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의 불화, 이명박식 노변담화
MB “라디오로 정례적 국정홍보 하겠다” (한겨레, 20080926)
다매체 다채널 시대의 국정홍보 전략은?
미국발 경제 먹구름과 중국발 먹거리 우려 속,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국민들과 대화하겠노라고 이명박 대통령이 나섰다. 지난 9월 9일 방송된 국민과의 대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이명박 대통령이 라디오를 통해 단발성 행사가 아닌 정기적으로 국민들에게 국정을 홍보하겠다고 한다.
아직 채 백 년이 되지 않은 미디어 효과 연구의 역사를 살펴보면 대효과에서 소효과 다시 대효과(중효과)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탄환이론이나 피하주사이론으로 지칭되는 초기 미디어 대효과 이론의 대표 사례로는 대공황 시기 루즈벨트 대통령의 노변담화와 CBS의 War of the Worlds를 통한 집단 공황사태를 꼽을 수 있다. 초기 미디어 효과 연구가 이루어질 당시는 영화, 라디오, 인쇄매체가 주요 커뮤니케이션 채널로 사용되었고 특히 라디오의 전성기로 기록된 시기였다.
시간은 흘러, 지금 우리는 '다매체 다채널 시대'란 수식어가 현실로 구현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디지털과 컨버전스를 키워드로 삼은 미디어의 진화는 지금 이 시간에도 이어지고 있다. 신종 매체의 출현뿐만 아니라 매체간 결합 양태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이는 이용자의 선택성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미디어 발전의 동인인 광고계에선 미디어 환경의 변화 방향에 발맞춰 '미디어플래너'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이는 바꿔 말하면 홍보를 위한 매체 전략에서 고려해야 할 변수가 다양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미디어 환경 속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국정홍보 채널로 선택한 게 굳이 라디오라는 사실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청와대란 시골에서 라디오 스타를 꿈꾸는 게 아니라면 굳이 라디오를 선택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다매체 환경에서 미디어 이용자들이 어떻게 매체를 조합해 사용하는지를 분석한 최근 연구(강남준, 이종영, 이혜미 (2008). 군집분석 방법을 이용한 미디어 레퍼토리 유형분석. 한국방송학보, 22-2.)를 살펴보면 여러 매체조합 유형 중 라디오-신문 중심 이용집단은 40세 이상의 중년층 특성을 보이며 미혼보다는 기혼의 비율이 높았으며 학력은 상대적으로 고등학교 졸업 이하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들의 직업군은 전체적으로 자영업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고 소득 면에서는 2백만 원 이하의 저소득층이 주를 이루었다. 물론 이 연구는 전체 다매체 환경 속에서의 매체 이용 동향이기에 라디오만이 지닌 가능성을 충분히 살피지는 못했다는 한계를 지닌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소통을 위해선 일개 매체가 아닌 좀 더 포괄적인 매체전략을 이용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왜 하필 공영방송인가?
여기에는 또다른 문제가 더 걸쳐 있다. 바로 공영방송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홍보가 직접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관련 기사를 검색해 보니, 미국 부시 대통령도 현재 매주 3분씩 라디오 방송을 하고 있다는 설명이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홍보가 공영방송 채널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에 대한 반발을 의식한 부가 설명인 듯 하다. 이는 어쩌면 그렇게 좋아하는 세계적 추세라는 수식어를 대신한 설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씨앗도 토질을 고려해 뿌려야 하듯, 미국과 우리나라의 공영방송 토양이 다른 것을 고려하지 않은 점을 지적해야 한다. 굳건한 상업방송의 토대 위에 놓인 미국 방송산업계에서 기부금에 의존하는 지역 공영방송국은 직접 제작 프로그램보다는 구입하거나 제공받은 프로그램을 수용자에게 전달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의 방송산업은 공영성의 토대 위에 놓여 있으며 공영방송국이 전국 송출망을 지니고 있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러한 시스템을 통해 대통령이 직접 국정을 홍보한다는 발상 자체는 정부의 공영방송에 대한 시각 자체가 국영에 가까움을 반증한다. 그렇지 않아도 방송장악이니 언론장악이니 시끄러운 이때, 굳이 더 기름을 들이붇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통령의 국정홍보라면 공영성이 충분한 게 아니냐는 반문이 있을 수도 있다. 대통령 특별 대담이 방송되는 것과 같은 이치 아니겠냐는 이야기다. 하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먼저 방송을 결정하는 주체의 문제다. 방송국이 아니라 청와대에서 직접 방송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건 엄연한 방송 독립성 훼손이다. 내용은 둘째로 치더라도 편성의 문제까지 청와대가 직접 개입하는 꼴이 된다. 이런 우려를 의식해서인지, 관련 기사에서는 야당의 반론권도 인정해주겠다는 부연 설명이 붙었다. 사실에 가치가 더해진 뉴스 형식이 아니라 굳이 다이랙트로 국민 앞에 서겠다는 건 오히려 프레스 프랜들리에 역행하는 게 아닐까. 차라리 KTV를 확대하고 KTV 시청률을 올릴 생각을 하는 게 더 괜찮은 방법이 아닐까. 아니, 차라리 대통령의 입을 막는 게 더 효과적인 국정홍보와 대정부 이미지 상승을 위한 비책일지도 모른다.
외모가 안 된다고 목소리가 먹힐까?
조금 옆길로 새보자. 대통령이 누누히 밝혔던 외모 콤플렉스 때문에 라디오를 선택한 게 아닐까, 하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의 비주얼이나 그 음성이나 거기가 거기다. 겉모습으로 판단해서 좀 미안하지만, '공해'라는 표현보단 덜 과격하니 이해해주길 바란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노변담화는 뉴딜정책으로 대공황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의지에서 나온 국민 설득의 산물이었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대통령답게 루즈벨트의 아우라를 빌려 현재의 난점들을 타계해 나가겠다는 계산일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우리 앞에 닥쳐올 난제가 대공황만큼 혼돈의 시대가 아닐지 걱정스럽다.
- 아래는 웃자고 써보는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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