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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쓸 수 없는 조제를 그녀의 할머니는 쓸모 없는 물건이라 부른다. 늘 방구석에서 독서와 요리로 소일하는 그녀의 유일한 낙은 유모차에 실려 세상구경 하는 것. 그녀는 그렇게 수동적 존재로 할머니의 쓸모 없는 물건일 뿐이다.

우연한 칼부림과 아침 한끼로 조제에게 빠진 그. 그는 조제를 사랑한다. 그러나 조제는 그에 대한 사랑을 표현할 수 없다. 그녀는 쓸모 없는 물건이기에...

조제에게 유일한 사회적 관계였던 할머니의 죽음 이후 조제는 외롭다. 그 외로움의 바닥은 쓸모 없는 물건이던 조제의 손을 움직여 그의 어깨를 덮게 한다. 그리고 이제 조제는 무서워하던 호랑이를 보러가도 무섭지 않다. 조제의 옆에는 그녀가 뻗은 손을 잡아준 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 여기까지는 종두와 공주의 오아시스처럼 지독히 절망적인 희망을 이야기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조제는 생각한다. 바다 속 물고기들처럼 어울려 사는 것도 좋지만 언젠가 자신의 곁에 있는 이가 떠나면 다시 혼자여야 한다는 것을, 떼굴떼굴 굴러가는 바다 속 조개 껍데기처럼 혼자여야 한다는 것을...


그는 조제를 떠난다. 도망자의 눈물을 보이며 그는 떠났다.

이제 조제는 더 이상 유모차를 타지 않는다. 부서진 유모차, 그것은 누군가가 끌어줘야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원동휠체어를 타고 대낮의 세상 속을 돌아다닌다. 그간 준비해온 혼자 살아가는 방법으로 혼자만을 위한 식사를 준비하며...

오아시스의 공주가 불편한 몸으로 방바닥을 쓸고있는 마지막 장면을 보고 이건 절망 속 희망이라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희망 속 절망이라고 확신한다.

그렇게 조제는 혼자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졌지만 결국 그를 그리워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는 조제를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친구라고 이야기했다. 그도 가슴속에 조제를 품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각자가 각자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조제를 보며 내 주변의 구직자 친구들을 떠올렸다. 소속감이 없는 실체, 경제 활동인구에 진입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의 한숨으로 벌레가 되어간다는 친구들, 그들에게 아니 정확히는 우리에게 조제가 던지는 이야기는 희망이다.

그러나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는 공지영의 이야기처럼, 각자는 외롭다. 누군가 끌어주는 유모차는 누군가의 사랑을 필요로 하지만 전동휠체어는 더 이상 누군가의 사랑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존재는 외롭기 때문에 눈물을 흘린다. 그렇게 조제는 외로운 존재로 혼자만의 밥상을 차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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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