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는 70의 이전 숫자이고 68의 다음 숫자이다. 영화 69(Sixtynine)이 그 서두에서 68년에 해체를 선언한 그룹
Cream의 ‘White Room’으로 시작하는 건 단절된 69년이 아닌 1968년에서 이어지며 1970년으로 이어지는 유기적인
시간의 흐름을 강조하는 듯하다.
69년이란 시간 속에 ‘사세보’의 고등학교라는 공간 배경을 둘러싼 등장인물들은 흔한 듯하면서도 결코 흔하지 않은 열정적인 객기를
보여준다. 인류 최초의 달 착륙 장면이 텔레비전을 통해 전 세계가 지켜보던 그 시대는 과학과 이성이 외계의 공간까지 인간의
영역을 넓히긴 했지만 정작 지상에서는 핵전쟁의 위기와 베트남전의 학살이 그리고 인간으로서 인권의 문제가 비이성적 광기와 충돌하던
혼돈의 시대였다. 전세계적으로 농민층 사멸의 시대였고 도시 중심의 물질적 풍요가 꽃 피우기 시작한 시대였으며 2차 세계대전 전후
세대의 전면적 등장의 시대. 전후 세대의 전면적 등장은 사회․문화 전방위에 걸친 집단적이고 혁명적인 사건들을 역사책에
등장시켰다. 프랑스와 유럽사회를 달군 68혁명, 미국의 우드스탁 페스티벌, 일본 전공투 투쟁.
영화는 분열을
통한 고립으로 막을 내린 전공투를 비웃고 학교와 선생으로 대표되는 구조적 폭력과 권위에 도전하며 자유로운 상상력의 세계를
추앙한다. 몇몇 사람들의 선도가 아닌 전체의 연대로 쟁취하는 자유. 그 밑바탕은 열정적 객기다. 힘 미치지 못해 쓰러지는 것이
아닌 힘 다하지 않고 꺽이는 것을 거부하던 그 세대의 젊은 날의 따뜻한 기억이 결코 딱딱하지 않은 에피소드로 영화 속에 기억으로
녹아나고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킥킥’ 거리며 웃고 있었지만 관람 후에는 조금은 우울한 생각이 들었다. 지난 기억은 낭만이란 포장지로 장식되기 마련인데 과연 오늘의 우리는 낭만으로 포장할 열정적 객기를 품고 있을까?
연대를 구해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고
힘 미치지 못해 쓰러지는 것을 개의치 않지만
힘 다하지 않고 꺽이는 것을 거부한다.
- 1968년 동경대 투쟁 시 야스다 강당 낙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