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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19 연말 품절남과 품절녀... by 망명객
  2. 2009.08.03 가슴 속에 술병 하나 고이 담아두며 by 망명객
봄이 가고 가을도 지나가버린 겨울 거리, 새해가 오기 전에 기필코 결혼을 하겠다는 일군의 무리들 덕에 주말마다 챙겨야 할 결혼식들이 무더기입니다. 오늘도 대구와 서울에서 같은 시간에 품절남과 품절녀가 되려는 지인들의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멀다는 핑계로 대구 대신 신사역 근처의 결혼식장을 찾았습니다. 

신랑은 학자가 되겠노라며 멀리 미쿡 마이애미 시골에서 선덕여왕 본방을 사수하고 있던 제 대학원 동기입니다. 이 녀석이 10년 연애의 결실을 보겠노라며 도미 4개월 만에 고국땅으로 돌아와서는 화촉부터 밝혔습니다. 도미 직전에는 이 녀석을 또 언제 보나 싶더니, 4개월 만의 해후는 떠나는 이의 비장함과 떠나보내는 이의 아쉬움을 머쓱하게 만들더군요. 






청첩장을 받던 자리에서 처음 만난 신부는 식장에서 더욱 고운 자태를 뽐내더군요. 식장에 들어가기 전까지 다시 한 번 심각하게 고민해보라는 장난끼 가득한 제 조언에 "다시 한 번 생각해볼게요"라고 답하던 신부는 결국 제 동기 녀석을 평생의 친구로 받아들였습니다. 






연애 기간이라고는 1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강산이 한 번 변한 시간은 서로가 서로를 닮아가는 과정이었겠죠. 이제 남은 생은 두 사람이 더 먼 세계를 향해 함께 걸어가는 시간입니다. 오늘 결혼식에서는 돈 봉투 들고 있을 때의 신랑신부 표정이 제일 좋더군요. 






대학원에 파란만장하지 않은 기수가 없다지만, 참 힘든 시간 이겨낸 친구들이 저와 제 동기들입니다. 오랜만에 동기들끼리 모여 사진 한 장 찍었습니다. 결혼식을 마치고 폐백실로 향하는 신랑을 납치한 저희 여동기들(일명 '펑클' or '펑크')은 대만인과 중국인들이죠. 우리 펑클에게 동기의 결혼식은 또다른 추억이 되었겠죠. 

다시 한 번 KHS 군과 LKM 양의 결혼을 축하합니다. 





Posted by 망명객
잘린 나무 등걸과 KHS

한마당을 지키던 고목이 잘려나갔다. 주변엔 안내 문구 하나 없었다. 교문 옆을 지키던 고목처럼 이 녀석도 조만간 새로운 녀석으로 대체될까? 캠퍼스엔 해가 멀다 하고 새 건물이 들어선다. 건물보단 나무나 벤치를 랜드마크로 삼던 기억이 내겐 더 많은데 말이다. 교육기관이라 인재 육성에만 신경을 쓴 나머지 인재들의 기억에 각인된 추억의 나무까진 채 신경쓰지 못하는 학교. 참 씁쓸한 일이다.

2년 전 술자리에서 처음 만나 2년 동안 죽어라 술자리를 함께 했던 친구가 내일모레 미국으로 떠난다. 2년이란 시간 동안 동고동락했던 도반이 떠난다니 시린이처럼 가슴 한 켠이 아리다. 이것으로 꼭 함께 졸업하자던 다짐은 술자리의 허언으로 끝나고 말았다. 과정으로서의 학위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어찌 삶까지 그러하랴.

인사차 찾아간 노교수는 친구에게 "배고플 때 스테이크 하나 사먹어라"라며 100달러 지폐 한 장 쥐어주더란다.  "꼭 배고플 때 사먹어야해"라며 노교수가 강조했단다. 떠나는 이에게 밥 한 끼 먹이는 일이 내가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인사치레였다. 학교 구내식당에서 2500원짜리 식권 두 장으로 우린 함께 메밀소바를 나눠먹었다.

출국 준비로 바쁜 걸 알면서도 술자리에서 만난 친구를 술 한잔 나누지 않고 보내려니 섭섭함과 미안함이 밀려왔다.

"술병 하나 가슴 속에 킵해둬."

친구의 한마디에 아쉬움이 한가득이다. 지하철 입구에서 두 남자가 시덥지 않은 이야길 나누며 미적거리고 있었다. 연거푸 담배 두 가치가 꽁초로 변할 시간 동안 말이다.

"한국 돌아와서 뿌리 내릴 생각일랑 죽어도 하지 마."

지하철 입구에서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긴 이것밖에 없었다. 뒤늦게 공부에서 재능을 발휘해 4년만에 모든 학위를 마친다면 어떨까, 하는 우스갯소리에 대한 내 응답이었다. 아쉬운 포옹이 이어졌고 우린 각자의 갈 길로 방향을 틀었다. 녀석의 뒷모습을 내 기억 속에 담아두기 싫었다.

친구에겐 대학원에서 보낸 2년이란 시간이 한마당 고목처럼 등걸로만 남았다. 이제 곧 녀석은 그 등걸 위에 새로운 싹을 틔울 것이다. 더 넓은 세상에서... 네 말처럼 각자의 가슴 속에 술병 하나 고이 담아두자꾸나. 우정이란 이름의 술병 말이다. 고맙다. 미안했다. 그리고 사랑한다 KHS.




이렇게 글을 쓰고 보니, 녀석이 "형, 늙은이 티 내는 거 아니에요?"라며 유쾌한 미소를 날릴 것 같다. 그래도 어쩌랴. 요즘 내 감성 상태가 이런 것을... 태평양 너머로 유학을 떠난다지만 우린 곧 메신저에서 이야길 나누겠지. "아직도 술쳐먹고 다녀?" "넌 아직도 쭉쭉빵빵 아가씨 지나가면 고개가 절로 돌아가냐?"처럼 시덥지 않은 이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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