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9.06.10 아직 마감 중~! by 망명객
  2. 2008.05.27 언론산업에 종사한다는 건 by 망명객
  3. 2007.02.10 편집권과 노동 by 망명객
  4. 2005.02.06 쓸데없는 분노 by 망명객

아직 마감 중~!

이미지 잡담 : 2009. 6. 10. 02:17

커버 기사는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하나?
의욕이 취재력을 앞지른 기자와 좌충우돌 편집장이 빚어낸 한 편의 촌극 같은 새벽 작업.

늘 디자이너들에게 미안한 마음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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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내 발등을 내가 찍은 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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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
조중동 기자들은 촛불집회 현장에 나와라 (미디어스, 080527)

언론산업에 종사한다는 건 늘상 사회적 감수성을 민감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언론계는 수습기간을 두어 신입사원에 대한 강도 높은 훈련을 진행한다. 마감이란 시간과의 싸움보다 낙종의 두려움이 더 큰 세상. 그런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게 기자의 삶이다.

그러나 기자의 삶에도 계층이 존재한다. 흔히 메이저급 언론사와 마이너급 언론사를 나누고, 그 밑에 지방 언론사를 둔다. 이러한 구분은 매체의 사회적 영향력과 내적 전통에서 비롯한다는데, 결국은 사세의 문제이고 돈과 권력의 문제로 귀결된다.  

오랜만에 결혼식장에서 대학 동기들을 만났다. 기자와 석사과정생, 박사과정생, 연구원 넷이 모였으니 상호 안부 교환 이후에는 공통된 주제를 찾아 세상 만담으로 시간을 죽일 수밖에... 누군가 미친소축제 이야기를 꺼냈더니 우리의 기자 친구가 배후세력이 누군지 궁금하다며 동기들을 놀라게 만든다. 나름 합리적 우파를 자처하는 녀석이기에 무시하면 그만인 이야기였다.

그제, 그 기자 친구가 법치국가의 수도에서 무단으로 도로점거가 이루어지고 있다며 거품 낀 자판질로 내게 메신저 메시지를 날린다. 이 친구가 미친소축제는 잠시 잊고 안식년차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내 신경을 건들인 것이다. 그래도 동기이기에 그 녀석에게 그딴 일에 거품물지 말고 진정 거품물고 달려들어야 할 일이 무어냐고 되물으며 화를 삭혔다. 솔직히 말해 녀석에게 갚아야 할 돈이 생각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애초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사회적 감수성이 민감해야 할 직업이 기자이다. 특종과 낙종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신입기자에게 강도 높은 훈련이 실시되지만 그 훈련의 끝에 남는 건 조직적 사고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모든 기자들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조중동의 한 매체에서 일하는 내 친구를 보면 그렇다.

빨리 빌린 돈이나 갚아야 하겠다. 
Posted by 망명객

(출처: 미디어오늘)


시사저널 사태가 불거지는 가운데 미디어오늘의 만평이 불끈하고 포스팅을 올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또한 대학언론에 있어 편집권이란 발행인인 총장과 편집주간인 자신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학생기자들이 상관할 일이 아니라는 발언을 아무 생각없이 내뱉는 몰지각한 교수에게서 수업을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방송이 아닌 신문에 있어 편집권이란 경영권의 일부로 인정받고 있다. 어차피 언론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사적 기업인 이상 경영진의 편집권 개입은 사유재산권의 일부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언론상품은 사적기업의 이윤추구를 위한 상품치고는 공공재적 성격이 너무나 강하다는 것이다. 굳이 조선시대의 사관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언론은 시대를 재현하는 미디어상품이고 상부구조의 일부치고 하부구조에 대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상품 자체로 놓고 보면, 독자와 광고주에게 판매되는 이중 상품재이기 때문에 언론상품은 일반 상품과는 다른 성격을 지닌 상품이라는 것. 편집권이라는 것은 그러한 언론상품의 질적 차별점을 결정하는 요소이다.

언론의 공공성만을 외치는 것은 사적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일 수 있다. 그 개연성은 충분하며 오히려 언론사들의 반발과 현 정권에 대한 공격지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노동의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결국 이 문제는 노동과 소외의 문제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문제 학생들을 어르던 학생과 담당 선생님 또한 대학노조의 집회에서는 운동가요를 부르며 집회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바라보며 모 박사 선배가 한 마디 던진 적이 있다.

"결국 배운 놈들을 치기는 어려운 거야. 대학노조, 언론노조 등 배운 새끼들을 치는 건 항상 시끄러운 문제를 양산하거든."

그간 한국 언론은 배운자들에 대한 동류의식 속에서 지사형 언론인에 대한 로망을 키워왔다. 이른바 식자에 대한 사회적 믿음을 뒤집어 쓰고 있었다고나 할까. 한국 언론의 편집권에 대한 논의는 네버엔딩스토리다. 아니 전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그럴 것이다. 다만 사회적 가치에 따라 편집권의 중심이 되는 세부가치가 다를 뿐이다.

80년대 월급쟁이 기자의 출현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미 언론상품에 대한 언론노동의 소외는 이루어져 왔던 것이다. 시사저널은 사적시장과 공공성의 충돌인 동시에 상품에 대한 노동의 소외로 요약할 수 있겠지.

정보화사회의 출현에 따른 화이트칼라의 블루칼라화. 나름 사회적 메트릭을 만들어간다는 언론계가 저 모양인데, 다른 판은 오죽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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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

쓸데없는 분노

똥침 : 2005. 2. 6. 16:21
조갑제, '100일 굶었다니, 굶는 거 봤나?' 망언

동방의 등불 대한민국의 앞날에는 오로지 창대한 역사만이 존재할 뿐이니, 이는 이 땅의 탁월한 右國志士로서 두 눈 부릅뜨고 펜대를 굴리시는 갑제 형님이 계시기 때문이도다. 형님의 '단식100일? 기자들은 다 죽었다!'는 글은 이 땅 작금의 언론현상에 대한 통탄이며 일선 후배 기자들에 대한 따끔한 일침이리라.

"기자들은 이 여승이 과연 100일간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가를 알아보았어야 했다. 의사들에게도 이것이 과연 가능한지 물어 보았어야 했다. 기자들이 CCTV로 이 여승의 단식을 확인한 것도 아닌데 무슨 근거로 100일 단식이라고 확정보도했는가."

아, 이 얼마나 탁월한 지적인가. 하루살이 인생이라 표현되는 일간지 기자들이 지율스님의 단식을 CCTV를 통해서라도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는 갑제 형님의 저 탁월한 기자의식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요사이 젊은 기자들은 권위주의 정부 시절의 기사를 다시 읽어보고 선배들의 기자정신과 반골의식, 그리고 사실에 대한 집착을 배워야 할 것이다. 2005년 2월3일은 한국 언론 치욕의 날로 기억될 것이다. 백주의 암흑, 즉 정보화 시대의 기자실종 사태인 것이다. 어제 한국의 기자들은 죽었다!"

이제 갑제 형님은 후배 기자들에게 직업의식을 강조하신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 언론사 탄압으로 수많은 기자들이 일선에서 쫓겨날 때 적당한 타협과 눈치로 밥그릇을 지키는 보신정신과 과거는 잊어주세요 식으로 논조를 바꾸는 반골의식 그리고 CCTV를 통해서라도 단식을 확인했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집착. 현직 기자들과 기자를 꿈꾸는 이들 모두가 밑줄 쫙~ 긋고 따라야 할 절대 직업의식 명제를 오늘 갑제 형님의 글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니 모두들 잊지 말고 꼭 기억해둘지어다.

"하나 덧붙인다면 언론이 여승을 '스님'이라 표기하는 것도 기자들의 정도가 아니다. 그렇다면 교사는 선생님, 목사도 목사님이라 불러주어야 하고 대통령도 '대통령님'으로 해야 한다. '스님이 구속되었다'는 기사도 나오는데 이상하지 않는가. 승려나 비구니라고 부르는 것이 좋겠다."

우리의 갑제 형님은 글의 말미에서 올바른 기사작성을 위한 기술적 충고도 잊지 않으셨다. 역시 대기자님은 여타 기자들과 다르시다.

그렇다면 이건 정말 최악의 시나리오인데 지율 스님이 계속된 단식으로 열반하셨을 경우 우리의 갑제형은 어떤 반응을 보이셨을까? - 너무 잔인한 가정이다. 그래도 가정은 가정으로만~ -

'전투적 환경운동 결국 스님을 죽음으로 몰아'

대강 이런 식의 헤드라인이 나오지 않을까. 아니 조금 돌려 생각해보면 이만큼 현 정권을 공격하기에 좋은 건더기가 또 있으랴.

'참여정부 결국 지율스님을 죽여~'

지율스님의 단식 그 100일이란 엄청난 시간 동안 겪었을 스님의 고통에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한다. 어찌 단순히 단식 100일 뿐이랴. 지금까지 몇 년 동안 몇 차례에 걸친 단식과 농성 그 모든 노력들이 그저 아름다운 결실을 맺길 바랄 뿐이다.

각 개인들이 역사를 만드는 주체이지만 오늘 괜히 무임승차의 기분을 느끼는 건 왜일까? 그래서 쓸데없는 분노를 느끼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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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