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8.03 가슴 속에 술병 하나 고이 담아두며 by 망명객
  2. 2007.05.18 강물이 되고 별이 되고 꽃이 되면서 by 망명객
잘린 나무 등걸과 KHS

한마당을 지키던 고목이 잘려나갔다. 주변엔 안내 문구 하나 없었다. 교문 옆을 지키던 고목처럼 이 녀석도 조만간 새로운 녀석으로 대체될까? 캠퍼스엔 해가 멀다 하고 새 건물이 들어선다. 건물보단 나무나 벤치를 랜드마크로 삼던 기억이 내겐 더 많은데 말이다. 교육기관이라 인재 육성에만 신경을 쓴 나머지 인재들의 기억에 각인된 추억의 나무까진 채 신경쓰지 못하는 학교. 참 씁쓸한 일이다.

2년 전 술자리에서 처음 만나 2년 동안 죽어라 술자리를 함께 했던 친구가 내일모레 미국으로 떠난다. 2년이란 시간 동안 동고동락했던 도반이 떠난다니 시린이처럼 가슴 한 켠이 아리다. 이것으로 꼭 함께 졸업하자던 다짐은 술자리의 허언으로 끝나고 말았다. 과정으로서의 학위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어찌 삶까지 그러하랴.

인사차 찾아간 노교수는 친구에게 "배고플 때 스테이크 하나 사먹어라"라며 100달러 지폐 한 장 쥐어주더란다.  "꼭 배고플 때 사먹어야해"라며 노교수가 강조했단다. 떠나는 이에게 밥 한 끼 먹이는 일이 내가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인사치레였다. 학교 구내식당에서 2500원짜리 식권 두 장으로 우린 함께 메밀소바를 나눠먹었다.

출국 준비로 바쁜 걸 알면서도 술자리에서 만난 친구를 술 한잔 나누지 않고 보내려니 섭섭함과 미안함이 밀려왔다.

"술병 하나 가슴 속에 킵해둬."

친구의 한마디에 아쉬움이 한가득이다. 지하철 입구에서 두 남자가 시덥지 않은 이야길 나누며 미적거리고 있었다. 연거푸 담배 두 가치가 꽁초로 변할 시간 동안 말이다.

"한국 돌아와서 뿌리 내릴 생각일랑 죽어도 하지 마."

지하철 입구에서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이야긴 이것밖에 없었다. 뒤늦게 공부에서 재능을 발휘해 4년만에 모든 학위를 마친다면 어떨까, 하는 우스갯소리에 대한 내 응답이었다. 아쉬운 포옹이 이어졌고 우린 각자의 갈 길로 방향을 틀었다. 녀석의 뒷모습을 내 기억 속에 담아두기 싫었다.

친구에겐 대학원에서 보낸 2년이란 시간이 한마당 고목처럼 등걸로만 남았다. 이제 곧 녀석은 그 등걸 위에 새로운 싹을 틔울 것이다. 더 넓은 세상에서... 네 말처럼 각자의 가슴 속에 술병 하나 고이 담아두자꾸나. 우정이란 이름의 술병 말이다. 고맙다. 미안했다. 그리고 사랑한다 KHS.




이렇게 글을 쓰고 보니, 녀석이 "형, 늙은이 티 내는 거 아니에요?"라며 유쾌한 미소를 날릴 것 같다. 그래도 어쩌랴. 요즘 내 감성 상태가 이런 것을... 태평양 너머로 유학을 떠난다지만 우린 곧 메신저에서 이야길 나누겠지. "아직도 술쳐먹고 다녀?" "넌 아직도 쭉쭉빵빵 아가씨 지나가면 고개가 절로 돌아가냐?"처럼 시덥지 않은 이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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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


강물이 되고 별이 되고 꽃이 되면서

 

신경림

 

 

강물이 어찌 오손도손 흐르기만 하랴

큰물이 작은 물을 이끌고

들판과 골짜기를 사이좋게 흐르기만 하랴

어떤땐 서로 치고 받고

또 어떤땐 작은 물이 큰물을 덮치면서

밀면서 밀리면서 쫓으면서 쫓기면서 때리고 맞으면서

시게전도 지나고 다리밑도 지나는

강물이 어찌 말없이 흐르기만 하랴

 

별들이 어찌 늘 조용히 빛나기만 하랴

작은 별들과 큰 별들이 서로 손잡고

웃고 있기만 하랴

때로는 서로 눈부라리고 다투고

아우성으로 노래로 삿대질로 대들고

그러다 떠밀려 뿔뿔이 흩어도 지지만

그 성난 얼굴들로 그 불뿜는 눈빛으로

더 찬란히 빛나는 별들이

어찌 서로 그윽히 바라보기만 하랴

 

산비알의 꽃들이 어찌 다소곳 피어 있기만 하랴

큰 꽃이라 해서 먼저 피고

작은 꽃이라 해서 쫓아 피기만 하랴

빛깔을 뽐내면서 향기를 시새면서

뒤엉켜 싸우고 할퀴고 허비고

같이 쓰러져 분해서 헐떡이다가도

세찬 비바람엔 어깨동무로 부둥켜 안고 버텨

들판을 산비알을 붉고 노란 춤으로 덮는

꽃들이 어찌 곱기만 하랴

 

산동네의 장바닥의 골목의 삶이 어찌 평화스럽기만 하랴

아귀다툼 악다구니가 잘 날이 없고

두발부리 뜸베질이 멎을 날이 없지만

잘난 사람 못난 사람이 큰 사람 작은 사람이 엉켜

제 할일 하고 제 할말 하면서

따질 것은 따지고 밟을 것은 밟으면서

강물이 되고 별이 되고 꽃이 되면서

산동네의 장바닥의 골목의 삶이 어찌 밝기만 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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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객에게.
 
고등학교 때 산 건데, 빛이 많이 바랬구나. 그래도 읽어줄 수 있겠지? 물론...!! 우리, 바위를 향해 나는 계란의 무력함을 당장 가졌을지라도 기꺼이 계란이 되자! 칼 날처럼 날 선 세상에서 무릎 꿇곤 살지 말자! 우리에겐 정의를 부르는 용기가 있다. 그리고 서로를 따뜻하게 비춰주는 가슴도 있다. 우리는 빛나는 청춘인 것이다. 빛고을에서 준규가... 98.3.5 
자신과의 투쟁으로부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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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5.18이면 빛고을에 사는 친구가 떠오릅니다. '80광주'라는 ID를 사용하던 친구죠.

 

스무살 무렵, 그 친구와 저는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아이들이었습니다. 고등학교와는 다른 대학사회, 신입생은 자기의 언어를 배우기보다 선배들이 쏟아내는 이야기를 담아내기에도 벅찬 존재였습니다. 사랑을 배우고 미움을 익혔으며 이웃을 만나고 동무를 사귀는 과정들. 글쎄요, 사랑을 가지고 불을 만드는 대신 미움을 가지고 칼을 세우는 법을 먼저 배웠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 친구와 전 음악과 시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나눴는지도 모릅니다. 서로에게 상처주기 싫은 마음에...

 

옛 일기를 들추듯, 손때 묻은 이 시집을 들출 때면 귀 끝이 화끈거리곤 합니다. 이제 스무살에서 열을 더해야 하는 나이. 이젠 연락조차 닿지 않는 그 친구는 어찌 살고 있으며, 저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요?

 

다시 5.18입니다. 대통령 선거를 반 년 앞두고 벌써부터 텔레비전 브라운관에는 헛된 만남과 거짓 웃음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언어의 칼날을 쉬이 휘두르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은 그러한 칼부림은 쉬이 상생과 화합이란 명분으로 치장하곤 하죠. 그건 여유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절박함은 쉬이 사람을 극한으로 몰아가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노래로 칼을 세우고, 그 칼을 가지고 바람을 재우는 법을 아는 것이겠죠. 모든 사람이 강물이 되고 별이 되고 꽃이 될테니까요.

 
 
 
얼굴조차 모르는 그 친구가 보고싶은 하루입니다.
보고싶다 준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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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