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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14 아, 김두수... by 망명객
  2. 2009.09.08 전어는 서해 출신? 4 by 망명객
  3. 2009.09.07 소매물도 천공의 성 by 망명객
  4. 2009.08.17 휴가의 기억 by 망명객
  5. 2009.08.06 서울숲 별밤축제 4 by 망명객
  6. 2009.08.06 후라이팬 2 by 망명객
  7. 2009.08.03 가슴 속에 술병 하나 고이 담아두며 by 망명객
  8. 2009.07.28 무시하고 싶어도 무시할 수 없는 현실 by 망명객
  9. 2009.07.22 누군들 죽고 싶었겠느냐 by 망명객
  10. 2009.07.19 그녀가 처음 울던 날 2 by 망명객

아, 김두수...

길위에서 : 2009. 9. 14. 22:22

김규항이 블로그에 밝히길, 이번 공연을 끝으로 김두수는 당분간 국내를 떠난단다.

다음 김두수 팬 카페(하늘이시여, 제가 정말 가수의 팬 카페에 가입을 했단 말이옵니까) 역시 요 몇 년 간 들어가 보지 못했으니, 김규항의 블로그를 통해 듣는 김두수의 소식은 내게 정말 반가울 따름이다.

장가 간다고 바쁜 더프 옹께선 이 가을을 아저씨들이 괜히 외로워지는 계절이라 하셨거늘...
아직 아저씨가 아닌 저에게 이 가을은 김두수의 노래에 젖어들고픈 계절입니다.

김두수의 보헤미안


아, 이번 정기공연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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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
통영 중앙시장 활어코너에서 구입한 전어/광어/우럭 회


며칠 전 인기 블로거 김주완 기자님의 '가을의 진미 전어회 맛있게 먹는 법' 포스팅을 보고서야 전어의 계절이 돌아왔음 깨달았습니다. 즉흥적으로 떠난 통영 여행에 앞서 트위터로 먹거리 추천을 부탁드렸더니 김 기자님께서 "통영에도 전어가 한창 제철입니다. 통영은 멸치회와 조림이 특히 별미죠. 술 좋아하시면 푸짐한 다찌집도 좋습니다."라며 친절히 답해주시더군요. 저와 제 친구의 선택은 전어회였습니다. 활어시장에서 전어와 함께 광어와 우럭도 구입했습니다만 광어는 살이 너무 물러 그냥 매운탕에 넣어 끓여 먹었습니다.

일상으로 돌아와 주변 지인들에게 "지난 주말 통영으로 전어회 먹으러 다녀왔다"고 이야기 했더니 "전어는 서해안이지"라는 반응이 돌아옵니다. 제가 남해에서 먹고 온 전어가 아마 서해 출신일 거라 이야기 하시는 분도 계시더군요. 정말 전어의 고향은 서해일까요?

위키백과 내용을 살펴 보면, 전어는 동아시아 연안에 분포하는 청어과 어종으로 남해와 서해에 많다고 나와 있습니다. 특산물과 관련해선 지역 축제를 빼놓을 순 없겠죠. 전어 관련 축제는 충남 서천 홍원항, 전남 광양 망덕포구, 경남 사천 삼천포항, 마산 어시장, 부산 명지시장에서 열립니다. 삼천포와 마산 어시장, 명지시장 전어축제는 8월, 서천과 광양의 전어축제는 9월 말에서 10월 초에 열립니다.

동해 전어는 남해와 서해 전어에 비해 살이 조금 더 붉은 편이랍니다. 전어의 고향은 전국권인 셈이죠. 단, 수도권에는 주로 서해안에서 잡힌 전어가 유통된답니다. 성격이 급해 금새 죽어버리는 전어의 특성 때문에 유통 경로가 짧을수록 좋다는 거죠. 누구에게나 고향 음식이 최고죠. 남해안 출신은 남해 전어를, 서해안 출신은 서해 전어를 최고로 친다지만, 유통업자들은 서해산보다 남해산 전어의 가격을 좀 더 쳐준다고 합니다.

결국 서해안 전어란 수도권의 지역적 한계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란 게 제 결론입니다. 전어철입니다. 정일근 시인의 이야기처럼 '저무는 가을 바다로 가서 전어나 듬뿍 썰어달라 하자'고 친구와 가족에게 이야기 할 계절입니다.



가을 전어

 - 정일근

시인이여, 저무는 가을 바다로 가서 전어나 듬뿍 썰어달라 하자

잔뼈를 넣어 듬성듬성한 크기로 썰어달라 하자

바다는 떼지어 헤엄치는 전어들로 하여 푸른 은빛으로 빛나고

그 바다를 그냥 떠와서 풀어놓으면 푸드득거리는 은빛 전어들

뼛속까지 스며드는 가을을 어찌하지 못해 속살 불그스레 익어

제 몸속 가득 서 말의 깨를 담고 찾아올 것이니

조선 콩 된장에 푹 찍어 가을 바다를 즐기자

제철을 아는 것들만이 아름다운 맛이 되고 약이 되느니

가을 햇살에 뭍에서는 대추가 달게 익어 약이 되고

바다에서는 전어가 고소하게 익어 맛이 된다

사람의 몸속에서도 가을은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법이니

그 빈자리에 가을 전어의 탄력 있는 속살을 채우자

맑은 소주 몇 잔으로 우리의 저녁은 도도해질 수 있으니

밤이 깊어지면 연탄 피워 석쇠 발갛게 달구어 전어를 굽자

생소금 뿌리며 구수한 가을 바다를 통째로 굽자

한반도 남쪽 바다에 앉아 우리나라 가을 전어 굽는 내음을

아시아로 유라시아 대륙으로 즐겁게 피워 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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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
지난 토요일 새벽에 나선 즉흥적인 통영 여행길은 고속도로 위에서 소매물도로 향하는 뱃길로 이어졌다. 서호시장 시락국으로 아침 해장을 한 뒤 충무김밥을 도시락 삼아 떠난 뱃길이었다. 여름과 가을의 계면에서 만난 남녘 바다는 오색 등산복의 여행객들만큼 들떠 있었다. 통영 앞바다의 섬과 섬, 그 사이를 달리길 1시간 반만에 여객선은 소매물도에 닿았다.



소매물도 정상인 망태봉은 해발 152미터. 선착장부터 망태봉까진 고작 0.75킬로미터. 경사가 급한 비포장 길을 오르는 건 하이힐을 신은 아가씨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더더욱이 짧은 치마를 입었다면 그녀와 그녀의 건장한 애인은 선착장 근처의 짧은 산책로를 둘러보는 것으로 소매물도 관광을 마쳐야 한다.



망태봉에는 밀수선을 감시하던 세관 감시대가 앙상한 뼈대를 드러내놓고 있다. 바다 위,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으니 이곳은 감시대라기보다 '천공의 성'이다. 천공의 눈은 먼 바다와 가까운 섬을 응시한다. 하늘에는 구름과 갈매기를 제외하곤 시야를 가리는 게 없다. 그래서 하늘은 천공의 시선에겐 재미 없는 피사체이다. 내려다 보는 시선은 쉽게 의심을 품곤 한다. 그 시선에는 오만함이 녹아 있다. 그래서 이는 고독한 시선이다. 상호 교통 없는, 일방적인 시선이 내려다 보는 시선이다. 비판보다 연민으로 이를 올려다 보자. 물론 올려다 보는 자에겐 그만한 여유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등대는 2500개가 넘는다. 이들은 365일 동안 약 1백만 번씩 불빛을 깜박이며 뱃길을 밝힌다. 각 등대는 각기 다른 점멸 주기를 갖고 있다. 개별 등대가 지닌 고유한 주기적 기호체계. 그 사이에서 바다는 잠들고 선박은 항로를 검증한다. 등대섬 등대 불빛과 인근 도서 등대 불빛이 엉켜 한밤 천공의 시선에 눌러붙을 터이다.



한려수도가 빈 창 구멍을 액자삼아 펼쳐지는 이곳은 소매물도 천공의 성. 내려다 보는 자의 숙명이 앙상한 뼈대의 폐허로 드러난 곳. 당신과 나의 시선이 어긋나며 각자 카메라에 풍경을 오려넣는다. 높낮이와 각도는 각자 다르지만, 술잔 마주했을 땐 쉽게 교통하는 게 친구의 시선이라네. 내려다 보거나 올려다 보지 않는, 그런 수평적 시선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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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의 기억

길위에서 : 2009. 8. 17. 11:26
0123


잘려나간 반도의 여름은 뜨겁다. 피서지를 찾아 오랜만에 이용한 경춘선 열차는 여전히 청춘의 꿈과 사랑을 실어나르고 있었다. 타인들이 빚어낸 꿈과 사랑에 무임승차하며 달려간 곳은 가평. 역전에서 다시 승합차를 얻어타고 들어간 곳이 북면에 위치한 어느 계곡변이었다. 경기도 북서지역 변경, 일행이 짧게나마 더위를 피해 달려온 곳이다.

두 눈을 찌르는 주변 산하의 초록이 내리쬐는 태양볕을 피할 그늘을 제공해준다. 폭염에 휩싸인 대지 곁으로 힘차게 달음질치는 계곡물의 굉음이 청량하다. 적당한 끼니와 적절한 음주 후 낮잠을 즐기던 일행 사이에서 난 어느 처사의 관념이 빚어낸 여행 수기를 펼친다. 이 여름, 지상에 묶인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편한 자세로 보내는 몇 시간이 너무나 달콤하다.

8월 중순, 사방의 진초록은 태양볕에 달궈져 태생적으로 간직했던 흙의 색을 곧 내비칠 태세다. 이제 그 임계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 빨래줄 위에 나란히 자리한 잠자리들은 한 여름의 폭염을 기억한 채 가을을 맞이하겠지. 2박 3일, 이 찰나의 이미지들은 회색의 도시에서 성마른 그리움으로 날 괴롭힐 것이다. 나이가 들어 좋은 건 그리움을 그리움만으로 삭힐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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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숲 별밤축제

길위에서 : 2009. 8. 6. 16:49
프로그램(링크)

8/1~ 8/15일 8:00~10:00 : 축제 in 축제 -릴레이록페스티벌
8/22,8/29(토) : 별밤축제




홍대가 아닌 뚝섬 서울숲이다.
ㅋㅋ

논문 써야 하는데...
이거 원, 근처에서 이런 행사를 한다면...

재석~ 지훈~ 우리 달려볼까?
술은 곧 장가갈 교훈이가 쏜다~!
아님 캔맥주 들고 가도 괜찮을 듯싶은데...


special thanks to 좋은 정보 제보해주신 조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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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

후라이팬

길위에서 : 2009. 8. 6. 09:19
간만에 서울에 왕림하신 동생님(JJH)

지난 주말, 간만에 동생님께서 서울에 올라오셨다. 직장 문제로 구미 모 공장에서 노가다(본인 표현으론)를 하고 계신 동생님.

동생님이 나와 함께 만화방에서 두 시간 놀아주신 뒤, 새로 생긴 닭집에서 요리를 시켜주셨다. 닭집 이름은 '후라이팬', 요리는 '안심후라이드(?)'다. 동생님은 700cc 맥주도 함께 주문해주셨다. 오랜만에 서울 왕림하시면서 티셔츠 두 장도 손수 챙겨주시는, 참 고마우신 분이다. 감동은 헤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이어졌다. 내 손에 담배값 몇 푼 챙겨주시는 동생님. 생일날보다 더 기쁜 날이었다.


the Frypan

요즘 부쩍 동행음주 횟수가 는 LJH이가 끌고갔던 'the Frypan'. 아메리칸 스타일의 닭요리집이라는데, 난 아메리칸 스타일을 잘 모르기에 일단 패스. 분위기는 아해들이 좋아하도록 좀 시끄러운 편. 이 집은 닭요리 밑에 깔아주는 포테이토칩이 특히 일품이다.

동생님께서 읍하시길 "구미에 하나 차리면 잘 될 듯싶다"고. 동생님 벌써부터 노후를 대비하시나 보다. 계산을 마친 동생님께서 내게 쿠폰을 내미신다. 보아하니 체인 형태의 음식점인 듯.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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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
잘린 나무 등걸과 KHS

한마당을 지키던 고목이 잘려나갔다. 주변엔 안내 문구 하나 없었다. 교문 옆을 지키던 고목처럼 이 녀석도 조만간 새로운 녀석으로 대체될까? 캠퍼스엔 해가 멀다 하고 새 건물이 들어선다. 건물보단 나무나 벤치를 랜드마크로 삼던 기억이 내겐 더 많은데 말이다. 교육기관이라 인재 육성에만 신경을 쓴 나머지 인재들의 기억에 각인된 추억의 나무까진 채 신경쓰지 못하는 학교. 참 씁쓸한 일이다.

2년 전 술자리에서 처음 만나 2년 동안 죽어라 술자리를 함께 했던 친구가 내일모레 미국으로 떠난다. 2년이란 시간 동안 동고동락했던 도반이 떠난다니 시린이처럼 가슴 한 켠이 아리다. 이것으로 꼭 함께 졸업하자던 다짐은 술자리의 허언으로 끝나고 말았다. 과정으로서의 학위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어찌 삶까지 그러하랴.

인사차 찾아간 노교수는 친구에게 "배고플 때 스테이크 하나 사먹어라"라며 100달러 지폐 한 장 쥐어주더란다.  "꼭 배고플 때 사먹어야해"라며 노교수가 강조했단다. 떠나는 이에게 밥 한 끼 먹이는 일이 내가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인사치레였다. 학교 구내식당에서 2500원짜리 식권 두 장으로 우린 함께 메밀소바를 나눠먹었다.

출국 준비로 바쁜 걸 알면서도 술자리에서 만난 친구를 술 한잔 나누지 않고 보내려니 섭섭함과 미안함이 밀려왔다.

"술병 하나 가슴 속에 킵해둬."

친구의 한마디에 아쉬움이 한가득이다. 지하철 입구에서 두 남자가 시덥지 않은 이야길 나누며 미적거리고 있었다. 연거푸 담배 두 가치가 꽁초로 변할 시간 동안 말이다.

"한국 돌아와서 뿌리 내릴 생각일랑 죽어도 하지 마."

지하철 입구에서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긴 이것밖에 없었다. 뒤늦게 공부에서 재능을 발휘해 4년만에 모든 학위를 마친다면 어떨까, 하는 우스갯소리에 대한 내 응답이었다. 아쉬운 포옹이 이어졌고 우린 각자의 갈 길로 방향을 틀었다. 녀석의 뒷모습을 내 기억 속에 담아두기 싫었다.

친구에겐 대학원에서 보낸 2년이란 시간이 한마당 고목처럼 등걸로만 남았다. 이제 곧 녀석은 그 등걸 위에 새로운 싹을 틔울 것이다. 더 넓은 세상에서... 네 말처럼 각자의 가슴 속에 술병 하나 고이 담아두자꾸나. 우정이란 이름의 술병 말이다. 고맙다. 미안했다. 그리고 사랑한다 KHS.




이렇게 글을 쓰고 보니, 녀석이 "형, 늙은이 티 내는 거 아니에요?"라며 유쾌한 미소를 날릴 것 같다. 그래도 어쩌랴. 요즘 내 감성 상태가 이런 것을... 태평양 너머로 유학을 떠난다지만 우린 곧 메신저에서 이야길 나누겠지. "아직도 술쳐먹고 다녀?" "넌 아직도 쭉쭉빵빵 아가씨 지나가면 고개가 절로 돌아가냐?"처럼 시덥지 않은 이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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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
짜증나는 과거는 잊으면 그만이다. 어차피 선택적 기억만이 남을 뿐이다. 사람? 인연의 고리도 쉽게 끊을 수 있다. 연락 끊고 지내면 그만이다. 어차피 먹고살기 바쁜 세상, 시간이 약이다.

가해의 상처를 덮는 데 필요한 건 피해의 기억이다. 넌 나를 이용했기에 난 너를 버릴 수밖에 없었어. 세상의 관계는 결국 상처를 주고받는 것임에도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자기변명만 존재하는 상황. 결국 그 자리에 소통은 없다. 끝없이 소통을 이야기하지만 상처에 대한 두려움에 우린 스스로 단단한 껍질을 쌓을 수밖에 없다.

때린 놈은 발 뻗고 잘 수 없지만 맞은 놈은 발 뻗고 잔다는 어머니의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피해의식에 기반한 독단적 관계 설정은 늘 인연의 고리 속에서 자신을 고립시킨다. 결국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선 가해자는 없고 모두 피해자인 셈이다. 적어도 그건 정신건강에 이롭다. 발 뻗고 편히 자려면...

개인에겐 양심이라도 있지만 집단에게 이를 요구하는 건 무리다. 조직 자체는 보수다. 영리 추구 여부는 상관 없다. 조직 결성 목적은 간 데 없고, 조직의 안위가 구성원들의 최고 가치가 된다. 대의를 위해 목숨 걸듯 조직의 안위를 걸고 행동한다 해도, 늘 조직 구성원들은 주판알을 튕기기 마련이다. 그 과정이 정치다.

사적 이익이 쉬이 공적 가치로 둔갑하는 요지경 같은 세상 속, 정치의 과잉이 빚어내는 풍경에 분노는 쉽지만 소외의 늪도 깊다. 좌와 우, 우리 편과 네 편으로 갈린 싸움은 선악의 프레임에 갖히게 되어 있다. 누가 맞았고 누가 덜 맞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를 지켜보는 입장에선 둘 다 같은 놈이란 거다.

시선을 조금만 돌리면, 이 사회엔 삶의 현장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이 넘쳐난다. 감히 각 구성원들이 주판알을 튕기는 것조차 사치스럽게 느끼는 다급한 현장 말이다. 정치는 그런 현장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조직도 삶의 현장에 기반해야 한다. 상처받기 두려운 자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 짜증나는 과거는 잊으면 그만이지만, 반성 없는 망각은 미래의 재앙으로 내 목을 짓누르기 십상이다.

개인의 상처에는 시간이 약이지만, 정치를 내세운 조직에겐 소통만이 약이다. 때린 놈이나 맞은 놈이나 매한가지라는 관망자들의 평가가 그 어떤 논리보다 무서운 것이기 때문이다. 등 돌리는 관망자들이 늘어날수록 진보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아, 지금은 범민주주의 진영이라 이야기하자. 자신의 욕심을 위해선 온전한 시장가치마저 무시하는 그들에 비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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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사람이 죽었다. 이번엔 노동자를 지아비로 둔 주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서는 없었다. 수사기관의 공식적인 사인 발표는 없었다. 단, 그녀의 자살을 우울증과 같은 개인적 문제로 축소하려는 시도가 엿보일 뿐. 야당과 민주노총 측은 남편 회사에 불어닥친 정리해고와 그 여파를 자살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각 이해집단들이 발표 성명서가 아니더라도, 한 인간이 자신의 목숨을 끊는 건 비극일 수밖에 없다. 아직 살아야 할 이유가 더 많을 터이니 말이다.

그녀의 남편은 노조 간부. 그가 15년 동안 일한 회사는 그와 동료들을 '산자'와 '죽은자(정리해고자)'로 갈라놓았다. 노조 간부로서 그녀의 남편이 취할 수 있는 길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는 '죽은자들'의 곁에서 투쟁에 합류했다. 한 가정을 책임진 가장의 길과 노조 간부의 길은 조금씩 어긋났으리라.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서로 사랑하기에 결혼했을 것이다. 한 사람의 남자와 한 사람의 여자가 서로를 삶의 동반자로 여겼기에 한 지붕 밑에서 함께 살게 됐을 것이다. 남편은 일터를, 아내는 가정을 꾸리며, 둘은 함께 삶을 나누고 꿈을 공유했을 것이다. 가끔 그들도 여느 부부처럼 부부싸움이란 걸 했겠지. 함께 마트에서 쇼핑카트를 끌고 애를 키우고, 여느 가정처럼 그들도 소소한 일상을 보냈을 것이다.

난 그녀와 그녀의 남편을 모른다. 그들도 나를 모른다. 단, 그들 이야기가 오르내린 기사 행간을 통해 난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추정할 뿐이다. 한 사람이 죽었다. 그리고 또 누가 죽을 지 모르는 극한 대립이 이어지고 있는 곳이 쌍용자동차다. 살려고 하는 '죽은자'들의 노력과 그 곁에서 이를 못본 채 두 눈 질끈 감는 '산자'들의 죽은 분노나 모두 답답하긴 매 한가지다.

두 어린 아들들을 두고 누군들 죽고 싶었겠느냐. 이 죽음을 그 누가 욕되게 하느냐. 이리도 삶은 욕 된 것을...

누군들 죽고 싶었겠느냐.


Posted by 망명객

그녀가 처음 울던 날, 난 너무 깜짝 놀랐네. 그녀의 고운 얼굴 가득히 눈물로 얼룩이 졌네.
- 김광석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중


또 한 사람을 울렸다. 모자란 능력에 과다한 의욕은 늘 그렇게 상황을 파국으로 끌곤 한다.

정신 없는 기획회의, 눈물을 참지 못해 자리를 피하던 어린 친구의 모습에 난 깜짝 놀랄 뿐이었다. 애초 계산에 넣어뒀던 상황이었지만 막연한 낙관주의로 넘어갈 뿐,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완벽만을 추구한, 사람에 대한 배려가 조금 모자란 자리였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지만, 결국 난 한 사람의 자존심에 상처를 줬다. 그 친구는 동료들 앞에서 자신의 눈물이 못내 부끄러웠을 게다.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가는 내가 밉기도 했을 게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비가 쏟아지던 거리, 난 회식자리에 늦게 동참했다. 우주의 미아가 된 듯, 난 그 자리에 섞일 수 없었다. 친구들과 농을 치고 함께 웃어도 더한 헛함만이 마음 한 켠에 쌓일 뿐이었다.

애정이 아닌 일 때문에 울리고 운 관계는 가끔 질긴 인연의 고리로 발전하기도 한다. 딱 10년 전에도 그렇게 한 사람을 울렸다. 10년 전 그 친구는 지금도 가끔 "어이 망명객씨, 잘 지내쇼?"라고 조금 건방진 인삿말을 건내며 자신의 용건을 쏟아내곤 한다. 물론 나도 그 친구에게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 부담없이 밥 사라, 술 사라 타령을 늘어놓곤 한다. 물론 일을 둘러싼 모든 눈물이 그런 관계로 귀결되는 건 아닐 것이다. 그래도 딱 10년 전에 울린 친구처럼, 올해 울린 친구와도 오랜 인연이 되었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다. 그 친구가 고운 얼굴 가득히 알찬 글만 가득 써내는, 그런 사람이 되길 내 미안함을 대신해 조용히 빌어본다.


그나저나 이 짓거리도 슬슬 끝낼 때가 된 것 같다...



Posted by 망명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