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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3.16 우리학교 by 망명객

우리학교

보고읽고느끼고 : 2007. 3. 16. 17:46

가족임에도 잊고 지내야 했던 가족이 있다. 엄연히 세상에 존재함에도 그 존재를 숨겨야 했던 가족말이다.
 
화가 강요배 씨, 그는 유년시절 한 마을에서 동시에 제사가 치뤄지는 것을 궁금해했다고 한다. 같은 고향에서 자란 나도 어린시절 어른들에게 함부로 묻지 못한 궁금증이 있었다. 먼 친척이며 월평이란 마을에 살고 있어 월평할머니와 월평아줌마로 부르던 고부의 가족사에 관한 의문이었다. 고부만이 살고 있는 집. 월평할아버지나 월평아저씨는 부재의 존재였고, 그렇게 고부만으로 구성된 가족은 어린 내가 보기에는 의문의 대상이었다. 차마 직접 물어볼 수 없는 비밀을 제삿날 모인 어른들의 눈빛과 낮고도 은밀한 소근거림에서 느낄 수 있었다.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의 기억이 생생하던 때 월평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분을 추억하던 자리에서 작은아버지는 그분의 생애가 윤여옥보다 더 파란만장한 삶을 사신 분이었다고 말씀하셨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월평아줌마까지 돌아가신 마당에 그분들의 지난 가족사는 주변 친척들의 터져나오는 한탄의 조각에서 찾을 수 있었다. 잊혀진 가족, 아니 잊혀져야 했던 그분들의 가족이 일본 오사카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니 오사카보다는 대판이란 지명이 내게는 더욱 익숙하다. 자라면서 오사카란 지명보다는 대판이란 지명을 어른들에게 듣고 자랐기 때문이다. 외할아버지는 일제시대 대판에서 고학생으로 지내셨고 할아버지 또한 대학 진학의 꿈이 좌절된 뒤 징병으로 끌려가느니 장교로 끌려가겠노라며 대판에서 사관학교 입시시험을 준비하셨다고 한다.
 
일제시대에는 부산에서 대판으로 가는 배가 있었고 제주와 대판 사이에도 정기적인 연락선이 존재했다. 징용으로 끌려간 이들도 있었지만 척박한 삶에 제주인들이 대판으로 가는 연락선에 몸을 싣게 됐다. 그렇게 일제시대에 일본으로 떠난 이들 중 "피와 뼈"의 원작자 양석일의 아버지가 있었다. 기타노 다케시가 분한 괴물같은 인물 김준평 말이다. 해방 이후, 4.3사건은 다시 제주사람들을 일본으로 내몰기도 했다. 재일교포 소설가 현월의 부모님이 그런 경우다.
 
내 부모 세대 중에는 일본의 친척들이 보내 준 학용품을 추억으로 지닌 이들이 많다. 그렇게 해방 이후 재일교포들이 제주 경제에 미친 영향력은 상당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대부분이 자유로이 고향땅을 찾을 수 없었다. 월평 고부의 가족도 그런 경우이다.
 
혹가이도 조선인 학교의 이야기인 영화 "우리학교". 어눌한 일본식 한국어와 일본어가 섞여 있어 자막의 도움이 필요한 영화는 시종일관 차별 속에서도 밝은 학생들, 그리고 학생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선생님들의 이야기다. 사회의 대다수 일본 사람들과는 다른 소수의 이야기. 다수에 대항하는 소수는 독기를 품기 마련이지만 자신을 지키려는 소수는 그와는 다른 애잔함이 녹아는 영화였다.
 
그리고 잊혀진 가족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그러니 당연히 우리학교이겠지.
 
 
 
꼬랑지 -
 
1. 학과 암실에는 매해 치러지는 보도사진전을 위해 확대 인화된 사진을 모은 사진첩이 있었다. 물론 보도사진이라는 이름따라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중반의 가두집회를 담은 사진이 대부분이었지만 특히나 기억에 남는 사진은 그런 사진이 아니었다. 학교 건물 사진으로, 보통의 학교와 다른 점은 건물 전면에 김일성과 김정일의 초상이 걸려 있었다는 것. 누가 찍었을까? 어디서 찍었을까? "이 사진 북한에서 찍은 거야?"라고 묻는 내게 사진첩을 보여준 역마살 선배는 사진을 자세히 보라고 대꾸했다. 사진은 재일 조선인 학교였다. 흑백사진의 명암과 콘트라스트의 대비가 보여주는 긴장감이 학교라기 보다 딱딱한 관공서의 이미지가 강했던 사진으로 기억한다. 8*학번 현** 선배가 94년 보도사진전에 출품하려 했으나 자칫 콩밥 먹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당시 학회장 역마살 선배의 적극적인 반대로 그냥 사진첩에서만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단다. 사진 속 학교는 무서웠지만 영화 우리학교의 학교는 참 다녀보고 싶은 학교였다.
 
2. 초대권을 나눠주시고 5-6명의 아가씨들만 데리고 극장에 나타나신 인기남(?) 민*총 정*팀 안** 선생님께 감사드림. 아울러 함께 관람한 Ae부인에게도.


Posted by 망명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