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원적 디스플레이 기술을 처음 접하게 된 건 영화 스타워즈 덕분이다. 어린시절 이불 뒤집어 쓰고 본 토요명화 '스타워즈 제국의 역습'에서 깡통 로봇 알투디투가 루크 스카이워크에게 보여준 레이아 공주의 구조요청 메시지가 3차원 디스플레이 메시지였다.
영화 속에서 재현하던 3차원 디스플레이 기술은 영화가 제작되던 시대적 한계 탓인지 컬러보다는 모노 톤에 가깝다. 아직 하늘을 나는 자동차도 없고 멀리 인간이 이주할 행성이 발견된 건 아니다. 하지만 거의 모든 국민들이 휴대전화기를 들고 다니는 시대는 맞이했다. 어릴적 꿈꾸던 미래사회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술의 진보조차 따라가기 벅찬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기 때문이다.
실재보다 더 실재같은 이미지는 역사 과정에서 인간이 꾸준히 추구해온 대상이다. 예술 장르의 확장과 발전이 과학적 기술의 진보와 그 맥을 같이 해왔듯, 그 과정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일반적으로 영상 콘텐츠의 질은 제작비에 비례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큰 돈 들인 영화가 모두 흥행에 성공하는 건 아니다. 문화상품의 속성 상 영상 콘텐츠는 성공의 향배를 알 수 없는 제품이다. 아바타의 제작비는 거의 5억 달러에 가깝다고 한다. 지구상에서 제작한 영화 중 가장 고가의 제작비가 투입됐다는 이야기다. 뻔한 스토리 전개는 바로 투자액에 대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장치다. 미국 내 흥행에 더해 전세계적 흥행돌풍을 일으키겠다는 의도다. 그 과정에서 그 어떤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회에서도 이 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드는 내러티브는 필수 요소다. '아메리칸 뷰티'처럼 미국의 사회문화적 맥락이 강한 영화는 절대로 대규모 제작비를 투여할 수 없다.
2D로 관람한 관객이 다시 한 번 3D로 아바타를 관람하자 하는 건 풍부한 시각적 자극에 대한 체험 욕망이다. 93년 대전에서 열린 엑스포 현장에서 가장 긴 대기열을 자랑했던 곳은 바로 입체영화관이었다. 현재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면, 대전 엑스포의 입체영화관은 CGV의 4D 상영관에 아이맥스 3D 상영관이 겹쳐진 곳이었다. 3D 영상과 움직이는 좌석의 조합은 단순한 놀람을 넘어 경악이었다.
자극을 추구하는 건 인간의 본성이다. 최종적으로 인간이 추구하는 자극은 공감각적 자극이다. 문자를 통한 간접 체험이 영상 매체로 옮겨가고 이는 다시 공감각적 체험으로 옮겨간다. 디스플레이 기술은 인간의 뇌 에 명징한 이미지를 남기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2D에서 3D로, 기술은 끊임 없이 발전하고 진화한다.
기술의 진화에 걸맞게 인간의 몸도 변화한다. 인간 감각 기관 기능의 퇴화는 기술적 진보의 속도와 보조를 맞추는 추세다. 다양한 시각적 자극들이 개발됐고 인간의 시력은 퇴화한다. 개인화의 첨병이었던 워크맨과 이어폰의 보급은 인간에게 청력 약화를 가져왔다. 더욱 강한 자극을 추구하는 인간의 몸은 기술에 적응한 세대와 그렇지 못한 세대를 가르는 기준이 됐다. 물론 그만큼 안경과 콘텍트렌즈, 시력 보정 수술 시장이 커졌고 보청기 시장도 커졌으리라.
새로운 자극에 대한 열망은 그 자체가 수요의 창출이다. 가전업체의 3D 텔레비전 개발과 판촉, 지상파 방송계의 3D 방송 추진, 문화관광체육부의 3D 관련 CG산업 진흥책 발표까지 일련의 과정들이 기술 상용화에 따른 신규 수요를 노리고 있다. '세계 최초'라는 애국적 수사가 거슬리긴 하지만, 산업적 차원에서 이는 당연한 결과일 뿐이다. 문제는 해당 주체들이 갖고 있는 정치적 음험함이 수면 아래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생존과 관련된 조급함이 엿보이기도 한다. 3D 텔레비전의 안정적인 내수 시장 확보와 3D 방송설비를 비롯한 기술 투자 빌미의 수신료 인상, 관련 기술인력의 안정적인 공급 문제가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 요즘 국내 정세다. 기술의 정치적 중립성을 믿는 건 역시 순진한 발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시국이다.
3D 텔레비전 이후의 텔레비전 시장은 디스플레이 장치와 움직이는 의자 세트가 결합된 상품이리라. 결국 이는 구매력을 높이라는 시대적 압박이기도 하다. '부자 아빠'는 외친다. 벌어서 사거라. 3D 텔레비전이든 공감각적 체험이든, 그 모든 건 결국 돈의 문제 아니겠는가.
소싯적 이야기로 시작한 이야기는 결국 '돈'이란 삼천포로 빠지게 됐다. 슬슬 돈벌이를 해야 한다는 개인적 소망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