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盧 전 대통령 추모 콘서트' 장소 불허 통보 (프레시안, 20090619)



1997년.

한보청문회 증인 김현철 (출처 : 한겨레21)

참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90년대의 시작을 알렸던 문민정부가 저물어 가던 해. 연초에 터진 한보 사태는 문민정부의 무능함과 도덕적 불감증을 낯낯이 까발리는 계기였다. 민주주의와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이 공사로 끊긴 당산철교처럼 정권으로부터 급격히 이반하던 해였다. 급기야 연말엔 국가부도 사태가 터진다.

북한 주체사상의 대부라는 황장엽 씨가 남으로 넘어왔다. 중국에선 등소평이 운명을 달리했으며, 한총련 한양대 사태는 학생운동이 재기불능의 나락으로 추락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다. 그 와중에 문민정부의 출범과 함께 은퇴를 선언했던, 누군가에겐 선생님이었던 그 분이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강준만 교수가 '인물과 사상'을 펴냈고, 출판가에선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이 승승장구했다. 영국에선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가 수상 자리에 오른다. 영국이 중국에게 홍콩을 반환하던 해였다. 어린이들은 '포켓몬스터'에 열광했다. 부천판타스틱 영화제가 시작됐고, 스타크래프트가 출시되면서 대학가엔 하나둘 피시방이란 게 생겨났다.

대학생들에겐 씨네21이 인기 있는 잡지였으며, 왕가위의 '해피투게더'는 상영불가 판정에도 불구하고 대학가 영화동아리들의 상영회 단골 메뉴로 자리 잡는다. 울산시가 울산광역시로 승격했고, 아... X-JAPAN이 해체를 선언했다. 영화 '접속'이 인기를 얻으며 전도연이란 배우가 급부상했다. 이창동이 '초록물고기'로 데뷔한 해이며, 일본에선 '에반게리온' 극장판과 '원령공주'가 극장에 걸렸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그 해 11월 21일, 한양대 노천극장에선 '박노해 문화제'가 열렸다. 며칠 전 한양대병원노조의 농성장에 경찰이 난입했던 터

노동자 시인 박노해 (출처 : 한겨레21)

라 학교는 온통 집회판이었다. 올림픽체육관에서 열기로 했던 문화제는 학교 측의 장소 불허로 노천극장으로 옮겨 진행했다. 물론 학교측이 노천극장 사용을 허용한 건 아니었다. 겨울로 다가서던 11월의 노천극장. 그 스산한 계절에 하늘에선 비까지 뿌려주고 있었다. 당연히 경찰은 원천봉쇄로 응수했다. 그래도 개구멍은 있는 법.

안치환과 윤도현의 공연이 끝난 무대 위에 가수 리아가 올랐다. 비 내리는 노천극장에 관중들이 함성이 메아리쳤다. 밴드를 학교 밖에 두고 홀로 담을 넘어 들어왔다는 그녀. 그녀는 '유토피아'를 불렀고 '고정관념'으로 노천극장에 모인 인파들을 달뜨게 만들었다.

더이상 꿈을 가질 수 없는 틀에서 이제 나는 벗어나려 해
굳어진 당신들의 생각이 더는 나를 길들이게 할 순 없기에
늘 하던 대로만 하루를 보내고 예~ 다리를 뻗고 안심을 하지
갇혀진 새장에 너무나 길들여져 무더진줄 모르고 또 따라가겠지                                       (리아 2집 중 '고정관념')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009년.

스타워즈Ⅴ

참, 2009년은 딱 '제국의 역습'이란 제목의 영화를 떠올리게 만드는 해다. 촛불이 거리를 뒤덮던 2008년의 '새로운 희망'을 뒤로 하고, 국민들은 전직 대통령을 잃었다. 소녀시대가 내 마음을 설레게 하고 내 귀엔 타바코쥬스의 노래가 늘 걸려있지만,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2009년을 떠올릴 최우선의 기억으로 자리할 것이다.

연세대가 노 전 대통령 추모 콘서트 장소 불허 방침을 내렸단다. 12년 전 한양대는 어느 노동자 시인의 석방을 위한 문화제 장소를 불허했지만, 2009년의 연세대는 전직 대통령 추모 문화제를 불허한다. 1997년과 2009년의 기억 사이에는 김영삼과 이명박 만큼의 거리가 있다. 재밌는 건 97년의 한승수는 부총리였지만 2009년의 그는 총리라는 사실이다. 현재 살아있는 노동자 시인과 망자가 된 전직 대통령의 무게감 비교는 감히 내가 넘볼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다.

연세대 본부 측과 총학 간 공방에서 난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다만 2차 사법시험 때문에 학내 행사를 불허한다는 대학본부 측 답변은 조금 옹색해보인다. 행사 불허와 추진 사이에 적절한 타협점을 찾기란 어려울 듯하다.

최악의 상황엔, 12년 전의 한양대처럼 전투경찰들이 연세대를 봉쇄할지도 모른다. 학교의 '시설물 보호' 요청이란 간단한 명목이면 경찰들은 시청광장을 막듯 연대를 막을 것이다. 전직 대통령이었던, 2009년의 아이콘이 돼버린 망자를 기리는 문화제에서 제국 병사들과 같은 전경들의 출현은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다.

문민정부와 이명박정부의 거리, 그 사이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한 마디 건낼 듯하다.

"I'm your father"

너무나 슬픈 건 이명박 대통령은 제다이가 아니란 사실. 스타워즈 시리즈의 예언처럼 다음 차례는 '제다이의 귀환'이다. 짧게는 내년 선거, 길게는 차차기 대선 정도에는 제다이의 귀환이 이뤄지지 않을까. 이 시대의 요다 선생은 지금쯤 세상을 구할 제다이를 훈련시키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자. '미륵불'의 환생을 믿기엔 우리 삶이 너무 짧기에...




Posted by 망명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