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청을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난 어리석은 정부를 원망했다. 사람들이 모이는 걸 막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막으면 막을 수록 분노는 점점 쌓일 수밖에 없다. 대충 못이기는 척, 사람들이 울분을 토해낼 수 있도록 광장은 열려야 한다. 강파른 삶이 더욱 척박한 나락으로 곤두박질 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분노. 광장의 사람들을 모이게 만든 건 바로 정부다.
#2.
광장은 열려 있었다. 문화행사가 진행됐다. 태평로 한가운데선 경찰과 시민들이 대치하고 있었다. 양 옆 인도 위 조금이라도 높은 위치에는 'PRESS" 완장을 찬 사진기자들과 방송기자들이 빽빽이 자리했다. 일선에 나선 시민들 뒤, 내 두 눈 앞에선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경찰 측 서치라이트에 비친, 밤하늘 아래 태극기는 고달프게 펄럭였다.
#3.
"경찰의 인내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시민들은 경찰 측 방송에 야유로 대응했다. 경찰의 인내인지 대통령의 인내인지 알 길이 없었다. 다만 거리 위에 모인 사람들의 인내에도 한계가 있단 사실만이 명징한 진실이었다. 용산에서 사람이 죽은 건, 인내력이 모자란 공권력 탓이리라.
#4.
광장 무대 위 발언자가 권해효였단 사실을 깨달았을 땐, 이미 행사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을 때였다. 빗방울이 떨어지며 우산을 꺼내든 사람들이 급히 광장을 빠져나간다. 주인 잃은 촛불들이 광장 한 켠에 모여 있었다. 별 무리 없이 오늘이 끝나가고 있었다.
#5.
모두가 지하철 역을 향하던 시간, 플라자 호텔 앞에서 쌍용자동차 노조가 구호를 외치며 행진을 시작했다. 광장을 빠져나가던 사람들은 그들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차도를 점거하고 행진하던 무리가 인도로 올라 구호를 외치기 시작한다. 쌍용자동차 뒤, 전해투(전국해고자복직투쟁특별위원회)의 깃발이 따랐다.
#6.
광장의 행사도 파했고, 행진도 쉽게 끝났다. 플라자 호텔 옆에선 풍물꾼들이 흥겨운 가락을 울린다. 순간적으로 사람들이 모여들며, 거리 위에는 원형 극장이 형성됐다.
"국상 중에 풍악을 울리는 게 말이 되나!"
풍물을 중지하라며 어깃장을 놓던 어른에게 거리 위 관객들은, 상 중에 더욱 흥겨이 오는 법이라며, 풍물패에게 박수를 보낸다. 삶은 흥이다. 원형극장을 에워싼 사람들이 이내 어깨를 들썩인다.
#7.
풍물패가 태평로를 따라 경찰과 시민이 대치하고 있는 곳을 향해 나아갔다. 무리 속 사람들은 풍물패의 가락을 따라 길을 터줬다. 박수가 터지며 대치 국면의 한 쪽은 축제의 장이 됐다. 풍물 장단이 빨라질수록 사람들의 목소리도 더욱 커졌다. 나이든 할아버지도, 친구들과 함께 거리에 선 직장인도, 거리 한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휴식을 취하던 젊은 여성도, 깃발을 들고 거리로 나온 미래의 예술인도, 모두 한 목소리로 외쳤다.
"명박 퇴진! 독재 타도!"
'독재 타도, 호헌 철폐'의 단순했던 구호가 87년의 6.10을 만들어냈다. 22년 뒤, 거리 위에선 다시 '독재 타도'의 구호가 터져나왔다. 난 입을 다물고 그냥 그 거리 위에 서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뒤, 거리 위 대치 국면이 경찰에 의해 정리된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정권은 피로하다. 시민들 역시 피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