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생겨… 내달 25일 첫 시험 (조선일보, 20061030)

토익 800점대만 되더라도 주변에서 '우와~'하고 탄성을 지르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이야 900을 넘는 이들이 부지기수지만, 아무튼 당시에는 그랬다. (마치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을 이야기 하는 것 같지 않은가.)

 

당시에 조금 고개를 쳐든 게 한자능력검정시험이었다. 조금 전까지 모든 신문들이 한글전용 활판에 맞는 가로쓰기로 돌아섰는데, 어쨌든 국어를 잘하기 위해서는 한자실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각 기업체 신입사원들의 한자실력이 형편없어 업무에 도움이 안 되더라는 식의 기사들이 하나 둘 튀어나오고 한자능력검정시험이 입사시험에 반영되면서 제대 후 복학한 학교에서는 토익 강좌 광고 현수막 못지 않게 한자능력검정시험 대비 강좌 현수막을 여럿 확인할 수 있게 됏다.


슬슬 졸업을 생각하고 있다. KBS에서 정작 국어능력이 좋아햐 한다며 한국어능력시험을 만들어냈고, 토익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시장성을 염두에 둔 제2의 영어능력시험들이 하나 둘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제는 언어 분야를 넘어 역사계에서 능력시험이란다. 따로 구획을 짓는다면 언어나 역사나 같은 인문학의 영역에 들어갈 터. 언어는 그런대로 팔리는 마당에 역사계가 굶주림과 부러움 속에 언어와 같은 형태의 능력시험이라니...

 

해당 분야의 학습능력 향상과 관심 고취가 각 능력시험의 취지겠지만 능력시험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장사가 되려면 취학과 승진 등의 인센티브가 있어야 하는 법.

 

한국사능력시험 웹페이지에 나와있는 소개 문구가 이를 잘 말해준다.

 

"응시 대상자 : 한국사에 관심있는 대한민국 국민 - 한국사 학습자 - 상급 학교 진학 희망자 - 기업체 및 공공기관 취업 희망자"


"시험 결과를 대학 및 특목고 입학에 활용하는 방안을 관련 학교과(맞춤법이나 제대로 쓰지 병신들~) 협의 중"


"교육인적자원부 훈련 제616호에 의거 학교생활기록부 수상경력란에 기재"

 

절대적 역사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저로서는 시험 평가의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역사에 대한 관심 고취는 커녕 획일적으로 일률화시켜(교재 및 강좌가 따로 나올 터) 우수자와 비우수자를 가리는 시험, 학교와 직장 등에서 취업 또는 취업 후 능력을 평가하는 잣대로 사용될 계량화된 수치로 활용될 이 시험이 올바른 가치관과 역사인식 형성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따름이다.

 

국사편찬위 내부에서도 말이 많을 듯 한데... 아무튼 생각하는 꼬라지 하고는...

 

역사지식이 계량화된 수치로 환산되어 능력이 되는 시대, 능력 만능주의 세태의 표상이겠죠. 인문학의 위기라 백 번 이야기해봤자 소용이 없을 듯 하다. 결국 스스로가 스스로의 발전 방향을 망치고 있는데...

 

외국에도 이런 시험이 있나? 사학과 예비 박사인 김 군에게 물어봐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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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망명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