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미디어오늘)


시사저널 사태가 불거지는 가운데 미디어오늘의 만평이 불끈하고 포스팅을 올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또한 대학언론에 있어 편집권이란 발행인인 총장과 편집주간인 자신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학생기자들이 상관할 일이 아니라는 발언을 아무 생각없이 내뱉는 몰지각한 교수에게서 수업을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방송이 아닌 신문에 있어 편집권이란 경영권의 일부로 인정받고 있다. 어차피 언론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사적 기업인 이상 경영진의 편집권 개입은 사유재산권의 일부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언론상품은 사적기업의 이윤추구를 위한 상품치고는 공공재적 성격이 너무나 강하다는 것이다. 굳이 조선시대의 사관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언론은 시대를 재현하는 미디어상품이고 상부구조의 일부치고 하부구조에 대한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상품 자체로 놓고 보면, 독자와 광고주에게 판매되는 이중 상품재이기 때문에 언론상품은 일반 상품과는 다른 성격을 지닌 상품이라는 것. 편집권이라는 것은 그러한 언론상품의 질적 차별점을 결정하는 요소이다.

언론의 공공성만을 외치는 것은 사적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일 수 있다. 그 개연성은 충분하며 오히려 언론사들의 반발과 현 정권에 대한 공격지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노동의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결국 이 문제는 노동과 소외의 문제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문제 학생들을 어르던 학생과 담당 선생님 또한 대학노조의 집회에서는 운동가요를 부르며 집회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바라보며 모 박사 선배가 한 마디 던진 적이 있다.

"결국 배운 놈들을 치기는 어려운 거야. 대학노조, 언론노조 등 배운 새끼들을 치는 건 항상 시끄러운 문제를 양산하거든."

그간 한국 언론은 배운자들에 대한 동류의식 속에서 지사형 언론인에 대한 로망을 키워왔다. 이른바 식자에 대한 사회적 믿음을 뒤집어 쓰고 있었다고나 할까. 한국 언론의 편집권에 대한 논의는 네버엔딩스토리다. 아니 전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그럴 것이다. 다만 사회적 가치에 따라 편집권의 중심이 되는 세부가치가 다를 뿐이다.

80년대 월급쟁이 기자의 출현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미 언론상품에 대한 언론노동의 소외는 이루어져 왔던 것이다. 시사저널은 사적시장과 공공성의 충돌인 동시에 상품에 대한 노동의 소외로 요약할 수 있겠지.

정보화사회의 출현에 따른 화이트칼라의 블루칼라화. 나름 사회적 메트릭을 만들어간다는 언론계가 저 모양인데, 다른 판은 오죽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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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