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2.09 CCTV에 맡겨진 치안 공권력 by 망명객
  2. 2009.01.21 명동성당에서 2 by 망명객
  3. 2009.01.20 용산 철거민 사망 소식에 대한 단상 6 by 망명객
한겨레21 박용현 편집장은 '두 가지 죽음'이란 칼럼에서 용산참사와 강호순 사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는 무고한 죽음이란 결과를 이 두 사건의 공통점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권력의 사각지대에서 벌어진 죽음과 그 치안 공권력의 능동적 작전과정 중 발생한 죽음이란 점을 차이점으로 꼽고 있죠.

이 두 가지 죽음을 다루는 언론의 시선도 크게 다르더군요. 아무래도 강호순 사건에 비해 용산참사가 가해 책임을 두고 더욱 복잡한 양상을 보이는 게 당연하겠죠. 아울러 공권력에 대한 보도 태도도 극명히 대비됩니다. 용산참사가 김석기 경찰창장 내정자의 책임 소재 문제에 집중된 반면 강호순 사건과 관련해선 담당 관할서 형사들의 끈질긴 추적과 프로파일러에 관한 내용이 집중 부각되고 있습니다.

아울러 우린 이 두 죽음에서 뉴스 보도가 갖고 있는 한계점들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우선 MBC PD수첩을 통해서야 비로소 부각된 용역직원의 작전 투입 논란이 그렇습니다(관련 포스팅). 모든 방송국이 용산사태 관련 동영상을 갖고 있었지만, 그 안에서 용역직원들이 직접적으로 작전에 투입된 사실을 꼬집은 건 PD저널리즘이었습니다.

  Warning Over UKs Use Of Surveillance Technology

다른 하나는 CCTV를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강호순을 붙잡을 수 있었던 건 CCTV의 도움이었습니다. 이미 몇 차례에 걸쳐 살인사건이 벌어졌지만 치안 공권력의 사각은 그만큼 넓었습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CCTV 및 보안 관련 종목을 주목하라는 증권가의 이야기가 보도되고 있습니다. 치안 공권력의 사각 지대가 사기업의 성장을 돕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더군요. 아울러 CCTV 수를 늘리겠다는 경찰청의 발표도 이어집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문제 제기성 보도는 눈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더군요.

이미 CCTV 설치를 두고 행정편의와 주민감시란 논란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끔찍한 사건 앞에선 감히 CCTV 설치 확대안에 대해 반대 의견을 펼칠 용기가 나지 않더군요. 저널리즘 학자들이 이야기한 '침묵의 나선' 이론은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 겁니다.

글쎄요, CCTV가 용산의 망루 안에도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이 또한 용산참사의 결정적 단서가 됐을 겁니다.  이제 치안 공권력이 우리 모두를 지켜줄 수 없다는 건 확실합니다. 더 많은 희생자가 나기 전에 강호순을 붙잡을 수 있었던 건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이 무고히 죽기 전에 그를 붙잡지 못한 건 단순히 그가 지능적인 사이코패스였기 때문일까요.

이제 우리는 범죄의 유령에 맞서 CCTV를 설치하고 호신용 무기를 소지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부담해야 합니다. 국가의 무능은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죠. 호신용 무기요? 어쩌면 호신용 무기로 화염병을 파는 국가가 될지도 모르겠군요. 아울러 사설 방범업체와 함께 용역직원이 늘어나는 것도 일자리 창출이라 우기는 국가가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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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

명동성당에서

길위에서 : 2009. 1. 21. 02:22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온 후배에게 대뜸 "술 먹자고 전화했냐?"고 물었더니 용산 추모집회에 함께 가자고 전화했단다. 술부터 찾은 내 경솔한 입술이 부끄러워 금일은 힘들겠노라는 답을 후배에게 들려줬다. 막상 전화를 끊고 나니 산적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말도 안 되는 사태가, 살인이나 다름없는 이 부끄러운 사건을 그냥 묻어둘 순 없었던 것 같다. 내 앞가림도 힘들지만 그래도, 라는 생각으로 급한 일부터 마무리 짓고 가방을 쌌다.

용산의 집회 참가자들이 행진을 시작했단다. 추모집회에 참석하겠다는 내 연락에 후배가 들려준 이야기다. 후배와 종각에서 만나 명동성당으로 향했다. 을지로입구역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경찰병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 멀리 명동성당 입구에서 집회 참석자들의 깃발이 보였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또다른 후배 한 명이 집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고성이 들렸다.

"대학생들이 앞에 서야지,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아저씨 앞에 나서면 다쳐요!"

"119를 불러주세요!"
 
대오의 뒤에선 작은 실갱이가 벌어졌고 누군가 다친 사람을 나르고 있었다. 대오의 앞에선 고함과 구호 속에서 투석전이 벌어졌다.

"살인정권 물러가라!"

"이명박은 물러가라!"

거리 구석의 누군가는 보도블럭을 깼고, 거리 복판의 누군가는 경찰을 향해 돌을 던졌다. 그리고 그 한 켠에선 연신 셔터를 누르거나 상황을 생중계하는 이들이 있었다. 깃발과 고함, 구호와 돌맹이가 난무하는 거리에서 난 어지럼증을 느꼈다.

바로 그 곁엔 하늘을 찌릇 듯한 명동성당이 서있다. 어둠에 묻힌 성당의 첨탑 뒤로 남산타워가 빛난다. 그 순간 원근의 법칙은 뭉개졌다. 남산타워가 명동성당보다 커보였다. 성당 건물 아래 성모상 앞, 누군가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성모상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선 다친 사람에 대한 응급처치가 이뤄지고 있었다.

명동성당을 뒤로 하고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피곤했다. 'PRESS'가 찍힌 방석모를 세 개나 든 청년이 내가 내려온 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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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

지난 97년, 대학 신입생이던 나를 하숙방에서 깨운 건 근처 지역 철거대책위원회에서 울리던 민중가요였다. 아침 7시마다 울리던 그 노랫소리를 기상곡 삼아 하루를 열곤 했다. 그 해, 행당동에선 용역과 철거민의 거친 싸움이 있었다. 용역에 의한 성폭행 사실이 공공연한 사실로 거리의 유인물을 채우고 있었다. 전농동에선 철거민과 용역과의 싸움에서 한 사람이 죽어야만 했다.


철거촌이 행당동과 전농동에만 있었던 건 아니다. 지금은 대단위 아파트 건물이 웅장하게 들어선 금호동 일대가 모두 철거촌이었다. 종암동과 봉천동, 북가좌동뿐만 아니라 수원 권선지구란 지명도 기억의 끝에서 그 존재를 드러낸다. 대학생 농활이 농민학생연대활동에서 농촌봉사활동으로 읽혀가던 무렵, 빈민학생연대활동의 준말인 빈활은 늘 긴장감과 폭력의 그늘 아래 있던 활동이었다. 한 겨울의 추위 속에 순번을 정해 밤새 규찰을 돌고, 지역 관공서 앞 아스팔트 위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언제인진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동절기 강제철거를 금한다는 행정 명령이 있었던 것도 같다.

지난 세기말의 이야기를 꺼냈다. “옛 생각 나지 않냐?” 용산 철거민 5명의 사망 소식을 인터넷으로 확인할 즈음 옛 선배가 보낸 문자 한 줄은 추억으로 곱씹기엔 너무나 아픈 기억을 환기시킨다. 세기말에도 소수였지만 여전히 소수의 대학생들이 빈활을 수행하고 있다. 그리고 동절기에도 강제철거가 자행된다. ‘뉴타운’이란 이름은 철거투쟁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는 사실. 폭력의 세기는 책 속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거리 위에서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철거민 5분의 명복을 빈다.


Posted by 망명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