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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7.28 무시하고 싶어도 무시할 수 없는 현실 by 망명객
짜증나는 과거는 잊으면 그만이다. 어차피 선택적 기억만이 남을 뿐이다. 사람? 인연의 고리도 쉽게 끊을 수 있다. 연락 끊고 지내면 그만이다. 어차피 먹고살기 바쁜 세상, 시간이 약이다.

가해의 상처를 덮는 데 필요한 건 피해의 기억이다. 넌 나를 이용했기에 난 너를 버릴 수밖에 없었어. 세상의 관계는 결국 상처를 주고받는 것임에도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자기변명만 존재하는 상황. 결국 그 자리에 소통은 없다. 끝없이 소통을 이야기하지만 상처에 대한 두려움에 우린 스스로 단단한 껍질을 쌓을 수밖에 없다.

때린 놈은 발 뻗고 잘 수 없지만 맞은 놈은 발 뻗고 잔다는 어머니의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피해의식에 기반한 독단적 관계 설정은 늘 인연의 고리 속에서 자신을 고립시킨다. 결국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선 가해자는 없고 모두 피해자인 셈이다. 적어도 그건 정신건강에 이롭다. 발 뻗고 편히 자려면...

개인에겐 양심이라도 있지만 집단에게 이를 요구하는 건 무리다. 조직 자체는 보수다. 영리 추구 여부는 상관 없다. 조직 결성 목적은 간 데 없고, 조직의 안위가 구성원들의 최고 가치가 된다. 대의를 위해 목숨 걸듯 조직의 안위를 걸고 행동한다 해도, 늘 조직 구성원들은 주판알을 튕기기 마련이다. 그 과정이 정치다.

사적 이익이 쉬이 공적 가치로 둔갑하는 요지경 같은 세상 속, 정치의 과잉이 빚어내는 풍경에 분노는 쉽지만 소외의 늪도 깊다. 좌와 우, 우리 편과 네 편으로 갈린 싸움은 선악의 프레임에 갖히게 되어 있다. 누가 맞았고 누가 덜 맞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를 지켜보는 입장에선 둘 다 같은 놈이란 거다.

시선을 조금만 돌리면, 이 사회엔 삶의 현장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이 넘쳐난다. 감히 각 구성원들이 주판알을 튕기는 것조차 사치스럽게 느끼는 다급한 현장 말이다. 정치는 그런 현장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조직도 삶의 현장에 기반해야 한다. 상처받기 두려운 자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 짜증나는 과거는 잊으면 그만이지만, 반성 없는 망각은 미래의 재앙으로 내 목을 짓누르기 십상이다.

개인의 상처에는 시간이 약이지만, 정치를 내세운 조직에겐 소통만이 약이다. 때린 놈이나 맞은 놈이나 매한가지라는 관망자들의 평가가 그 어떤 논리보다 무서운 것이기 때문이다. 등 돌리는 관망자들이 늘어날수록 진보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아, 지금은 범민주주의 진영이라 이야기하자. 자신의 욕심을 위해선 온전한 시장가치마저 무시하는 그들에 비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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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