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에 부딪치는 빗소리가 맹렬하다. 한낮인데도 초저녁처럼 어두운 교실에서 우리는 국민학교 저학년 학생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하교 후 집에서의 점심식사를 놓치고 있었다. 교실에 비치된 텔레비전에서는 어린이용 영화가 방송되고 있었고, 담임 선생님은 그 옆 의자에서 졸고 계셨다. 창 밖 세상은 온통 물세계이건만, 창 안에선 덤으로 주어진 교실 체류 시간에 따분함만이 넘쳐났다. 앞자리에 앉은 아이들의 두 눈은 텔레비전 브라운관에 박혔고, 뒷자리의 아이들은 시덥잖은 잡담을 늘어놓고 있었다.
꽤 긴 시간이 흘렀다. 한 편의 영화가 종반으로 치달으며 잡담에 참가하는 아이들의 대오는 서서히 앞자리로 몰려오고 있었다. 빗소리가 잦아들며 그의 반비례로 커가는 교실 내 소음은 언제 담임 선생님의 낮잠을 깨울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리 덤으로 주어진 시간이지만 교실이란 공간은 엄연히 질서의 공간이지 않겠는가. 괜히 선생님의 심기를 건들여서 치도곤이나 당한다면 이 얼마나 억울한 일이겠는가.
다행히 한 편의 영화가 끝나기 전, 교내 방송으로 하교령이 떨어졌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저학년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졸다 깨신 선생님은 곧장 집으로 돌아가라는 의례적인 이야기를 우리들의 뒷통수에 날리셨다. 참, 그렇게 집으로 달려가는 우리들을 선생님 곁에서 바라보던 몇몇 아이들이 있었다. 대다수의 아이들이 사는 아랫마을이 아닌 윗마을의 아이들이었다. 선생님 곁에서 우리를 바라보던 그 아이들의 눈빛은 국민학교 저학년생으로서 내가 기억하는 최초이자 마지막 우울함이다.
그 다음날도 우리는 제때 하교하지 못했다. 또 다른 영화가 방송되었고 잡담은 계속 이어졌다. 교실 앞 문이 열리고 우리보다 머리 두 개는 더 큰 6학년 학생 둘과 담임 선생님이 함께 교실 안으로 들어오면서 끊기지 않을 것 같던 잡담이 멈추었다. 6학년 선배들이 손에는 하얀 상자가 들려 있었다.
"어제 우리 옆 반 친구가 방과 후 집으로 돌아가다가 급류에 휘말려 죽었어요."
국민학교 저학년에게 최초의 죽음은 그렇게 다가왔다.
윗마을로 가는 길에는 배고픈 다리가 있었다. 평상시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에 교각을 세우지 않고 양 편의 도로를 하천의 단면을 따라 시멘트로 발라 이어주던 간의 다리를 우리는 배고픈 다리라 불렀다. 주린 배처럼 홀쭉하다해서 배고픈 다리였다. 우리는 그 다리를 건너 봄가을 소풍을 갔고, 그 다리 근처에서 올챙이나 개구리를 잡거나 멱을 감기도 했다. 옆 반의 친구는 그 다리를 건너다가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 여름이 오는 길목에서 배고픈 다리는 몇몇 죽음을 앗아갔다. 그렇게 하얀 상자가 모금함으로 돌고나면 곧 방학이었다. 다시 배고픈 다리 근처에서 우리는 멱을 감았고, 봄가을에는 그 다리를 건너 소풍을 갔다.
지금은 배고픈 다리를 찾을 수 없다. 그 자리에는 꽤 튼튼한 다리가 지어졌으며, 다리의 튼튼함을 입증이라도 하듯 그 너머 윗마을에는 국내 굴지의 IT회사가 들어섰다.
가끔 창문을 때리는 굵은 빗소리를 들을 때면 그때의 배고픈 다리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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