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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제주도의 민선 1기 지자체 선거 유세장에 뜬금 없는 공약 하나가 떠올랐다. 한 후보가 지하수를 팔아 지방정부 재정을 확충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수돗물 받아 먹는 게 당연하던 시절, 지하수를 '먹는 샘물'로 팔겠다던 신구범 후보가 민선 1기 제주지사에 당선된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내 기억으론, 지하수 팔아 마련한 재원으로 학교 급식이 가능하다는 말이 있었다. 무상급식이 공약은 아니었다. 재원 확보가 될 경우 도민들에게 돌아갈 복지혜택을 열거하던 중 나온 이야기였을 뿐이리라. 당시 매일 새벽마다 자식들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던 내 어머니가 특히 이 이야기를 좋아하셨다. 

지방자치시대의 개막과 함께 제주도가 '먹는 샘물' 사업에 뛰어든 결과가 '삼다수'다. '제주개발공사'가 사업을 총괄했고 '농심'이 유통을 맡으며 '삼다수'는 국내 생수 시장 부동의 1위 제품이 된다. 서울에서 '삼다수' 패트병을 처음 접한 뒤부터 되도록이면 난 '삼다수'만 고집했다. 가난한 처지라 가끔 '봉평샘물'을 구입하기도 하지만, 되도록이면 '삼다수'를 마시도록 노력했다. 주변 친구들에게도 '삼다수'를 권하며 꺼낸 이야기가 있다. 

"야, 니들이 이거 마서야 내 동생들이 학교에서 급식 먹을 수 있어"




급식시설 마련을 넘어 무상급식을 이야기하는 시대가 됐다. 비록 난 고등학교 시절 책과 도시락을 합쳐 10킬로그램 가량 되는 가방을 메고 통학했지만, 내 동생들은 급식 세대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한 시대를 넘어 또다른 세대가 무상급식 1세대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 스무살 어린 내 사촌 동생이 무상급식 시대를 열게 될 것이다. 

물론 제주의 지하수 개발이 환경적 관점에선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안고 있으며 생수 개발과 판매를 두고 잡음도 들리지만, 진심으로 맛 없는 아리수보다는 봉평샘물이, 봉평샘물보단 삼다수가 맛있다. 삼다수 구입비의 일부가 내 동생, 내 후배들의 급식비로 쓰인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꼬랑지--
동주야~ 사랑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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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