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난 대학의 잘난 구호들...
'세계화'를 부르짖다가 삼간초가 태운 게 김영삼 대통령 시절이었다.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어느 보수 인사가 영어 공용화론을 떠들기 시작한 것도 그 시절이었다. 9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토익 800점 대는 신의 영역이었다. 토익 800점, 현재 대학생들에게 이는 그저 보통의 점수대일 뿐이다.
다 탄 삼간초가를 다시 세우느라 빈 곳간을 부둥켜 안고 노동 유연화와 친기업 정책을 펼친 게 김대중 정부다. 어려운 시기였지만 정보기술 분야 벤처 호황이 대졸자를 여럿 구제했다. 물론 걔 중 여럿 망하기도 했다만, 내 주변 지인들을 살펴봤을 때 취업이 늦어지면 늦어졌지, 취업을 포기하거나 못한 이들이 발생하는 불상사는 없었다.
세계적 대학으로의 성장은 등록금을 바탕으로...
대학 등록금이 물가 인상률보다 앞서 오르기 시작한 건, 김대중 정부나 김영삼 정부나 다를 게 없었다. 이후 참여정부 시절이라 해서 다를 건 없었다. 기업들이 어렵단 소리는 들어봤지만 그 어렵던 국제구제금융(IMF) 시절에도 대학이 어렵단 이야긴 들어본 적 없다.
등록금이 오를수록, 대학 건물 내외장재로 쓰이는 대리석이 늘어났다. "깻잎 팔아 학교 왔다"고 외치던 등록금 인상 반대 투쟁은 연례행사와 같았으나, 어느 순간부터 그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정작 '깻잎 팔아 자식 학교 보낸 부모들이 줄어든 것'이라는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마저 지금은 허망하게 들릴 뿐이다. 개인의 경쟁력이 취업 당락을 좌우하는 시기가 도래하면서 등록금 투쟁은 과거의 화석이 되어버렸다.
대학 경쟁력이 곧 취업률이 되어버린 세상. 대학 교육은 그 스스로 잣대를 마련하지 못한 채 기업과 관료들의 손에 맡겨졌다. 그렇게 탄생한 말이 '실용인재'다. 지리멸렬한 학생운동도 자취를 감춘 캠퍼스. 오늘도 우리의 '실용인재'들은 각종 자격시험과 전공 공부에 몰두하기도 바쁘다. 토익, 텝스, 오픽, 한자능력검정시험, 한국사시험, 한국어능력검정 등 지난 10년 사이 새로이 늘어난 자격 시험은 그 수를 헤아리기조차 아득하다. 대학 등록금 외 각종 자격 시험 응시비조차 빠듯한 이들에겐 그저 아픈 현실일 뿐이다.
교육기관으로서의 대학은 그 본분을 장삿속으로 이용하고 있다. 애초 고등교육기관을 사립재단이란 형태로 인정한 것 자체가 문제였다. 교육 재원을 민간에 의지했던 게 현 상황을 낳은 근본 원인일 터. 대학의 기업화가 공공의 안녕에 미칠 악영향은 확연해 보인다. 말 그대로 '개천에서 용' 나는 시절은 다 간 것.
조삼모사 대학교육 정책, 입학사정관 제도는?
조삼모사격 국가 교육 정책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10여 년 전 국가 주도로 밀어붙이던 학부제의 결론은 결국 각 대학 경쟁력을 위한 학과제로의 복귀일 뿐이다. MB정부 이후 열풍처럼 밀어닥친 '입학사정관 제도'의 앞날도 그리 밝아보이는 건 아니다. 어머니의 정보력이 자식 대입 당락을 좌우한다는 사교육계의 구호처럼 과외활동에도 정보력과 물적 기반이 뒷받침돼야 한다. 정책입안과 돈을 쥔 교육 관료들의 발상을 뿌리칠 수 있는 대학이 몇 군데나 될까?
교육관료들의 발상이 입학사정관이란 새로운 직업을 탄생시켰다. 과연 그들이 옥석을 가려낼 수 있을까? 전문성이 담보돼야 할 입학사정관들이 고용 형태는? 입학사정관으로 취업한 내 주변 후배들의 고용 형태는 계약직이 대부분이다. 2년 후 내 후배들의 앞날이 걱정스러운 건 이 때문이다. 차기 정부의 정책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대학으로선, 입학사정관이란 정책적 직업군을 정규직으로 고용할 리 만무하다.
해외 사례와 언어의 도입은 신중하게 우리의 언어로
어느 정책 토론회든 쉽사리 듣게 되는 게 해외 사례다. 사례는 사례로서 참고자료일 뿐이다. 학과제로 회귀하는 학부제도 그 잘난 미국식 교육의 전형이었다. 학부제가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선, 학생 개개인의 성향과 맞춤 전공에 따른 학사행정적 지원이 필수다. 다중전공을 선택한 학생에게 양 전공 필수 수업 시간이 겹쳐져선 안 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전공이수학점을 대폭 줄였으나, 한정된 수업 개설은 학생의 선택권을 쉽사리 제한한다.
아, 기업체에서 요구하는 인재상은 또 다르다. 기업은 멀티플레이어보다 전문성을 학생들에게 요구한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나 협업 능력, 언어구사력은 필수다. 고로 인사담당자들이 대학에 요구하는 건 전문적인 훈련이다. 입사 후 재교육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게 기업측의 논리다.
결국 대학은 교육관료와 실질적 수요자인 기업측의 요구에 쉽사리 자기 잣대를 내줄 수밖에 없다. 니들 맘대로 하세요. 그게 각 대학들의 심정 아닐까. 대교협이 포기한 대학평가에 올해부터 조선일보가 뛰어들었다. 교육관료뿐만 아니라 산업자원부, 지식경제부에서 주관하는 국책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해서 대학은 다시 자기 잣대를 조정해야 한다.
아, 학생들의 등록금을 제외하곤 마땅한 돈줄 없는 대학으로선 간도 내놓고 쓸개도 내놔야 하는 세상은 시련의 연속일 뿐이다. 여기에 구세주가 등장했다. 바로 유학생이 그들이다. 세계적 대학으로 성장하겠노라는 야심찬 우리 대학들의 기획은 학생들의 다국적화에 맞춰졌다. 토플, 토익 점수로 대입 시험을 대체하던 재외국민 특별전형만으론 성이 안 찼는지 우리 대학들은 대규모 유학생 유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안하지만, 현재 우리 대학들은 국제화가 아니라 중화를 꾀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특정 지역 대학은 중국인 유학생 없이는 학교 운영이 힘들다는 이야기까지 들릴까.
캠퍼스의 중화, 아니 좋은 소리로 캠퍼스의 국제화의 징표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각종 '심포지움'이나 '세미나'는 애교로 봐주자. 어차피 이는 '학술대회' '학술회' 정도로 순화해 이해하면 그만이다. 언제부턴가 '멘토'와 '멘티'란 말이 난무하기 시작했고 각종 외래어가 캠퍼스에 들어차기 시작했다. 리더십이니 글로벌이니, 각 대학들이 부르짖는 구호들을 유심히 살펴보기 바란다. 교육기관의 판촉 행위에는 그만큼 자기 고민이 강해야 한다. 영어 전용 강의를 늘리고 정체불명의 외래어를 써붙인다고 저절로 세계적 대학이 되는 건 아니다. 세계적 대학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그 밑바탕이 확실해야 한다. 학술용어를 원어 그대로 이용한다고 해서 세계적 교육이 되는 건 아니다. 그건 대학의 태업 결과이고 학문적 종속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반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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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내 연구소가 발간한 학술지명의 학내 기사 표기를 위해 한글명을 알려달라고 했다가, 국제학술지라 그대로 영어로 표기해달란 엉뚱한 소리를 듣고 화딱지가 난 상태에서 쓴 글. 그 잘난 국제학술지이기에 학술진흥원엔 등재 안 하려나 보지? 어쩌나, 학교에선 등재지 게재에 더 높은 점수를 주는데... 해당 기자이겐 해당 학술지명 삭제한 채 기사 수정하라 지시함. 그렇게 영어를 좋아하신다면 전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삼. 애들 핑계 대지 말고. 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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