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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3.20 서울, 한 치 틈도 없는 공간 by 망명객
  2. 2005.01.08 050107 by 망명객
  3. 2005.01.08 20051007 by 망명객

동수님이 그랬듯 어린 내게도 서울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서울에서 대학이나 대학원을 다니던 삼촌들과 고모는 집에 내려올 때마다 내게 갖가지 신기한 선물을 안겨주곤 했다. 아울러 명절에나 만날 수 있는 사촌누이들은 서귀포의 거리에서는 만나볼 수조차 없는 포스를 발산한 뒤 비행기를 타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곤 했다. 누이들이 탄 비행기를 바라보며 아마 서울은 저 구름 위에 지어진 도시일 것이라고 어린 나는 생각했었다.


유아원을 다니기도 전, 수술을 받기 위한 서울 방문이 내 기억의 첫 서울 방문으로 남아 있다. 아픈 기억보다 창경원의 원숭이와 각종 놀이기구가 신기했고, 이 강 이름을 아냐는 삼촌의 물음에 낙동강이라 대답했던 한강은 상상 이상으로 넓었다(물론 바다보다는 좁은 물이었지만 제주에는 강이 없다).

 

남산, 63빌딩, 롯데월드, 용산 전자상가, 명동, 종로, 한강 유람선. 막상 서울 사람들은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이지만 대입 수험생이던 나와 친구들에게 서울은 두 다리의 힘을 쉬이 빼놓게 만드는 곳이었다. 바로 요 앞에 있을 것 같이 보이던 63빌딩을 향해 흑석동에서부터 무작정 두 다리에 의지해 걸아나서던 촌놈들. 전국민이 다 아는 곳에서는 쉬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름 공간적 아우라를 직접 겪어보고자 하는 촌놈들의 욕구가 강했던 시절이다. 교보문고와 영풍문고의 규모에 놀랬고 시인의 이름만으로 그의 전집을 갖다주는 그 체계에 놀랐다. 정말 행복했던 공간은 역시 대학로. 수험생이라고 친지들이 챙겨준 용돈을 그 거리에 쏟아부었다. 아, 수험생 시절에 서울에서 놀랄 일은 또 있었다. 스팀이 나오던 대학 강의실. 논술시험을 치를 때, 동내의를 챙겨입고 가라던 아버지의 말씀을 난 꼭 지켰다. 시험 당일 푹푹 틀어주는 스팀에 삐질삐질 흘린 땀이 기억에 남는다.

 

본격적인 서울 생활은 유람객 시절의 기대 이하였다. 좁은 하숙방과 낙후된 왕십리의 거리. 볕이 들지 않는 반지하나 옥탑방과 같은 특이한 주거공간과의 만남은 낯설고도 힘든 경험이었다. 향수병까지는 아니지만 삶의 여유가 그리웠다고나 할까. 수험생 때는 신기하기만 했던 만원전철에 짜증이 났고, 외출에서 돌아와 세수 할 때마다 확인할 수 있는 콧속 검은 때에 서울은 가난한 사람이 살 만한 곳은 아니라는 사실을 차츰 깨닫게 됐다.

 

백수가 되었노라는 내 이야기에 상가집에서 만난 선배와 동기는 지레 걱정부터 앞세운다. 직장생활과 결혼 그리고 그 이야기에 빠질 수 없는 돈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고가는 지인들과의 자리에서 난 투명인간이었다. 물론 우리 나이에 걸맞는 관심사이니 자연스레 이야기의 소재가 그리 옮겨가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미래는 짜여진 틀대로 되는게 아니다. 

 

위에서 바라본 자본주의는 아름답다고 했던가. 남산의 야경은 아름답다. 하지만 그 아래 거리의 세상은 녹록하다. 한 치 틈도 허용하지 않는 서울의 공간처럼 사람들도 각자 한 치 여유 없이 살아가려 한다. 틈의 동의어가 약함처럼 들린다.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 경쟁력과 생존이란 단어가 횡횡하듯 약육강식의 사회가 우리 마음 속의 틈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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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

050107

길위에서 : 2005. 1. 8. 10:21
무척 추웠다. 가뜩이나 웅크린 어깨가 옹송거릴 정도로 겨울바람은 차가웠다. 그렇게 찬 바람이 불던 오후, 양복쟁이들의 거리, 가끔은 투쟁의 거리가 되기도 하는 여의도 한 복판에 내가 있었다. 넓고 깨끗한 인도와 높게 들어찬 빌딩들은 거북한 이질감으로 다가온다. 결코 내가 섞일 수 없을 듯한, 전혀 다른 세계와도 같은 반듯함과 깔끔함에 담배꽁초로라도 흠집 내고 싶어지는 건 내가 삐딱하기 때문이겠지.

날씨가 춥지 않았으면 그냥 길거리에 있었을 것을... 이질감으로 점철된 거리의 어느 커피숍에서 코코아 한 잔과 비스킷 한 조각, 그리고 윤후명의 소설책으로 시간을 달랬다.

창 밖으로 보이는 국회의사당과 그 앞을 지키는 전투경찰, 너무나 익숙한 배경이지만 내게 다가오는 익숙한 얼굴 뒷배경으로는 낯설게만 느껴진다. 코가 얼고 귀가 떨어질 듯 추운 날 이질감과 괴리감이 만연한 공간에서 너무나 익숙한 아버지를 만나던 순간, 내 맘 깊이 알 수 없는 울컥거림이 몸을 휘감는다.

왜 그랬을까?
1년 만에 긴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조차 덤덤했건만 스물일곱이 되어 겨우 분기만에 만난 아버지 앞에서 느끼던 이 낯선 감정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 사이 더욱 말라 버렸네."
부자 지간의 대화는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만남의 시간조차 길지 않았다.
"밥은 꼭 챙겨먹어라.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
부모님의 잔소리로 치부해버려도 되었을 이야기, 그 이야기에 자칫 눈물이 쏟아질 뻔 했다. 추위만 아니라면 이질감과 거북함이 가득한 거리에서 그냥 펑펑 울어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아버지와 나는 익명의 인간들이 급하게 오고가는 서울의 거리에서 헤어졌다. 아버지를 뒤로 하고 학원으로 향하는 길, 내 손에는 아버지가 주신 돈 5만원과 저녁밥은 꼭 챙겨 먹으라는 염려가 쥐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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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

20051007

길위에서 : 2005. 1. 8. 10:21
무척 추웠다. 가뜩이나 웅크린 어깨가 옹송거릴 정도로 겨울바람은 차가웠다. 그렇게 찬 바람이 불던 오후, 양복쟁이들의 거리, 가끔은 투쟁의 거리가 되기도 하는 여의도 한복판에 내가 있었다. 넓고 깨끗한 인도와 높게 올라선 빌딩들은 거북한 이질감으로 내게 다가왔다. 결코 섞일 수 없을 듯한,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와도 같은 반듯함과 깔끔함에 담배꽁초 흠집을 내고 싶다 느낀 건 내가 삐딱하기 때문이겠지.

날씨가 춥지 않았으면 그냥 길거리에 있었을 것을. 이질감으로 점철된 거리의 어느 커피숍에서 코코아 한 잔과 비스킷 한 조각, 그리고 윤후명의 소설책으로 시간을 달랬다.

창 밖으로 보이는 국회의사당 앞 전투경찰들을 배경으로 익숙한 얼굴이 다가온다. 아버지.

코가 얼고 귀가 떨어질 듯 추운 날 이질감과 괴리감이 만연한 공간에서 익숙한 얼굴을 대하던 순간, 내 맘 깊이 알 수 없는 울컥거림이 몸을 휘감는다. 왜 그랬을까? 1년 만에 긴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조차 덤덤했건만 스물일곱이 되어 겨우 분기만에 만난 아버지 앞에서 느끼던 이 낯선 감정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 사이 더욱 말라 버렸네."

부자 사이의 대화는 단문 형태로 오고간다. 만남의 시간조차 길지 않았다.

"밥은 꼭 챙겨먹어라.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

부모님의 잔소리로 치부해버려도 좋을 이야기. 그 이야기에 자칫 눈물을 쏟을 뻔 했다. 이질감과 거북함의 거리에서 그냥 펑펑 울어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짧은 시간을 보내고 아버지와 나는 수많은 익명의 인간들이 급히 오고가는 서울의 거리에서 헤어졌다. 아버지와 헤어져 학원으로 향하는 길, 내 손에는 저녁밥은 꼭 챙겨 먹으라는 아버지의 염려 대신 돈 5만원이 쥐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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