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넘어서야 장례식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른 아침에 부음을  전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앞에 산재한 일거리들을 그냥 남겨둘 순 없었다. 어차피 삶은 늘 자잘한 일거리들의 연속이 아니던가.

고인의 유언으로 조의금은 받지 않는단다. 냉큼 내밀었던 봉투가 미안해졌다. 향을 피우고 두 번 반의 절을 올린다. 미소가 아름다운 고인의 영정 앞에서 딱히 할 말이 없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옆 방에선 아직 진행되는 삶들이 술과 안주로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고인이 투병중이었던 걸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었다. 엊그제 고인이 너무 고통스러워하더라는 후배의 이야기를 들으며 몇 년 간 병실을 찾지 못한 미안함에 술잔을 홀로 들이킨다. 아마 자리를 함께 하던 대부분이 홀로 술잔을 들이켰으리라. 

전남 광양까지, 고인이 내려가야 할 길은 멀었다. 새벽 5시, 고인을 태운 버스가 서울을 떠난다. 오열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끝끝내 지켜볼 순 없었다. 그저 떠나는 버스의 뒷모습을 응시한 채 흐르는 눈물을 닦아낼 뿐이었다.

새벽 거리, 각자 집으로 향하는 지인들은 그 누구도 다음을 기약하지 않았다.



2008년 10월 11일, 최연길 선배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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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