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7.17 선물 by 망명객
  2. 2009.07.17 할아버지의 선물 by 망명객
  3. 2007.05.14 시집 by 망명객

선물

이미지 잡담 : 2010. 7. 17. 22:38


베트남에서 온 원유남 씨가 내게 준 선물.
흡연량을 줄이려는 마당에, 너무나 고마운(?) 선물임.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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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

할아버지의 선물

길위에서 : 2009. 7. 17. 14:15
할아버지께서 항암치료 차 서울을 찾으셨다. 지난 4월부터 서울 병원을 드나들던 할아버지를 숙부님들이 돌아가면서 간병하고 있었다. 어제, 3개월 만에 뵙는 할아버지는 맨머리를 드러내신 채 기력이 쇄한 암 환자의 모습 그대로였다. 숙부의 자가용 뒷자리에서 할아버지께 지난 3개월의 안위와 고향 소식을 묻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이나 늘 간만에 만난 피붙이를 대하는 건 똑같다. 타향 생활에 대한 걱정, 그 모든 건 단 한 마디에 녹아 있다.

"밥은 잘 챙겨먹고 다니냐?"

둘째 숙부와 할아버지 그리고 내가 밥상에 둘러 앉았다. 점심식사치곤 조금 부담스러운 안심구이가 상 위에 오른다. 불판 너머에 앉아 계신 할아버지의 모습이 숯 열기로 어른거린다. 평생을 농사로 버텨온 강골의 육신도 세월과 병 앞에선 무력하기만 하다. 습관은 지독하다. 쇄한 육신에도 고기 반에는 소주가 따라야 한다며 할아버지는 반주를 찾으셨다. 이미 숙부가 조용히 맥주컵에 소주와 사이다를 적당히 섞고 있었다. 몇 마디 이야기가 오고갔지만, 주제야 뭐 늙은 손자의 결혼과 취업에 관한 이야기가 대다수였다. 어른들의 이야기엔 그저 빙긋이 웃어넘기는 게 최선책이란 걸, 난 잘 안다.

하루 30여 분이 채 안 되는 할아버지의 항암치료를 위해 가족들은 병원 근처에 호텔방을 잡았다. 내게 주어진 임무는 해외출장 나가는 숙부를 대신해 할아버지 곁을 지키는 것. 인수인계를 끝낸 뒤 숙부는 급한 일 생기면 전화하라는 이야기를 남긴 채 호텔을 나섰고, 난 호텔방에서 텔레비전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머리가 커진 후, 할아버지와 단 둘이 오랜 시간을 보내는 건 처음 겪는 일이다. 할아버지의 50대 사진 속에는 늘 내가 있었지만, 부모님 분가 이후 할아버지와 단 둘이 보낸 시간은 극히 드물었다. 할머니와 단 둘이 지낸 시간에 비한다면 할아버지와 보낸 시간은 정말 기억의 어느 그늘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늘 말이 없는 건 할아버지나 아버지나 똑같다. 병원을 나설 때 구내서점에서 구입한 바둑잡지를 묵묵히 바라보시다 케이블 채널에서 방송하는 스모 경기를 재밌게 관람하시는 할아버지. 그 옆에서 몇 마디 질문을 던져보지만, 할아버지는 영 말씀이 없으셨다.

창문 밖에 어둠이 깔리고, 할아버지와 난 산책 겸 식사를 위해 호텔 문을 나섰다. "요 옆에 보니 이마트 있더라. 거기부터 들르자." 할아버지와 함께 이마트 쇼핑이라니. 몇 벌의 속옷과 몇 켤레의 양말이 할아버지 쇼핑 목록의 전부였다. 옷 몇 벌 보시더니 할아버지는 내게 필요한 거 있으면 골라보라고 말씀하셨지만, 나도 이미 할아버지의 용돈 사정을 알만 한 나이다. 쇼핑 뒤, 낯선 거리에서 실력 모를 음식을 드시고 싶지 않으신 할아버지는 다시 호텔로 돌아가자고 하셨다. 할아버지와 마주한 자리, 장어덮밥을 먹고 있으려니 할머니 표 된장국이 떠올랐다. "할아버지, 그래도 밥은 할머지가 챙겨주는 밥이 가장 맛있죠?" 음식을 머금은 할아버지는 진정성이 느껴지는 긍정으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셨다.

오늘 아침,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내가 사용한 침대 위에 어제 구입한 속옷과 양말이 놓여 있다. 내 사이즈보다 훨씬 큰 속옷과 신고 간 샌들이 무색한 양말. 할아버지께 갖고가 쓰시라고 말씀 드리니, 그냥 챙겨두라는 응답만이 돌아온다. 이른 아침부터 다시 병원을 찾았다. 항암치료실 앞에서 난 할아버지 짐을 지키고 있었다. 항암치료를 마친 할아버지와 함께 공항버스 정류장 앞에 섰다. 굳이 공항까지 따라올 필요 없다며 손사레 치는 할아버지께서는 내게 수표를 쥐어줬다. 할아버지는 못내 손자에게 미안하셨던 게다. 할아버지를 태운 버스가 떠났다. 손에 쥔 수표에는 모 은행 인천지점 직인이 찍혀 있었다. 이는 인천에 사는 둘째 숙부가 드린 할아버지 용돈이었을 게 틀림없다.

할아버지께서 쥐어준 용돈으로 몇 권의 책을 샀다. 책 속표지 위에 할아버지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담아 몇 글자 끼적였다.

'2009년 7월 17일, 내 치수보다 큰 속옷과 양말 그리고 이 책은 할아버지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다음주 월요일에도 할아버지는 치료를 위해 다시 서울을 찾으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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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

시집

길위에서 : 2007. 5. 14. 00:04

어느덧 시인은 아닐지언정 시인이 되어있어야 할 나이가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연역이든 귀납이든 논리적 인과관계의 틀거리에 맞춰진 삶은 가끔 숨막히듯 사람을 죄어오곤 합니다. 그렇게 생활은 운문보다 산문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가끔은 시집을 들추었고 장마다 쏟아지는 시어들 속에서 삶의 여백을 찾곤 했었습니다.

 

여러분의 책장에는 어떤 시집이 꽂혀 있나요?

소설과 달리 시집은 손때가 타야 재맛이죠.

 

특히 누군가에게 선물받은 시집이라면 그 마음은 더욱 아련합니다.

한 권의 책보다 한 병의 소주가 아쉽던 시절.

단돈 오천 원 미만의 선물로 시집만한 선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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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네가 누구보다도 더 많이 애쓴 것 같다. 도와준다는 말이 맞을지는 모르지만 암튼 그렇게도 내가 잘못했다고 본다~. 달력은 3월로 가기위해 분주한데 이번 겨울은 유난히도 길고 아프다. 그냥 많이 힘들었거든. 그래서인지 평소에 별로 좋아한 적 없는 봄이 이제는 무척이나 기다려진다. 언제 또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너 열심히 해. (당분간 학원에서 볼테지만...) 급하게 시집을 골라서 잘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넘기다가 맘에 드는 구절이 있더라. '어둠 속에 마음을 가다듬으라, 장거리 원정에서는 새벽 폭풍에 대비하거니와 층층이 빛은 기대하지 말라' 항상 네가 삶과의 투쟁이 아닌 공존으로 살아가길 바란다. 그리고 고생 많았다. 안녕. 96. 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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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기다란 해변으로,

망치 맞은 만(灣)의 발치로 돌아오니

대서양 천둥의 세속적인

힘만이 보일 뿐.

 

나는 신비할 것 없는

아이슬랜드의,

그린랜드의 나약한 식민지의

초대를 받고, 그리고 문득

 

저들 유명한 침략자,

녹슬어가는 자기네 기다란 검으로

잣대질당하며

오크니와 더블린에 누워 있는 자들이,

 

돌로 지은 배 단단한 선창에

있는 자들이,

녹은 개천 자갈밭에서

도끼질하고 반짝인 자들이

 

바다에 소리 죽었어도

폭력과 직관으로 되살아나

내게 경고하는 목소리임을 깨닫는다 :

기다란 배의 헤엄치는 혀가

 

뒷새김을 남겨 놓았다 -

말하기를 토르의 망치는

지리와 무역에 따라 휘둘렸고,

아둔한 짝짓기와 복수,

 

증오와 온갖 것의 등 뒤에는

거짓과 여자가 있고,

지침이 평화로 자리잡고,

기억은 쏟은 피를 배양했노라.

 

말하기를, "말(言)의 보고에

눕고, 주름 잡힌

네 머릿속 사리와

번득이는 기지에 파고들라,

 

어둠 속에 마음을 가다듬으라.

장거리 원정에서는

새벽 폭풍에 대비하거니와

층층이 빛은 기대하지 말라.

 

고드름 속 기포처럼

네 눈을 틔워 두고,

네 손에 닿았던

진짜 보물이 무엇이었나 하는 느낌을 믿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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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대입을 준비해야 할 고3으로 넘어가던 시절에 선물받은 세이머스 히니의 "한 자연주의자의 죽음".

글쎄요, 언제 또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던 메세지처럼 이 책을 받은 이후 책을 건네던 친구를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교보문고의 문학코너에서 모 동인지에 실린 친구의 시를 통해 아직 글을 쓰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삶과의 투쟁이 아닌 공존으로 살아가길 빈다는 친구의 이야기처럼 우린 모두 공존을 위해 살아가죠. 현실은 늘 힘겨운 투쟁의 연속일지언정 시의 여백은 공존의 꿈을 품곤 합니다.

 

특별히 힘들 게 없었던 고3 생활.

그래도 수험생, 고3이란 단어가 뿜어내는 긴장감에 움츠러들 때, 세이머스 히니의 시집은 그때의 기억을 고스란이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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