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희 작/정세혁 연출/극단 화살표
대학로 알과핵 소극장
2004/12/29
이번달엔 대학로를 두 번이나 찾게 되었다. 이벤트 운이 지지리도 없는 내게 어느 친구의 연말 선물(?)로 연극표 두 장이 생긴 것이다.
연극 제목은 '보고 싶습니다'. 제목을 수식하는 이야기는 '퓨전 신파'란다. 대강의 짐작으로는 여러 요소들이 적당히 버무려진 눈물 질질 짤만한 이야기이겠거니…….
조금은 현기증이 날 것만 같은 트로트 음악이 깔리며 극이 시작한다. 어두운 조명과 느릿하게 감정을 적시는 트로트 가락은 담배 연기, 풀린 눈 그리고 무기력한 가난의 냄새를 풍긴다. 어릴 적 꼬불꼬불 산길을 힘들게 올라가던 시외버스 안에서 느끼던 차멀미가객석에 앉아있는 내 긴장의 촉수를 스멀스멀 건드리고, 난 그렇게 소극장 구석 벽에 기대 무대 위를 응시한다.
'신파'의 절대적 축은 '가난'이다.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이야기를 굳이 하지 않더라도 경제적인 무력과 외화되어 나타나는 욕망의 충돌은 인간 내면의 도덕률을 구석 끝까지 몰고 가는 긴장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달동네'라는 공간적 배경은 이런 '가난'이 일으킬 긴장의 극적 장소.
'가난'에 힘을 실어주는 또다른 요소는 '추억' 혹은 '향수'겠지. '후레쉬민트'와 '박카스', 그래 내게도 '후레쉬민트'와 '박카스'는 현재보단 외할머니의 방구석에서 찾아볼 수 있던 탈색된 추억의 상품이다.
앞 못보는 주인공의 하얀 울 스웨터는 피 냄새를 사이다 냄새라 믿던 순수함의 표상. 순수함이 있으면 그에 반해 적당히 세상에 물든 영혼과 '달동네'를 탈출하려는 젊은이들의 꿈이 배치된다.
적당히 잘 만들어진 '신파극'. 그래 모든 요소들이 잘 버무려져 극의 갈등은 고조되고 눈물샘을 자극하는 결말로 이어진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울기만 하는 건 아니다. 조연들의 연기는 결말 전까지 내 웃음보를 자극했고, 객석에서 터져나오는 웃음은 비극적 결말을 더욱 시리게 만들었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다시 점퍼의 지퍼를 채우며 소극장을 나서는 길에 하얀 울 스웨터의 주인공의 대사가 머릿속에 메아리친다.
'앞 못 보는 대신 냄새를 잘 맡아요. 하나를 잃으면 다른 하나를 얻게 된다고 하잖아요.'
그래, 모든 걸 가지려는 건 욕심이다.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잃을 수밖에 없다. 미련은 삶의 걸림돌. 또다시 길거리에 넘어질 수는 없잖은가.
그래도 누구나 보고 싶은 사람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대학로 알과핵 소극장
2004/12/29
이번달엔 대학로를 두 번이나 찾게 되었다. 이벤트 운이 지지리도 없는 내게 어느 친구의 연말 선물(?)로 연극표 두 장이 생긴 것이다.
연극 제목은 '보고 싶습니다'. 제목을 수식하는 이야기는 '퓨전 신파'란다. 대강의 짐작으로는 여러 요소들이 적당히 버무려진 눈물 질질 짤만한 이야기이겠거니…….
조금은 현기증이 날 것만 같은 트로트 음악이 깔리며 극이 시작한다. 어두운 조명과 느릿하게 감정을 적시는 트로트 가락은 담배 연기, 풀린 눈 그리고 무기력한 가난의 냄새를 풍긴다. 어릴 적 꼬불꼬불 산길을 힘들게 올라가던 시외버스 안에서 느끼던 차멀미가객석에 앉아있는 내 긴장의 촉수를 스멀스멀 건드리고, 난 그렇게 소극장 구석 벽에 기대 무대 위를 응시한다.
'신파'의 절대적 축은 '가난'이다.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이야기를 굳이 하지 않더라도 경제적인 무력과 외화되어 나타나는 욕망의 충돌은 인간 내면의 도덕률을 구석 끝까지 몰고 가는 긴장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달동네'라는 공간적 배경은 이런 '가난'이 일으킬 긴장의 극적 장소.
'가난'에 힘을 실어주는 또다른 요소는 '추억' 혹은 '향수'겠지. '후레쉬민트'와 '박카스', 그래 내게도 '후레쉬민트'와 '박카스'는 현재보단 외할머니의 방구석에서 찾아볼 수 있던 탈색된 추억의 상품이다.
앞 못보는 주인공의 하얀 울 스웨터는 피 냄새를 사이다 냄새라 믿던 순수함의 표상. 순수함이 있으면 그에 반해 적당히 세상에 물든 영혼과 '달동네'를 탈출하려는 젊은이들의 꿈이 배치된다.
적당히 잘 만들어진 '신파극'. 그래 모든 요소들이 잘 버무려져 극의 갈등은 고조되고 눈물샘을 자극하는 결말로 이어진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울기만 하는 건 아니다. 조연들의 연기는 결말 전까지 내 웃음보를 자극했고, 객석에서 터져나오는 웃음은 비극적 결말을 더욱 시리게 만들었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다시 점퍼의 지퍼를 채우며 소극장을 나서는 길에 하얀 울 스웨터의 주인공의 대사가 머릿속에 메아리친다.
'앞 못 보는 대신 냄새를 잘 맡아요. 하나를 잃으면 다른 하나를 얻게 된다고 하잖아요.'
그래, 모든 걸 가지려는 건 욕심이다.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잃을 수밖에 없다. 미련은 삶의 걸림돌. 또다시 길거리에 넘어질 수는 없잖은가.
그래도 누구나 보고 싶은 사람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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