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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2.26 프루프 - 자기 존재 증명, 그 지리한 과정의 연속 by 망명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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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일정 : 2005년 2월 4일 ~ 3월 13일
* 공연시간 : 화-금 7시 30분/토4시,7시 30분/일,공휴일4시
* 공연장소 :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 원작 : David Auburn
* 연출 : 김광보

<2005/02/20 관람>

압구정을 떠난 버스는 대학로 입구 언저리에서 정해진 노선을 우회해 돌아가고 있었다. 버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깃발 물결이 버스의 노선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종로 주변을 스치는 전투경찰들과 시내 곳곳에서 집회가 예정되어 있다는 뉴스를 접했기 때문에 크게 놀랄 일도 아니었지만 우연히 맞닥뜨린 집회현장은 내게 객관적인 하나의 사건 현상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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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신의 존재에 대해 자문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나의 생명 개체로서의 존재뿐만 아니라 가족, 친구 등 사회구조 속에서의 관계까지 말이다. 실존의 문제가 어디 사춘기 시절에만 품게되는 문제일까. 매 순간마다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노력한다. 끊임없는 자기 존재 증명의 과정, 그것이 삶이니까.
 
정신적 장애를 겪는 천재 수학자의 딸이자 뉴욕에서 커리어를 쌓아가는 금융분석가의 동생이며 젊은 수학자의 연인인 캐서린. 그녀는 '누구의 무엇'이란 관계 속에서의 존재가 아닌 자신 스스로를 증명하고자 새벽마다 수학에 몰두한다. 물론 사회적 편견은 못다한 학위와 아버지의 정신 장애를 빌미로 그녀의 성과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지만 결국 그 성과는 그녀가 이루어낸 자기 증명이다.

개인적으로 번역물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특히 문학작품의 경우 등장인물의 이름과 배경장소 등에 대한 이질감은 내게 가독성에 상당한 장애 요소가 되곤 한다. 이건 아마 내 빈곤한 상상력의 발로라고 할 수 있겠지. 추상미, 최용민, 추귀정, 최광일 두 사람의 추씨와 두 사람의 최씨가 펼치는 연기는 별도로 치더라도 연극 내용 자체는 조금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다. 추운 날씨와 약간의 피곤함, 따뜻한 극장 안에서 무거워지는 눈꺼풀과의 사투는 그 시각 관객으로서의 내 존재 증명이었겠지.

연극 프루프의 제목 앞에는 '추상미의'란 수식어가 붙어있다. '누구의 무엇'식의 작명을 정말 싫어하긴 하지만 그런 타이틀을 달고서라도 상품을 팔아야겠다는 절박한 의지가 느껴지니 조금 서글퍼지는 것도 사실이다.

연극은 끝났고 고픈 배를 부여잡고 추운 대학로 밤거리로 나섰다. 깃발과 인파로 가득하던 대로는 다시 차량들로 채워졌고 난 내 생존을 위해 저녁식사 메뉴를 고민해야 했다.

모든 개체는 존재의 이유를 갖고 있으며 끊임없이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하며 살아간다. 살아있는 개체에게 투쟁은 하나의 존재 증명이며, 군중 집회는 그 다양한 증명 방법 중 하나이다. 그리고 그런 현장에는 늘 삶을 유지하려는 생명연장의 애절함이 묻어난다. 피켓을 든 사람, 깃발을 든 사람, 팔뚝질을 하는 사람, 그 모두가 생존이란 존재의 문제를 길거리에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권리를 보장하라! 불법파견 금지하라!
Posted by 망명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