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민노당

똥침 : 2008. 1. 7. 12:01
"자주파, '고장난 나침반'을 버려라" (프레시안, 080107)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안부 전화 드리는 것도 소원해진 요즘이다. 이제 더 이상 적은 나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주름살에 얹혀 사는 내 자신이 한심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작년 연말, 아들의 생존 확인 차 먼저 전화를 걸어온 아버지는 뜬금없이 "대통령 누구 찍었냐?"고 물으신다. 냉큼 어른의 말을 돌리는 발칙함으로 "그런 아버지는 누구에게 표를 주셨습니까?"하고 되물었더니, 마땅한 사람이 없어 3번을 찍으셨다는 예상 외 답변을 듣게 되었다. 아니, 내 아버지가 민노당 권영길을? 이명박은 아닌 것 같고, 정동영은 왠지 싫고, 그래서 공약을 살펴봤더니 3번이 제일 나아보이더라는 게 아버지의 이야기였다.

물론 우리 아버지는 생산직 노동자가 아니다. 그저 지방에서 농사를 지으시다가 이를 기반으로 조그만 사업체를 운영하시는 우리 동네 사장님일 뿐이다. 지난 대선 때 아버지는 노무현의 당선을 기뻐하셨고, 그 옆의 나는 그저 입만 삐죽거릴 따름이었다. 그 이전 대선에서는 아버지의 표심이 무엇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워낙 아들 앞에서는 말 수가 적으신 분이셨기 때문이다.

이 아들도 그랬다. 이전 대선에서 밀던 사회당에 표를 주자니 공약이 부실한 듯 하고, 문국현에게 표를 주자니 주변에 적당한 세가 없음이 보이고, 마지막까지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을 제공하던 허경영은 그냥 웃어준 걸로 만족할테고. 이렇게 고르고 고르다보니 이 아들도 민노당밖에 남지 않았단 소리다.

나름 진보정당이라 자부하는 정당에 한 표를 던지신 아버지. 그런 아버지와 표심이 같았던 아들. 대선 후보군의 다양한 스펙트럼 사이에서 고르고 골라 같은 후보에게 표를 던졌으니 이는 가족사적으로는 기뻐해야 마땅한 부자동표의 길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아버지와 아들이 부자동표의 가족사적 경사에 같이 웃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게 현실이겠지.

거리에 붙은 이명박 당선자의 감사 현수막 근처에는 어김없이 민노당의 사죄 현수막이 걸려있다. 그 문구가 정확히 사죄의 문구인지 아니면 조직 쇄신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저, 내게는 백번 잘못했노라는 의지로 보였으니 그리 표현할 뿐이다.

나는 그 어느 정당의 당원도 아니다. 물론 과거에는 모 정당의 당원이었지만, 그저 어느 순간부터 한 발 빼고 바라보는 관망자의  편안함에 취해버렸다. 관망자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주저리 이야기를 풀어낸 건, 내가 행사한 한 표에 더해 아버지의 한 표까지 얹었으니 민노당에게 쓴소리 몇 마디 날릴 자격은 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몇 마디까지 갈 필요도 없다. 그저 당직자들에게 똑바로 생각하고 똑바로 처신하라는 이야기를 손가락질을 겻들여 건낼 뿐이다. 비록 손가락질은 하지만 부디 부자동표의 가족사적 즐거움을 진정한 즐거움으로 승화시키는 게 당신들의 존재 이유라는 말을 거들며 이만 줄인다.


꼬랑지 : 유령같은 자주파의 존재는 믿지만, 그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겠다. 다만 지켜볼 뿐이다. 말 없이 지켜보는 놈이 더 무섭다는 건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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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