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잠시 경포대해수욕장을 거닐다 돌아왔습니다. 단 하루짜리 여행. 영동고속도로 위, 제 몸을 서울에 붙잡아두려는 몇 통의 전화가 울립니다. 동녘으로 향하는 차 안에선 다급한 통화 상대에게 느긋하게 기다리라는 대꾸밖에 달리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습니다. 몸뿐만 아니라 이미 제 마음은 동해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4년 전 비슷한 시기에 동해 바닷가를 찾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갑작스레 여행을 떠나게 됐었죠. 속초의 어느 바닷가에서 전 갓 인연을 시작한 그 아이에게 휴대전화기 너머로 파도소리를 들려주었습니다. 다음엔 꼭 둘이 함께 동해를 보러 오자는 약속을 파도의 꼬리에 잇대어 그 아이에게 전했었죠.

옛 약속은 바람과 함께 흘러가버렸지만 경포대해수욕장의 파도는 4년 전 속초의 파도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다만 같은 4월임에도 불구하고 올 4월의 동해바다는 겨울바다만큼이나 을씨년스럽더군요. 제 주관이 깊이 간여한 결과겠죠. 그래도 함께 한 친구들이 있어 우리는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어줍짢은 농담들을 주고받습니다.

여전히 해풍 속 끽연은 제맛이더군요. 담배꽁초를 주머니에 고이 모신 뒤, 다급한 목소리들이 기다리는 서울로 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영동고속도로 상행선(?) 위로 생활의 노을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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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