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97년 초봄, 명동성당에선 삼미특수강 노조원들이 장기간 농성 중이었다. 그 해 연초에는 정국을 뜨겁게 달궜던 한보철강 사태와 함께 삼미특수강 부도사태가 있었다. 아직 IMF는 그 기미조차 느낄 수 없었던 시기였다. 난 삼미특수강 노조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선배 몇몇과 함께 명동성당을 찾았다. 성당에서 농성할 정도로 절박했던 그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노조원들은 학생인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즉석에서 노조 측의 브리핑이 준비됐다. 삼삼오오 찾아간 우리 일행과 인사를 나누던 노조원들은 '신문방송학'을 전공한다는 나와 선배에게 농을 건냈다.

"미래의 거짓말쟁이들이 여기 오셨네~"


#2.

어느 박사 선배는 늘 내게 오래 공부할 것을 권하곤 했다. 그의 이야기엔 늘 여러 가지 이유들이 붙곤 했다. "물질적인 재화는 잃어버릴 수 있지만, 네 머리에 담긴 지식은 그 누구도 뺐어갈 수 없다"는 고답적인 표현부터, "세상을 바꾸고 싶으면 박사 라이센스 정돈 가지고 있어야 쉽게 다가설 수 있다"는 식의 학벌주의적 표현까지... 그러나 아직도 귀에 맴도는 그의 표현은 따로 있다.

"야, 노조 만든다고 다 되는 줄 알어? 결국 머리에 든 놈들이 이기는 거야. 그런 놈들이 모이면 무시할 수 없어. 언론노조도 그렇고 대학교직원노조 봐라. 대가리에 든 놈들은 쉽게 못 쳐."


#3.

치열한 삶을 살아온 선배 S. 독립영화에 뜻을 뒀던 그는 러시아 유학을 포기한 뒤 노동전문 매체의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는 곧 독립PD로의 삶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케이블채널을 시작으로 지상파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까지. 결혼은 커녕 오로지 일만 바라보고 살아온 사람이 K다. 그가 지상파에 입성했을 땐 정말 내 일처럼 기뻤다. 그도 비정규직 2년을 채우곤 다시 프로덕션으로 돌아갔다. 휴대전화기 너머 그의 음성에는 섭섭함이 남아 있었다.

"야, 이게 업계 관행이야. 2년 일하고 나갔다가 다시 돌아가고... 성질머리 더럽고 실력없는 인하우스 애들(방송국 정규직) 밑에서 벗어난 게 오히려 시원하다."


#4.

경제전문지 기자 P. 술자리에서 마주한 그는 '쌍용'이란 두 글자에 미안하단 이야기만 되뇌일 뿐이었다. 월급받는 놈이 어쩔 수 있냐, 난 P의 술잔에 내 술잔을 부딪힐 뿐이었다.


#5.

지금 내 옆의 동지가 한순간에 적이 되는 순간이 있다. 적이 분명한 적일 때, 그것은 결코 위험함 일이 아니다. 그러나, 동지인지 적인지 분간이 안 될 때, 얘기는 심각해진다. 서로가 의도하지 않았어도 그런 순간이 올 때, 과연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될까? 그걸 알 수 있다면 우린 이미 프로다.

지금 내 옆의 동지가 한순간에 적이 되는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적은 언제든 다시 동지가 될 수 있다. 그건 별로 오려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이때 기대는 금물이다. 그리고, 진짜 중요한 건 지금 그 상대가 적이다, 동지다 쉽게 단정 짓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한 번쯤은 진지하게 상대가 아닌 자신에게 물어볼 일이다. 나는 누구의 적이었던 적은 없는지.

- 드라마 <그들의 사는 세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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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TV, 인터넷포털, 위성방송, DMB, 와이브로, IPTV, 기술의 발전에 따라 지난 15년 동안 미디어 환경은 엄청난 변화를 겪었지만, 정작 이를 이용하고 공부하는 내가 행복한 건 아니다. 이해당사자들의 입장에선 이만한 이야깃거리도 없겠지만, '공익'을 내세운 입장이건 '발전'을 내세운 입장이건 답답하긴 매한가지다. 기업의 준 독재가 만들어 낸 미디어 난개발의 시대, 몰염치한 산업주의자들의 이야기에는 반성이 없고 '공익'주의자들에겐 미래가 없어 보인다. 대안없는 양비론이라 비판할 사람들이 있겠지만, 내 대답은 김규항의 '그들의 싸움'으로 대신한다.

그리고 내 선택을 묻는 사람들에겐, 97년 대선 당시 '일어나라 코리아'란 얼토당토 않은 슬로건을 비판하면서도 이를 찍을 수밖에 없었다는 애매한 비판적 지지 정도라고 해두자. 어느 진영에게? 그래도 염치 있는 이들에게... 문제는 염치 있는 진영도 자정 좀 하라는 점이다. 매번 '공익'을 외치지만, 이것도 한두 번이다. 염치 있다 해서 주판알 튕기는 소리가 묻히는 건 아니니까. 물론 대놓고 주판알 튕기고 있을 녀석들보단 좀 낫지만, 언제나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자의 슬픔을 염치 좀 있는 너희들이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 잘난 언론계 선후배님들의 카르텔, 그 안에서 말이다.



Posted by 망명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