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밤마다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내리곤 하더군요. 원래 가을 날씨가 이랬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짧아진 봄, 여름날의 국지성 집중호우, 가을밤의 천둥번개, 따뜻한 겨울까지 이상기후의 조짐이 여기저기에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일요일, 전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 컴퓨터 교육생들과 함께 월미도로 짧은 가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매 학기 1회씩 센터 각 반은 단합대회 성격의 사랑방 모임을 진행합니다. 동인천행 급행열차와 버스를 이용해 도착한 월미도는 지난 세기말에 찾았던 월미도가 아니더군요. 관광지구 한 켠에는 아직 놀이시설 공사가 한창이었고 월미도 관광 모노레일 설치 공사도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 컴퓨터 중급워드반
저와 선생님 한 분, 그리고 몽골에서 오신 바야라씨와 그 친구분까지 네 명이 함께 월미도로 출발했죠. 김포에 거주하는 인도네시안 친구 3명과 지각생 친구들은 뒤늦게 월미도로 찾아왔습니다. 월미도 주변을 돌면서 후발대 친구들을 기다리는 동안 바야라씨가 막걸리 한 병을 사오더군요. 몽골 마유주와 비슷하다고 바야라씨는 막걸리를 좋아한답니다. 속속 친구들이 도착한 뒤에야 저희 일행은 늦은 점심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메뉴는 대하 소금구이와 바지락 칼국수. 소주와 맥주가 반주로 등장했죠. 올해 가을에도 어김 없이 전 대하구이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v
아마드씨가 폰카로 찍은 대화 소금구이와 소주 한잔
가을 햇살 아래 영종도에선 종착지를 알 수 없는 비행기가 떠오릅니다. 연인과 친구,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이 늦은 오후의 월미도를 채웁니다. 월미도하면 역시 놀이기구를 빼놓을 수 없겠죠. 디스코와 바이킹은 지난 세기말과 똑같았습니다. 제 친구 무하마드는 바이킹 후유증을 심하게 앓더군요.
대기는 차가웠지만 가을 볕은 뜨거웠다. 경기도 화성을 향하는 승용차 안, 나의 뇌가 부족한 아침잠을 호소했지만 차창으로 쏟아지는 가을 볕이 내 두 눈을 가만히 놓아두지 않았다. 누렇게 익어가는 가을 들녘이 전방에서 사선 방향으로 달려와 다시 뒷방향으로 멀어져 갔다. 끊임 없는 들판이 이어진 곳, 그 한 켠에 우리의 목적지 '화성 외국인보호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보호소 건물은 그리 높지 않았다. 건물의 전면부에선 흡사 동사무소와 같은 친근함과 아담함이 느껴졌다. '법과 질서의 확립'이라 쓰인 현판이 건물 외관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구호 하나로 건물 전체가 법치의 위압감을 풍기는 듯했다. 평행한 천칭저울이 그려진 법무부 깃발이 높은 가을 하늘 아래 펄럭이고 있었다. 우리는 오늘 이주노동자방송국(MWTV) 활동가 미누의 면회를 위해 이곳을 찾았다.
좁은 면회소 복도에는 각 면회실에서 쏟아져 나온 다국어가 흘러 넘쳤다. 2번 면회실의 흐릿한 창 너머, 어두운 코발트블루 바탕에 검은색 줄무늬 두 줄이 그려진 상하의 운동복을 입은 미누가 나타났다. 늘 웃는 얼굴의 미누와 반가움의 짧은 인사를 나눈 후 면회 신청자들은 모두 할 말을 잊은 듯했다.
"잘 지내요? 지낼 만 해요?"
"우리 모두 잘 지내요. 식사는 잘 하고 있죠?"
짧은 물음에 대해 미누는 꽤 긴 대답을 이어갔다. "괜찮다" "지낼 만 하다"는 게 대답의 요지였다. 그의 대답 후에는 늘 정적처럼 시간이 멈춰섰다. 그럴 때마다 곧 계면쩍은 웃음이 정적을 깨곤 했다. 20분이란 면회시간이 그리 긴 시간일 줄이야. 면회 신청자와 대상자 사이에 놓인 유리 한 장은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까지 구획짓고 있었다. 이쪽의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면 미누가 있는 공간의 시간은 너무나 빨리 흘러갔다.
잘 지낸다는 미누의 이야기에 우리 일행은 힘 내라는 응원의 메시지로 화답했다. 미누에게 난 웃는 얼굴만을 보여줬다. 나중에 술 한잔 나누자는 이야기가 혀 끝에 맴돌았다. 하지만 난 끝끝내 그 이야길 전하지 못했다. 면회실을 나서는 내 뒷덜미에 천근같은 후회가 밀려왔다. 면회소를 나서며 뒤돌아 보니, '웃는 얼굴 밝은 미소'라 쓰인 구호가 면회소 대기실 입구 위에 붙어 있었다. 면회 대상자에게 밝은 미소를 보여달라는 보호소 측의 의도는 면회소를 나서는 이들에겐 허탈한 웃음의 대상일 뿐이었다.
보호소 건물 밖, 제부도 앞바다에서 달려온 바람이 둥그렇게 모여선 일행 사이로 계통을 잊은 채 흩어졌다. 가을 해는 어느덧 바람이 진행해온 방향의 지평선과 예각을 이루고 있었다. 바람이 달려가는 방향에선 육중한 철문이 호송용 버스 두 대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우리 일행 역시 같은 방향으로 귀가의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승용차 안, 가을 볕이 내 뒷통수를 달군다. 머리 위에서 햇볕 냄새가 퍼질 것만 같았다. 미누는 다시 이 땅에서 햇볕 냄새를 풍기거나 바람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게 될까. 법치의 준엄함 아래에서 약한 인연의 고리가 고개를 치켜든다. 법과 제도란 틀이 그 누구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물질적 손실을 끼친적도 없는 한 인간의 사회적 토대를 뿌리채 뽑아버리려 한다. 무려 18년 가까이 쌓아온 토대였다. 인간과 제도의 대립 관계에서 늘 아프고 다치는 건 늘 인간 개개인이다.
네팔인 '미누'는 내 친구다. 한국 사람보다 더 한국어를 잘하는 그는 이주노동자방송국(MWTV)에서 활동한다. 방송국 대표를 지내기도 했던 영상활동가이자 이주민 밴드 '스탑 크랙다운'의 보컬인 그는 지금 화성 외국인보호소에 갖혀 있다.
오늘 아침, 방송국으로 출근하는 그를 출입국단속요원이 현장에서 연행했다. 연행 사유는 '불법 체류'. 그에 대한 표적단속이란 것이 주변 친구들의 판단이다. 한 사람의 영상 활동가이자 음악가인 미누를 법무부가 가만히 둘 리 없었다. 내일 아침 네팔 행 비행기가 있다. 법무부로선 시민단체가 표적단속 운운하기 전에 빨리 그를 추방하는 게 상책일 터.
생산 현장에서 노동을 하고 있어야 할 이주노동자가 그들의 권리를 위해 카메라를 들고 노래를 부르면 안 된다. 그것이 정부의 생각이다. 한 사람의 이주노동자가 자신과 동료들이 처한 노동·사회환경의 부조리를 깨달았다. 이를 고발하기 위해 그는 카메라를 들고 노래를 불렀다. '불법'이란 딱지가 붙은 그의 체류 연장기간은 자신과 동료들이 처한 현실과 투쟁하는 시간이었다. 그가 단속 표적이 된 사유는 바로 그의 활동 때문이었으리라. 미누에 대한 표적단속, 난 이것을 언론탄압이라고 생각한다. 표현의 자유는 합법적 체류자에게만 주어지는 권리가 아니다.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 영상을 만들고 저항의 노래를 불렀기에 그는 당국의 표적이 됐다.
술자리에서 늘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던 사람이 내 친구 미누였다. 간간히 이주민이 처한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하지만, 늘 웃는 얼굴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지긋이 들어주던 사람이 바로 미누다. 이 땅에는 그가 불러야 할 꿈의 노래가 남아 있다. 코리안 드림, 그 꿈의 내용을 그는 아직 노래하지 못했다. 더욱이 난 아직 그에게 "미안하다"란 이야길 전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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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목요일에 올렸다가 지운 글을 다시 블로그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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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시절(好雨時節)'이란 제목에서 장마철을 떠올린 건 순전히 내 인문학적 소양 부족 탓이었다. 호우주의보나 호우경보란 단어
조합과 기상캐스터의 호들갑스러운 목소리가 영화 제목에서 연상됐다. '때를 맞춰 알맞게 내리는 비'가 국어사전에 등재된 올바른
'好雨'의 뜻이다. 호우의 유래가 두보의 시 춘야희우(春夜喜雨)의 싯구였듯 지진으로 폐허의 무대가 된 스촨성의 두보초당이 영화의
주요 배경이 된다.
사랑은 타이밍이다. 일상에서 지나치며 흘려 듣던 광고 카피 같은 이야기를 내 면전에서 꺼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기억의 조합은
늘상 불완전하다. 옛 연인과의 우연한 재회, 불완전한 기억이 추억의 편린들을 쏟아놓는다. 두 주인공의 사랑이 어떻게 엇갈렸는지,
누가 누굴 좋아했고 둘 사이에 어떤 오해가 있었는지는 영화를 보는 이에겐 그다지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다. 때를 알고 내리는
비처럼 두 사람은 적절한 시기에 조우했다. 오로지 그 사실이 중요하다. 두 주인공은 엇갈리고 불완전한 기억 사이에서 다시 설렘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반복적 삶의 안온한 일상 속에서 영화 속 영화 속 동하와 메이처럼 다시 설렘을 만난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잠시
잊고 있던 옛 꿈과의 만남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 속에서 옛 꿈을 공유했던 이와의 조우는 그래서 반갑고도
쓸쓸한 일이다. 꿈만으론 먹고 사는 일이 불가능하단 걸 알아버린 순간, 그때 아이는 어른이 된다. 그래도 인간은 과거를 반추하며
살아간다. 그 시절의 옛 동지들이 연말이면 거리 위에 넘쳐난다. 이는 서로의 얼굴 위에서 못 다 부른 옛 꿈을, 늙어가는 것의
비애를 확인하는 숭고한 작업이며 그 시절의 설렘을 다시 만나기 위한 주술행위다.
'호우'의 동음이의어는 좋은 벗을 뜻한다. 메이와 동하, 두 주인공이 때를 맞춰 알맞게 내리는 비처럼 서로에게 좋은 벗으로 남길
빈다. 함께 술잔과 수다를 나눌 벗들도 좋지만, 이 가을은 외로운 중년 남녀들에게 또다른 종류의 설렘을 안겨줄 좋은 이성친구가
필요한 계절이다. 배가 좀 나왔고 머리숱이 줄어들었고 피부의 탄력도 예전같진 않겠지만, 그래도 그 시절의 설렘이 그 어떤
자양강장제나 화장품보다 더 큰 젊음을 안겨줄 것이다.
아, 불륜을 조장하자는 게 아니다. 당신이 당신의 배우자나 애인에게 가끔은 낯설게 다가설 필요가 있다는 소리다. 서로가 서로에게
익숙해지기 전, 서로가 서로에게 서서히 물들기 시작한 그 때의 기억으로 중년 남녀는 귀환활 필요가 있다. 상대가 주책바가지란
소릴 한다면 또 어떤가. 난 아직도 당신 덕에 설레고 있다는 걸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영화는 잡히지 않는 꿈이고 현실은
현실일 뿐.
난 허진호의 영화를 늘 극장 구석에 위치한 좌석에서 벽을 벗한 상태로 관람하곤 했다. 벽을 의지해야만 볼 수 있는 영화가 내게는
허진호의 영화였다. 호우시절은 좀 달랐다. 두보초당의 대나무숲 속 속에서 '봄날은 간다'의 은수가 뛰어나올 듯했다. 동하와 같이
그 길을 걷던 메이에겐 빨간 신호등 불빛과도 같은 은수의 목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호우시절은 좀 많이 달랐다.
추석 연휴였다. 남들은 짧은 연휴기간이라고 투덜거렸지만, 직장인도 학생도 아닌 난 그저 평범한 일주일일 뿐이었다. 단, 같이 일하는 친구들을 위해 매주 금요일 저녁에 진행하는 정기적인 회의만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바꾸었을 뿐.
언젠가부터 내 몸이 날짜보다 요일에 민감하게 변해버렸다. 월요일은 시사주간지를 사는 날, 화요일은 소식지 기사 마감하는 날, 수요일은 편집본 결제하는 날, 목요일은 밀린 공부 하는 날, 금요일은 편집회의 주관하는 날, 토요일은 빨래하는 날, 일요일은 성동센터 자원봉사 나가는 날.
주말을 포함한 짧은 연휴는 나의 일주일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단지 회의를 이메일 주고받는 것으로 끝내고 자원봉사 대신 하루 종일 소설책과 텔레비전을 벗하고 있었다는 것을 제외하곤 금주는 내게 그저 평범한 일주일로 스쳐갔다. 1년 52주 휴간 없는 소식지를 기획하고 편집하며 나는 날짜보다 요일에 민감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내일은 다시 돌아오는 월요일. 추석 연휴 직전 시사주간지는 보통 다음주본까지 함께 통합본으로 발행한다. 아, 내일 출근길엔 가판 들를 일이 없겠구나. 뭐 시사주간지 대신 오랜만에 신문 한 부 사보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닐 듯하다. 그 정도의 변주는 내 몸도 이해하리라.
3대 지역신문이라고 하면 보통 광주일보, 부산일보, 제주일보를 꼽곤 했다. 요즘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워낙 좁디좁은 곳이 지역사회인지라 지역에서 기자 짓 해먹는 게 그리 녹록한 일은 아닐 듯하다. 단, 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지역사회에서도 한겨레와 같은 신문사들이 생겨났고, 2000년 이후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면서 오마이뉴스 같은 형태의 인터넷언론사들이 지역사회에 뿌리 내리기 시작했다.
지역사회에서의 시민운동도 무척 힘든 활동이다. 아버지가 시청 공무원인데 그 앞에서 데모질 할 아들은 그리 많지 않다. 오빠가 경찰인데 그 여동생이 경찰서 유치장에 갖히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도농지역이나 농어촌 지역으로 분류되는 곳일 수록, 싸움의 이유가 지역 현안에 가까이 존재할 수록 개인 앞에 놓인 선택의 지점들은 점점 좁아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난 지역활동가들을 존경한다. 고향을 떠나 살고 있으니 고향에 남아 있는 친구들과의 메신저질로나마 간간히 지역 소식을 접하곤 한다. 제주지역 대안언론이라 할 수 있는 매체사에 근무하는 선배는 전화로만 연락이 가능한데, 난 20대의 그와 처음 만났으니 그는 지금 불혹에 가까운 나이일 것이다. 여전히 우리의 전화질은 '결혼 안 하냐'는 덕담으로 시작하고 끝을 맺는다. 선배를 소개해준 친구는 간간히 텔레비전 네트워크 뉴스 꼭지에 출연하며 어울리지 않는 양복을 빼입곤 뭐라뭐라 고향 소식을 전해주고 있다. 그 친구가 부채의식 속에 살아가는 것 같다고 알려준 후배는 지난 도지사 주민소환 투표가 실패로 끝났을 때 지역언론의 행태를 비판하며 이를 논문으로 남기겠노라고 내게 이야기했다.
오늘의 이야기는 바로 그 후배와의 대화에서 시작한다.
메신저 상에서 분개하는 후배를 달래며, 난 이번 주민소환 투표 운동의 결집력이 모여 내년 지방선거에서 크게 안타를 먹여야 한다는 아주 원론적인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러나 들려오는 후배의 대답은 마땅한 대항마가 없다는 울먹임 뿐.
비록 타지에서 살고 있지만 내 머리 속에 떠오르는 후보군도 마땅한 사람이 없었다. 대기업에서 출세가도를 달리시다 늙으막이 고향땅에 내려오신 분과 관료로서 탄탄대로를 달리시다가 정치철세 소리까지 듣던 분이 떠올랐다. 그리고 현 도지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제주일보가 창간일을 맞아 내년 지방선거 도지사 후보군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무려 10명의 후보군을 두고 벌인 여론조사 결과는 지난 8월 말에 후배와 떠들던 이야기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후보군 10명에는 한나라당 계로 분류할 수 있는 양반들과 범 민주계로 분류할 수 있는 양반들이 섞여 있지만, 실질적인 3강은 한나라당, 민주당(?), 무소속(?). (?)라고 표현한 인물들은 모두 과거 한나라당과의 인연이 있는 분들이다. 재밌는 건 ‘지지정당이 없다’는 응답자가 44.6%나 됐다는 사실이다. 결국 좁디좁은 지역사회에선 정당보단 인물값이란 소리다.
열심히 사는 후배에겐 조금 미안한 소리일 수도 있지만, 결국 선거 준비 과정과 선거 과정에서 지역 시민사회가 대안 후보를 내세우는 것보단 정책적 견인을 이끌어내야 한다. 지금까지도 그래왔잖아. ^^;
여론조사 결과에서 재밌는 건 다음 항목이다.
제주 미래 발전을 위한 최대 현안으로는 ‘신공항 건설’ 의견이 31.8%로 가장 많았고 ‘한라산케이블카 설치’ 28.4%,
‘해군기지 건설’ 22.8%, ‘주민 자치권 강화’ 18.3%, ‘관광객 전용 카지노 도입’ 18.3%, ‘투자개방형 병원
도입’ 14.4%, ‘제주영어교육도시 성공’ 14.3%, ‘자치재정 확대’ 12.5%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설마 여론조사 시 오픈문항으로 물어본 건 아닐 테고, 기껏 제주 미래 발전 최대 현안으로 꼽은 보기가 '신공항 건설', '한라산케이블카 설치', '해군기지 건설', '주민 자치권 강화', '관광객 전용 카지노 도입', '투자개방형 병원 도입', '제주영어교육도시 성공', '자치재정 확대'란 말인가. 불행 중 다행이라면 '비양도 관광케이블카 건설'이 빠져 있다는 것 정도다. 100만이 안 되는 인구, 낮은 재정 자립도가 궁극적으로 평화의 섬 제주의 미래를 암울하게 하는 것 같아 입맛이 씁쓸하다.
지역경제 상황이 좋지 않으니 딱히 먹고살 걱정이 정책적 아젠다가 되는 건 이해하지만, 우리 조금 더 고민하며 대안 정책을 마련하면 안 되겠니? 뭐, 이런 소리도 원론적인 문제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다시 한 번 더 심사숙고하면 안 되려나?
지난 27일,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 소모임 아시안프랜드십 회원들이 센터 건물 주변에서 바자회를 열었습니다. 아시안프랜드십은 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들의 자발적 모임으로 '문화 간 이해와 교류'란 명목 하에 자원봉사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모임이죠.
매년 개최해온 바자회지만 올해에는 역대 최다 금액인 1,265,600원이란 수익금이 모였답니다.(저도 2만원 보탰습니다. 막걸리를 마시기 위해. ^^;) 아시안프랜드십은 수익금 전액을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사용할 예정입니다.
베트남,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음식 판매대에선 베트남 쌀국수 퍼, 파키스탄 차와 케밥, 인도네시아 비빔밥을 팔았습니다. 개인적으론 베트남 쌀국수와 파키스탄 차가 입에 맞더군요. 아, 인도네시아 비빔밥도 맛있었어요.
중국 양꼬치, 몽골 찐만두, 한국의 비빔밥과 떡볶이도 맛볼 수 있는 바자회였습니다.
지금껏 가장 맛있게 먹은 양꼬치는 바자회에서 맛본 양꼬치였습니다. 지방질을 철저히 제거한 양고기가 그 비결이었습니다.
인도네시안 친구들은 남성 3인조로 주방을 구성했습니다. 지난 2주간 수업에 결석했던 아마드 씨가 주방일을 보기 위해 행사일에 나오셨네요. 수업 좀 빠지지 마세요!!!
수업을 마친 한국어반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간단한 음식을 사이에 두고 모였습니다. 전 그 옆 테이블에서 주구당창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죠. 저 또한 학생들과 함께 음식을 나눠먹고 싶었지만, 제 수업은 가장 늦은 시간에 시작되기에 아쉬움을 막걸리로.... (^^;) 결국 음주수업을 진행하게 됐죠.
내가 최고로 좋아하는 제주도 해수욕장은 금능해수욕장이다. 관광객이나 외지인들에게 잘 알려진 한림공원, 그 앞에 금능해수욕장이 있다. 소나무 숲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위치한 협재해수욕장에 비해 오붓함이 느껴지는 작은 해수욕장이 금능해수욕장이다.
금능해수욕장을 최고의 해수욕장으로 꼽는 이유로는, 고즈넉함이 그 첫째요, 어린이 친화형 해수욕장이란 게 둘째 이유다. 한 마디로, 어린 자녀를 둔 가족 맞춤형 해수욕장이 금능해수욕장이다. 그리 깊지 않은 물 깊이와 얕은 파도는 어린 자녀에게 안성맞춤이다. 금능해수욕장 코 앞에 위치한 섬, 비양도가 높은 파도를 막아준다.
2002년 처음 가본 비양도
비양도는 고려 목종 5년인 1002년 6월에 화산활동으로 생긴 섬이다. 우리나라 화산섬 중 유일하게 역사서에 그 생성 기록을 남기고 있는 섬이 비양도다. 섬 생성 1000년째이던 지난 2002년 6월, 난 군대를 막 제대한 복학 준비생이었다. 그때 우연히 1000년 기념행사에 우연히 참가하며 난 생전 처음 비양도를 밟아볼 수 있었다.
섬 속의 섬, 비양도는 한림항에서 15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섬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줄기차게 금능해수욕장을 이용해온 내가 처음 밟아본 비양도. 관광객들을 따라 나도 비양도 한 바퀴를 돌았다. 속보에 익숙한 내 발걸음으로 비양도 한 바퀴는 30분이면 충분한 거리였다.
비양분교
그날 섬에는 비가 내렸다. 그래서 내게 비양도는 늘 낮게 깔린 검은 구름 아래 섬이다. 해수욕장에서 바라보던 막연한 풍경의 섬이 아닌 바다와의 사투가 벌어지던 삶의 현장으로서의 구체적인 섬, 그 현장에서 난 내 복학시점과 미래에 대해 고민했다.
대학 졸업을 한 학기 앞둔 시점이던 2005년 1월, 텔레비전
브라운관을 통해 난 다시 비양도를 만날 수 있었다. 고현정의 컴백 작품으로 기대를 모은 SBS드라마 '봄날'의 극 초기 배경이 바로
비양도였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한 사람을 지워야 했던 시기여서 개인적으론 그 겨울이 몹시 추웠다. 브라운관에 비친 익숙한 돌담길이 향수병을 불러 일으켰다. 그땐 드라마 속 은섭(조인성 분)처럼 내 눈에도 눈물이 많았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오아시스를 숨기고 있기 때문'이듯, 섬이 아름다운 건 두 다리로만 닿을 수 없는 여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쉽게 쥘 수 없고 닿을 수 없는 것이 사랑이라면, 섬은 사랑의 존재태이다. 시간과 공간이 씨줄과 날줄로 엮여 추억이란 직조물을 만든다. 케이블카를 타고 바다 위를 오가는 경험은 강렬한 추억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닿을 수 없는 것에 대한 떨림이 없는, 소금기가 제거된 인공의 추억일 뿐이다.
말을 잃은 여자 정은(고현정 분). 그녀를 보살핀 남자 은호(지진희 분). 섬을 떠나는 그를 향해 그녀의 닿을 수 없는 사랑이 말문을 튼다. "가지마, 가지마 이 자식아!" 선착장 위의 그녀와 섬을 떠나는 배 위의 그. 드라마 '봄날', 두 사람의 클로즈업 장면이 교차하며 비극적 사랑 이야기가 시작된다.
비양도 관광케이블카 사업, 난 정은의 극중 대사를 빌어 외쳐본다.
"하지마, 하지마 이 자식들아!"
서귀포항이 내려다보이는 솔동산 아래가 내 고향이다. 할아버지댁, 어린 난 그곳에서 서귀포항을 둘러싼 새섬과 문섬, 범섬을 내려다보며 자랐다. 천지연폭포 매표소로 넘어가는 칠십리교 아래에서 수영을 배우고 서귀항 갯벌에서 게와 바다고둥을 잡으며 논 게 내 유년의 기억이다.
썰물이 빠질 때, 서귀항 서방파제 끝에는 새섬으로 향하는 작은 길이 열린다. 사촌누나와 난 톰 소여나 말괄량이 삐삐 마냥 새섬으로 모험을 나섰다. 새섬 위는 거친 바위 사이에 증발하다 만 바닷물과 반 건조된 해양식물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는 곳이었다. 인적 없는 무인도에서 무섬증이 일었다. 밀물이면 고립될 수도 있다는, 그런 무섬증 말이다. 그 즉시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사촌누나와 난 온 길을 되돌아갔다.
새섬으로 넘어가는 다리가 개통된다. 서귀포 관광미항 사업의 일환인 새섬연결보도교(새연교)가 28일 일반인에게 공개된다. 뉴스에 따르면 국내 최초로 외줄케이블을 형식을 도입한 편측 사장교란다. 기술적인 부분은 넘어가도록 하자. 전공자나 업자도 아닌 이상 '국내 최초'란 수식어는 내겐 무의미하다. 단, 그 외관에 대해서 만큼은 한 소리 늘어놔야 할 듯하다.
난 지난 설 연휴 때 처음 새연교 건설현장을 목격할 수 있었다. 새연교 건설현장 위로 겹쳐지는 그림은 바로 두바이가 자랑하는 7성급 호텔 '버즈 알 아랍'.
관련 뉴스를 검색해 보니, 새연교는 디자인 공모를 거쳐 제주 전통 고기잡이 배인 '태우'를 형상화한 작품이란다. 글쎄, 내 눈엔 딱 '버즈 알 아랍'이지 태우가 떠오르진 않는다.
서귀항의 새로운 상징으로서 '랜드마크'가 될 다리인 새연교. 쉽사리 오를 수 없던 새섬 산책로와 연결될 다리는 좋지만, 그 디자인이 지역성을 표상하진 않는 것 같다. 공모 심사 과정이 의심스러울 뿐.