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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뷔시 산장

이미지 잡담 : 2009. 7. 2.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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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치곤 참 휑하디 휑한 곳이 왕십리 한양대 주변이다. 공학 계열이 강한 학교라 그런지, 경제문화적으론 참 낙후한 곳이 한양대 주변 상권이다. 그래도 숨겨둔 보물은 있는 법. '드뷔시 산장'은 한양대 상권 중에선 꽤 쓸만한 아우라를 갖고 있는 공간이다. (물론 당구 다이 300원의 전설과 함께 엄청난 진로소주 소비량을 보여주던 동네이기도 하다.)

9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수염을 멋지게 기른, 정말 산장지기 같은 아저씨가 당대 한양대 주변에선 찾아보기 힘든 맛있는 커피를 직접 갈아 내주던 곳이 드뷔시 산장이었다. 그 아저씨는 지금 해외에서 살고 있다는 풍문이 돈다. 참, 이 공간은 감우성과 홍리나가 주연했던 드라마 '산'의 촬영장으로도 유명했다. 드라마 '산'은 촬영 중 홍리나가 산에서 추락하는 바람에 조기 종영한 불우한 드라마였지만, 극중 감우성이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던 공간이 바로 드뷔시 산장이다. (친절한 블로거라면 당시 드라마 스틸 한 장 포스팅에 넣겠지만, 난 그리 친절한 블로거가 아니다. ^^;)

산장지기 아저씨가 산장을 떠난 후, 이 공간은 사주카페가 됐다. 산장지기 아저씨가 기본으로 내주던 보리차와 함께 맛난 커피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참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사주카페로의 변신, 드뷔시만이 지녔던 아우라는 많이 훼손됐다. 복학 후 몇몇 친구들과 사주를 보러가곤 했지만 예전에 느낄 수 있었던 따뜻함은 그 공간에 없었다.

다시 대학원생이 돼 돌아온 왕십리, 드뷔시 산장에서 사주도사 월광선생님을 만나게 됐다. 예전 90년대 후반에 졸업을 앞둔 복학생 선배들이 그랬듯, 나도 이곳에서 커피 대신 맥주를 주로 마셨다. 월광선생님은 부산에서 직접 공수해 온 오징어포를 기본 안주로 내주셨다. 그 오징어포를 계속 맛보기 위해, 난 주변 지인들에게 월광선생님의 사주를 입소문냈다.

"새로 대학원 들어온 신입생이라면, 우선 자신의 사주에 공부 사주가 있는지 확인해야 해~"

"왜, 남친이 말을 안 들어? 그럼 일단 월광선생님을 찾아가 봐~"

이런 식으로~~

작년 연말에 월광선생님이 떠난 뒤, 한동안 드뷔시를 찾지 않았다. 낡은 '사주카페' 간판 대신 조금은 감각적이고 이질적인 '타로카페' 간판이 건물 옆에 자리했지만, 내게 이곳은 드뷔시 산장일 뿐이다.

오랜만에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드뷔시 산장을 찾았다. 산장은 예전보다 많이 밝아지고 깔끔해졌다. 아직 맥주는 카스 한 병(작은거)에 삼천 원이었다. 맛있는 오징어포는 없었지만, 아직도 이 공간이 남아 있다는 게 감사할 뿐이다.





꼬랑지 1 - 현 주인에게 물어보니 이곳의 명물이던 산장일기는 94년에 기록된 한 권밖에 남지 않았단다. 날적이... 그 안에 끼적이던 내 이야기는 어디로 사라진걸까? 알콜 촬영이라 사진은 좀 엉망이다. 다음에 기회가 닿을 때 더 좋은 사진을 올려야겠다.

꼬랑지 2 - 실내에선 무선인터넷 사용이 가능하다. 조명이 밝아진 만큼 조용히 책 읽기에 좋은 공간이다. 차값도 싸고, 마음이 답답할 땐 타로점도 볼 수 있다. 물론 점값은 치러야 한다.

꼬랑지 3 - 지금 월광선생님은 이대 근처의 사주카페에 계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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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