에게도 명암이 드리우겠죠..

갑자기 제 고등학교 졸업식이 떠오릅니다. 절친힌 친구 녀석이 대학 진학에 실패했다는 이유만으로 졸업식에 나타나지 않더군요. 긱스의 "그땐 그랬지"의 노래 가사처럼, 대학만 들어가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 생각했던 당시가 아직도 아련합니다. 아마 이번에 대학을 졸업하는 제 후배들도 비슷한 기억을 갖고 있겠죠.

요즘 대학가에선 9학기가 대세입니다. 물론 예전에는 저처럼 공부를 못한 애들의 전유물이던 9학기가 지금은 취업을 위한 필수 코스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부러 교수에게 A학점을 F로 처리해 달라 부탁하는 예비 졸업생들도 부지기수랍니다. 이미 지난 학기에 올 2월 졸업을 공표하던 한 후배도 결국 한 학기를 더 결심하더군요. 그 친구는 지난 설날에 집에서 무슨 이야길 꺼냈고 어떤 이야길 들었을까요.


후배들 동아리방 한 켠에 게바라의 포스터와 학교 근처 식당 전단이 나란히 걸려 있습니다. 결국은 먹자고 공부했고 살자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먹고사는 그 길이 너무 험한 길이라 느끼고 있는 게 이 땅의 예비 대학 졸업자들의 심정일 겁니다. 아마 게바라 선생도 다 같이 먹고살고자 혁명을 했겠죠.

학교로 출강 나온 한 386 연배의 선배는 제 앞에서 그런 이야길 꺼내더군요.

"난 수업 들어가면 애들 욕부터 해. 현 세상에서 가장 취약한 바보들이 바로 대학생이야. 얘네들이 데모를 해, 그렇다고 연대를 해. 그저 지들 잘난 맛에 살다가 그렇게 당하는 거야."

글쎄요. 교단 위에서 조용히 앉아 있는 학생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답답하겠죠. 하지만 더욱 답답한 건 바로 묵묵히 강의를 듣고 있는 학생들이 아닐까요. 물론 선배의 이야기 중 일부는 수긍이 가기도 합니다. 학점, 토익, 연수, 인턴, 봉사활동 등 수많은 활동으로 직장인보다 바쁘게 뛰어다는 게 요즘 대학생입니다. 어느 하나 모자람 없이 완벽한 인간형을 구현하려니 포장은 그럴싸 하지만 그 속 알맹이는 허당인 경우가 많다는 거죠.

물론 모든 대학생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좋은 일자리는 줄어들었고 구직자는 넘쳐납니다. 좋은 인재를 뽑고자 하는 게 기업의 욕심인데, 기업의 눈 높이에 맞추려니 대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다양한 활동들로 자신의 이력서를 꾸며갑니다.

졸업을 미룬 후배들이나 이번에 졸업하는 후배들이나, 모두의 앞날에 축복만이 가득하길 빌어주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겠죠.

이렇게 남 이야기처럼 글을 쓰고 있지만, 정작 제 앞가림도 걱정입니다.


Posted by 망명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