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22일, 간송미술관
단원 서거 200주기를 맞이해 단원대전이 열리는 간송미술관을 찾았다.
사실 서구 중심의 근대교육으로 우리는 그 어떤 서구인보다 더욱 서구인화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90년대를 강타했던 프랑스 철학자들에 대한 대중적 유행은 우리의 사상적 뿌리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에 충분했다. 왜곡된 압축근대의 한국 현대사 속에서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을 충분히 검토할 시간적인 여유가 부족했다. 가시적인 민주화의 성과가 보이자마자 어느덧 우리는 세계화의 이상으로 달려가고 있었고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라 표방하긴 했지만 자본주의 주변부 국가에서 중심부 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한 경쟁력 차원의 객체로 한국적인 것을 찾았지 주체화의 시도는 없었던 것이다. 이미 18세기 실학 사상가들의 글에서는 20세기의 언어철학과 구조주의 철학의 맹아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과연 그런 그들의 사상을 주변부화한 건 누구더란 말인가. 한국의 토속적 감수성을 대표한다는 작가 이효석은 당대의 모던보이였다. 식후 커피 한잔을 꼭 마셔야했던 이효석은 서구인의 눈으로 이질적인 토속적 감수성을 집어내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그럼 서구 중심의 교육 속에 자란 나는 단원의 그림에서 어떤 이질감을 집어낼 수 있을 것인가. 한성대 역에서 내려 간송미술관으로 걸어가는 길, 이런 잡다한 생각과 생각이 서로 꼬리잡기를 하며 머릿속을 헤집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간송미술관에 도착하고 나서 내 머릿속 생각들은 어서 탈출해야 한다고 아우성이었다. 단원의 그림 속에서 무언가 복잡한 감응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단순히 좁은 미술관에 들어찬 인파들 때문이었다. 오~ 하느님! Oh, My God!! 참, 컬러링도 반야심경으로 설정한 불교도인 내가 하느님이라니. 어찌되었든 난 탈출해야 한다. 어린애들의 아우성과 꾸역꾸역 무질서한 줄 속에서 어서 탈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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