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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5.15 도둑과 이웃 by 망명객

도둑과 이웃

길위에서 : 2007. 5. 15. 00:02

어느덧 신림동으로 이사온지 여섯 달째로 접어들고 있다.

 

한 사람의 주민으로서 동네 초등학교에서 추위에 떨며 동네 방위의 숭고한 임무를 수행하는 예비군이기도 했고, 새로 구입한 자전거를 타고 어슬렁 거리는 백수이기도 하며, 공원에서 동네 아줌마들의 틈바구니에서 조깅을 즐기는 젊은 총각이기도 하다. 편의점이나 대형할인마트보다 동네 재래시장의 인심에 슬슬 익숙해지고 있으며, 가끔 주인 없는 방을 찾은 택배를 찾으러 근처 세탁소를 찾기도 한다. 동네 술친구가 없는 게 좀 흠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술값을 굳히는 효과가 있으니 딱히 슬퍼할 일이 아니라 위안한다. (물론 자전거를 타고 좀 올라가면 신림동이란 고유명사에 이어 쉬이 연상되곤 하는 고시촌에 몇몇 지인들이 있긴 하지만, 난 더이상 착한 어린양들 앞에 술병 나발불며 나타날 옛 주정뱅이가 아니란 말씀. ㅋㅋ)

 

그러나 원룸형 건물이 갖는 아쉬움은 거주자의 연령대가 어린 관계로 이웃간 소통이 없다는 것. 뭐, 나이가 대수겠는가. 대부분의 원룸이 그렇듯 생활의 여러 영역 중 휴식과 취침의 공간이란 의미가 유독 강한 곳이 원룸이기 때문이겠지. 생각해보니 이웃들과 마주친 경우도 참 드물었다. 이곳으로 이사오기 전 머물던 고시원이란 공간보다도 더욱. 고시원은 그래도 공동시설을 이용하니 어떤 인간들이 이웃으로 사는지 안면이라도 익힐 수 있는 곳인데...

 

이사온지 6개월. 처음으로 옆 집 이웃과 이야기를 나눴다.

늦은 저녁 조금은 민망한 차림새로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려니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초인종이 없는 관계로 문을 두드리는 건 겨우 택배기사 아저씨가 전부인데, 조금은 두려운 마음으로 민망함을 감추고 문을 여니 옆 집에 산다는 아가씨가 말을 건넨다.

 

"저기 죄송한데, 어젯밤에 창 밖으로 무슨 인기척 들으신 거 없으신가요? 제 방에 도둑이 들어서요."

 

아가씨의 이야기로는 창문 단속을 안 하고 방을 비운 사이 자기 방에 도둑이 들어 노트북을 훔쳐갔단다. 그래도 이웃이라고 한갓 단서라도 얻을 수 있을까, 조심스러우면서도 근심어린 물음을 던졌겠지만 나도 방을 비웠던 시간이라 그저 얼버무릴 수밖에. 그래도 이웃의 일이라 경찰에 신고는 했는지, 몇 시 정도에 일어난 일인지 등을 물어보고 앞으로 창문 단속 잊지말라는 당부까지 챙겨주었다.

 

방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처음으로 옆 집 이웃과 나눈 대화가 우울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도둑이 들었다는데 그 앞에서 통성명이나 하고 친하게 지냅시다는 류의 이야기를 꺼낼 순 없지 않겠는가. 이사 올 때 떡이라도 돌릴 걸 그랬나.

 

어차피 날씨가 추워지면 고향에서 또 며칠이 멀다하고 귤박스가 올라올 것이고, 그때나 되면 귤이 박스 안에서 썩기 전에 나눠먹자며 옆 집 문을 두드릴 수밖에.

 

아무튼 오늘의 교훈은 "잊지 말자, 창문 단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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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