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신문을 읽는 이유...
미디어/디지털라이프 :
2010. 2. 18. 12:39
우리집은 늘 두 가지 신문을 구독했다. 특정 신문을 고집한 건 아니었지만 늘 중앙일간지 한 부와 지방지 한 부가 집으로 배달됐다. 고등학교에 입학할 즈음, 아버지는 꽤 두꺼운 대학노트 한 권을 내 손에 쥐어주셨다. 친척 어르신이 당신의 아들을 서울 명문대에 입학시킨 비결이라며 아버지께 알려준 비법은 매일 신문 사설 한 편씩을 필사하는 것이었다. 한글 전용 편집을 단행하던 신문으로는 한겨레가 유일했던 시절, 난 아버지의 권유 대로 옥편을 옆에 끼고는 매일 동아일보 사설 한 편씩을 두꺼운 대학노트에 옮겨 적었다. 지금 돌이키건대 대입 전형에서 논술이 도입되기도 전이었으니, 아버지는 내게 1세대 NIE 교육을 시킨 것이다.
동아일보를 주로 읽던 고등학생이 지방지를 들춰 확인하는 정보란 고작 텔레비전 편성표와 동네 극장 상영작과 학교 관련 뉴스 확인이 다였다. 따분하고 갑갑하게만 느껴졌던 제주 섬 생활. 합법적인 가출 사유인 서울 지역 대학 진학만이 내 관심사였다.
지역 신문을 다시 돌아보게 된 것은 신문방송학을 전공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필요한 정보들을 접할 길이 그곳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군 제대 이후 반 년 동안 복학을 기다리던 난 지역 도서관 문화강좌와 아르바이트 관련 정보가 필요했다. 물론 전통적 개념의 지방지보다는 가로수 유의 생활정보지가 내 주요 정보원이었다. 이 시기에 비로소 난 지역 신문 읽는 재미에 눈을 뜰 수 있었다.
'모 기업 회장과 임직원 일동 몇 천만 원 전달' 정도가 중앙일간지에 오를 수 있는 내용이라면 같은 수해의연금 모금 기사더라도 지방지에는 '**동 개똥이 엄마 이만 원', '**초등학교 *학년 *반 김개똥 만오천 원'과 같은 내용이 심심치 않게 올랐다. 내가 아는 인물을 뉴스 속에서 만나는 것도 지역 신문을 읽는 재미였다.
생활 밀착형 정보는 가끔 엉뚱한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 휴일에 공부하러 도서관 간다며 집을 나섰던 동생 녀석이 지역 신문의 동네 축제 특집 편집판 위에서 즐거이 눈썰매를 타고 있을 줄이야. 지역 신문 카메라기자의 뷰 파인더에 떡하니 자신의 일탈 현장이 잡혔으니 부모님 앞에서 동생은 빼도박도 못할 처지가 돼야 했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동생은 지금 웃으면서 당시 일을 회상하곤 한다. 아직도 자신의 사진 밑에 박혀 있던 바이라인의 이름을 잊지 못한다는 게 동생의 이야기다.)
대학 졸업 뒤에도 여전히 타향에서 밥벌이(?)를 하는 내게 고향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은 바로 어머니다. 어머니와의 전화 통화 내용 중 상당수는 내 고향 친구 관련 소식들이다. 고향 친구들의 결혼 소식과 친구 부모님의 굳긴 소식들은 모두 어머니의 입을 통해 알게 되는 내용들이다. 지역 신문이 어머니의 주요 정보원이다. 이제 조부님은 지역 신문을 구독하지 않는다. 아흔을 바라보는 연세인 조부님으로부터 더 이상 지인들의 굳긴 소식을 듣기 싫다는 기세를 엿보게 된다. 그래도 한 때는 누구보다 열심히 지역 신문을 구독하던 분이 조부님이셨다. 화촉이나 굳긴 소식을 챙기는 건 정치인뿐만이 아니다.
고향을 떠나 타향에 사는 나도 가끔 인터넷을 통해 지역 뉴스를 접하곤 한다. 주소지까지 옮겼으니 지역 관심사는 더 이상 내 알 바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지역에서 펼쳐지는 정책들이 내 부모님과 조부모님, 외조모님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선 알아둬야 한다는 것이 내 입장이다. 또한 지금은 소식이 끊긴 고향 친구들 소식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하기 위해서라도 난 지역 뉴스를 챙겨 본다.
87년 민주화 이후 신생 언론사 숫자가 늘어났다. 지역 언론사 숫자도 마찬가지다. 제주일보만 존재하던 제주 지역에도 87년 이후 한라일보와 제민일보가 잇달아 창간했다. 지역 내 다양한 의견을 담보한다는 취지에서 다양한 지역 언론사가 존재한다는 건 긍정적이다. 지방자치제도의 부활이 지역 언론의 황금기로 이어질 거라던 예상은 지역 민방과 케이블 텔레비전 출범과 같은 신규 매체 도입과 지역 경제의 피폐로 한 때의 우스갯소리가 되어버렸다.
신입기자들을 골방에 가둬두고 특정 중앙일간지만 죽어라 읽히는 식의 수습 교육을 단행하는 지역 언론사가 있었다. 한 때는 지역 유력지로 경제적으로도 꽤나 풍족했던 신문사가 지금은 누적된 적자를 견뎌내는 것만도 신기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터넷과 유료방송이란 기술적 진보로 인해 지역 언론사의 가짓수와 매체도 다양해졌다. 하지만 다양해진 언론사 수만큼 다양한 시각을 찾아보기란 참 힘든 일이 됐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특별시와 광역시 기초의회 폐기론의 책임 일부는 지역 언론사에게 있다. (물론 메트로 단위에서는 구성원의 출신과 지역 경계 설정이 꽤나 어려운 일이다.)
지방 자치제도 부활 이후 1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여전히 중앙 바라기 형 정치 구조는 변하지 않았고 유통권력에 대한 지역 경제의 종속은 더욱 심화되었다. 집권 세력이 이야기하는 잃어버린 10년 동안 지역에서는 '지방'이 아닌 '지역'을 정립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진행됐었다. 지역민의 문화적 정체성을 엮어낼 수 있는 문화원형 발굴 사업은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 사이 지역축제들을 활황을 넘어 난립의 경지에 이르기도 했고 경제적 이해관계 속에 지역문화가 난항을 겪기도 했다. 지역 언론사가 지역 공동체 속에 뿌리 내리기 위해서는 결국 지역민의 총체적 삶의 모습인 지역문화를 담보해야 한다. 지역민의 삶에 밀착한 언론, 그것이 진정한 지역 언론사의 모습이다.
동아일보를 주로 읽던 고등학생이 지방지를 들춰 확인하는 정보란 고작 텔레비전 편성표와 동네 극장 상영작과 학교 관련 뉴스 확인이 다였다. 따분하고 갑갑하게만 느껴졌던 제주 섬 생활. 합법적인 가출 사유인 서울 지역 대학 진학만이 내 관심사였다.
지역 신문을 다시 돌아보게 된 것은 신문방송학을 전공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필요한 정보들을 접할 길이 그곳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군 제대 이후 반 년 동안 복학을 기다리던 난 지역 도서관 문화강좌와 아르바이트 관련 정보가 필요했다. 물론 전통적 개념의 지방지보다는 가로수 유의 생활정보지가 내 주요 정보원이었다. 이 시기에 비로소 난 지역 신문 읽는 재미에 눈을 뜰 수 있었다.
'모 기업 회장과 임직원 일동 몇 천만 원 전달' 정도가 중앙일간지에 오를 수 있는 내용이라면 같은 수해의연금 모금 기사더라도 지방지에는 '**동 개똥이 엄마 이만 원', '**초등학교 *학년 *반 김개똥 만오천 원'과 같은 내용이 심심치 않게 올랐다. 내가 아는 인물을 뉴스 속에서 만나는 것도 지역 신문을 읽는 재미였다.
생활 밀착형 정보는 가끔 엉뚱한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 휴일에 공부하러 도서관 간다며 집을 나섰던 동생 녀석이 지역 신문의 동네 축제 특집 편집판 위에서 즐거이 눈썰매를 타고 있을 줄이야. 지역 신문 카메라기자의 뷰 파인더에 떡하니 자신의 일탈 현장이 잡혔으니 부모님 앞에서 동생은 빼도박도 못할 처지가 돼야 했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동생은 지금 웃으면서 당시 일을 회상하곤 한다. 아직도 자신의 사진 밑에 박혀 있던 바이라인의 이름을 잊지 못한다는 게 동생의 이야기다.)
대학 졸업 뒤에도 여전히 타향에서 밥벌이(?)를 하는 내게 고향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은 바로 어머니다. 어머니와의 전화 통화 내용 중 상당수는 내 고향 친구 관련 소식들이다. 고향 친구들의 결혼 소식과 친구 부모님의 굳긴 소식들은 모두 어머니의 입을 통해 알게 되는 내용들이다. 지역 신문이 어머니의 주요 정보원이다. 이제 조부님은 지역 신문을 구독하지 않는다. 아흔을 바라보는 연세인 조부님으로부터 더 이상 지인들의 굳긴 소식을 듣기 싫다는 기세를 엿보게 된다. 그래도 한 때는 누구보다 열심히 지역 신문을 구독하던 분이 조부님이셨다. 화촉이나 굳긴 소식을 챙기는 건 정치인뿐만이 아니다.
고향을 떠나 타향에 사는 나도 가끔 인터넷을 통해 지역 뉴스를 접하곤 한다. 주소지까지 옮겼으니 지역 관심사는 더 이상 내 알 바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지역에서 펼쳐지는 정책들이 내 부모님과 조부모님, 외조모님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선 알아둬야 한다는 것이 내 입장이다. 또한 지금은 소식이 끊긴 고향 친구들 소식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하기 위해서라도 난 지역 뉴스를 챙겨 본다.
87년 민주화 이후 신생 언론사 숫자가 늘어났다. 지역 언론사 숫자도 마찬가지다. 제주일보만 존재하던 제주 지역에도 87년 이후 한라일보와 제민일보가 잇달아 창간했다. 지역 내 다양한 의견을 담보한다는 취지에서 다양한 지역 언론사가 존재한다는 건 긍정적이다. 지방자치제도의 부활이 지역 언론의 황금기로 이어질 거라던 예상은 지역 민방과 케이블 텔레비전 출범과 같은 신규 매체 도입과 지역 경제의 피폐로 한 때의 우스갯소리가 되어버렸다.
신입기자들을 골방에 가둬두고 특정 중앙일간지만 죽어라 읽히는 식의 수습 교육을 단행하는 지역 언론사가 있었다. 한 때는 지역 유력지로 경제적으로도 꽤나 풍족했던 신문사가 지금은 누적된 적자를 견뎌내는 것만도 신기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터넷과 유료방송이란 기술적 진보로 인해 지역 언론사의 가짓수와 매체도 다양해졌다. 하지만 다양해진 언론사 수만큼 다양한 시각을 찾아보기란 참 힘든 일이 됐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특별시와 광역시 기초의회 폐기론의 책임 일부는 지역 언론사에게 있다. (물론 메트로 단위에서는 구성원의 출신과 지역 경계 설정이 꽤나 어려운 일이다.)
지방 자치제도 부활 이후 1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여전히 중앙 바라기 형 정치 구조는 변하지 않았고 유통권력에 대한 지역 경제의 종속은 더욱 심화되었다. 집권 세력이 이야기하는 잃어버린 10년 동안 지역에서는 '지방'이 아닌 '지역'을 정립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진행됐었다. 지역민의 문화적 정체성을 엮어낼 수 있는 문화원형 발굴 사업은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 사이 지역축제들을 활황을 넘어 난립의 경지에 이르기도 했고 경제적 이해관계 속에 지역문화가 난항을 겪기도 했다. 지역 언론사가 지역 공동체 속에 뿌리 내리기 위해서는 결국 지역민의 총체적 삶의 모습인 지역문화를 담보해야 한다. 지역민의 삶에 밀착한 언론, 그것이 진정한 지역 언론사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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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님의 '지역신문이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은?'을 읽고 개인적 경험에 기반한 이야기 몇 줄 남김...
지역 언론과 지역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도 지역성을 재조직화할 수 있는 콘텐츠와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덧붙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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