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보도 전문채널과 국회방송을 통해 정운찬 총리지명자 인사청문회가 실시간으로 방송됐다. '고위공직자가 되기 위한 필수 덕목이 위장전입이다'란 세간의 우스갯소리, 인정욕구란 얼마나 강력한 인간의 습성인가. 인사청문회장에선 대한민국 최고의 국립대 총장까지 지낸 양반이 '빤스' 속까지 발가벗겨졌다. 차마 그럴 일도 없겠지만, 만약 내가 정운찬 씨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면 인간적인 모멸감과 자괴감을 느꼈으리라.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위장전입, 병역 문제, 세금 탈루, 논문 중복 게재, 무수한 반칙들이 잘 살기 위해 행해졌다는 점을. 근대화의 과정 속에서 생존의 조건이 곧 반칙이었다는 점을.

앞선 정보력과 물질적 토대는 반칙의 조건이자 그 결과였다. 결국 반칙이란 생존의 조건이자 개인의 능력치를 보여주는 지표였던 셈이다. 혹자는 '타협'이라 표현하기도 하는 반칙, 그 결과가 결국 인사청문회장으로 가는 조건이 됐다. 인사청문회장은 애초 취지 대로 능력 검증대였단 소리다.

"국민에게 사과한다"는 짧은 반성을 후보자들은 반영구적인 영화의 시작점으로 인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 나라의 총리와 장관이란 자리는 가문의 영광일 터. 단, 이 시대를 차후의 역사가들이 어떻게 평가할까? 인터넷에 떠다니는 현시대의 언론 기록물을 후보자 일족과 그 후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김삿갓이 21세기에 재현할지도 모를 일이다.

"네 할아버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군대 대신 공부를 하셨으며 위장전입과 세금 탈루로 집안을 일으키셨으니, 우린 삿갓을 써야 한다." (킁~)

이번 인사청문회가 남긴 가장 중요한 덕목은 바로 '뻔뻔함'이다. '뻔뻔함'이 MB정부가 표방하는 '중도실용'의 정체라는 점. 인사청문회가 우리에게 알려준 건 바로 뻔뻔함으로 무장한 '중도실용'의 정체다. 총리와 장관이 가져야 할 첫 번째 덕목으로 '뻔뻔함'이 선택되었다는 건 향후 암울한 국정 운영을 예고하고 있다.

"청문회가 아니라 후보자의 운을 시험하는 시험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장상 민주당 최고위원이 지난 18일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이야기는 억울함의 호소 그 뿐이었다. 미안하지만 운도 실력이다. "잘못된 처신이었다"며 국민의 선처를 바란다는 고위공직자 후보들의 운은 결국 국민이 만들어준 것이다. 장상 위원이 처한 정치적 상황이나 정운찬 씨가 처한 정치적 상황은 결국 국민의 손으로부터 나왔다. 후보자들을 최종 낙점하는 건 청와대의 의지이니, 장상 위원은 너무 억울해 하지 말라. 당신이 낙마한 시절을 국민들은 '아름다운 시절'로 회상할 테니.

반칙 없이는 후보자 성립 자체가 불가능한 세상이다. '그 나물에 그 밥'이란 소리가 절로 나올 수 밖에 없다. 과거에는 운동권 유입이란 카드로 인적 쇄신이라도 꾀하려 했건만, 지금은 정치권의 인적 쇄신 자체가 불가능한 시대가 되어버린 듯하다. 그래서 그들만의 리그라 쉽게 치부해버리곤 하지만, 그들만의 리그가 피곤한 내 삶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슬픈 현실이지.

지역에서 농사 짓고 계신 부모님을 원망할 수도 없고, 군역 기록을 지울 수도 없는 나는 오늘도 월세 방값을 위해 날밤을 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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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도 청문회 국면.
풍월주 후보자 유신공은 설원공이 제기한 가야 유민 운동 배후설 의혹을 어찌 돌파할 것인가.
역사는 김유신이 풍월주가 되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시청자는 그 과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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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